신하균에게선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광수는 많이 조심스러워 했고, 이솜은 두 선배와의 사이에서 속도와 온도를 조절했다.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해질 수 있는 배우들을 세 명이나 모아놓고도 촬영이 유쾌해진 데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공기처럼 흘렀기 때문이다. “첫 만남 때부터 그랬어요. 저도 그렇지만, 광수 씨랑 솜이 씨도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고사 지낸 그날부터 편안해졌죠. 꽤 오랜 시간 회식 자리가 이어졌는데 저만 남겨두고 두 사람이 먼저 간 것만 빼면, 모든 게 잘 맞았어요.(웃음)” 신하균의 말처럼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면 본능적으로 입을 닫아버리는 공통점이 있는 세 사람은 그날 이후로 점점 더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며 음식, 대화의 코드까지 어느 하나 빗나감 없이 하나로 이어지는 친근함은 촬영 내내 연기가 아닌 진짜 감정이 되어 영화에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제 분량이 마무리된 후에도 선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게 좋았어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좋은 학습이니까요. 집중력과 감수성이 제대로 융합되면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 제대로 공감했죠.” 이솜은 이번만큼 관계의 온도를 예열하는 시간이 짧았던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실화를 모티프로 한 영화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관객이 예상하는 답변의 범주를 벗어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연기적인 면에서 제약이 따를 수 있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는데,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오히려 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어떤 사전 조사나 정보 없이 순수하게 캐릭터에 다가서길 원했던 것 같아요. 잘못해서 흉내를 내거나 그분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되니까요. 그렇지만, 이 자릴 빌려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아주 조금은 봤습니다”. 신하균과 이솜의 눈이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는 순간, 이광수는 아주 조금, 아주 약간을 강조했다. 절대로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오픈한 순간 이광수가 느낀 책임감의 강도는 더 세어졌다. 진실도 왜곡될 수 있고, 내가 지나오지 않은 길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감정의 농도는 짙지만, 표현은 가볍지 않아야 하기에 촬영하는 매 순간이 그에겐 고민이었다. “현장에서의 광수 씨를 보면 촬영 전에 이미 많은 걸 고민하고 연습해 온 모습이 보여요. 대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동구’로 지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어려웠을 텐데 모니터를 보면 늘 우리를 놀라게 했죠. 집중력이나 캐릭터 체화력도 뛰어나고. 감독님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영화적인 인물로 표현되어지길 원하셨던 것 같은데, 광수 씨가 그 역할을 아주 잘해준 것 같아요.” 리얼리티가 너무 부각되면 관객은 중간에 길을 잃는다. 의미를 새기게 되고, 실제와 대입하게 되면서 영화는 표현의 매개체가 아닌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마주할 수 있는 이야기다. 친형제가 아니지만 20년 동안 한 몸처럼 살아온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휴먼 코미디.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동생 동구를 위해 생각과 판단을 대신 해주는 형 ‘세하’가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과정이 와닿는다. 세하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민첩한 동생 동구는 형을 대신해 많은 것을 돕는다. 가끔 웃음을 쏟아내고, 종종 눈물을 훔쳐야 하는 가족애가 느껴지는. 이미 티저 예고편을 통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막히게 주문하는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장애를 모티프로 한 영화는 많고,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도 많지만 이 영화는 장애가 약점이 아닌,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밀도 있는 진심으로 담아냈다. “두 분 선배가 먼저 캐스팅된 후에 제가 합류했어요. 시나리오도 물론 좋았지만, 사실 두 선배의 캐스팅 소식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끼쳤죠. 작품도 좋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미현’이란 캐릭터가 동구에게 수영을 가르칠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해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 잠깐 수영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물 공포증이 생겼죠. 지금은 영화 덕분에 극복됐어요.” 그냥 수영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동구에게 수영을 가르쳐야 했으니, 촬영 전 넉 달을 이솜이 물속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게다가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취업에 목매는 현실감 100% 취준생을 연기하기 위해 이솜은 여배우의 특권도 내려놓았다. 화장기를 지우고 자연스러움을 덧입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청춘을 대변한 것. “미현은 세하와 동구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 대한 편견을 지워나가는 관객의 시선이기도 해요. 그러기에 더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녹아들어야 하는 인물이죠.”
주제가 가볍지 않다 보니, 배우들의 마음가짐 또한 남달랐다. 이광수와 이솜은 넉 달을 물속에 머물며 준비해야 했지만, 신하균은 움직임 없이 입으로만 대사를 전달해야 했다. 머리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진 탓에 쉴 새 없는 입담을 지닌 인물. 랩을 하듯 속사포로 대사를 쏟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음도 정확해야 했다. “세하의 신체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부분이 입이에요. 그래서 항상 빠르고 정확하게 말해야 하죠.” 숨을 들이쉬기만 해도 가슴이 들리는데, 그 많은 대사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와중에도 목 아래로 작은 미동조차 없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빠르게 말하는 법을 연습했다기보다는 현장에서 세하가 느꼈을 감정에 더 충실했던 것 같아요. 가만히 앉아서 대사를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연기에 편법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동구가 함께하는 신만큼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하의 감정선이 유지되더군요”. 가장 많은 시간을 형제로 연기했지만, 특별히 서로 동선을 맞추거나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준비마저도 영화의 진실을 해할 수 있기에, 가능하면 각자 준비한 것은 프레임 안에서만 꺼내 보였다.
배우는 작품의 일부만 볼 수 있다. 나머지는 감독과 관객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일부가 흔들리면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넉 달 동안 연기하다 보면, 한 가지 감정을 오랫동안 끌어모으고 있기가 쉽지 않아요. 감정을 쌓아 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같은 텐션으로 유지하는 건 더 어렵죠.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대사의 결이 달라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하균 선배나 솜이 씨의 배려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인터뷰 내내 세 사람은 오랜 친구 같았다.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않아 서로에게 대답을 미룬다거나 호흡의 끊김 없이 한 사람이 대화를 이어가면 거기에 두 사람이 가벼운 몸짓으로 뜻이 같음을 표한다. 종종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귀여운 눈 흘김을 해보지만 오랜 신뢰에서 나오는 특유의 편안함이 배어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잦은 만남을 갖고, 영화가 마무리된 후엔 셋이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할 만큼 하나의 호흡이 되어버린 세 사람. 신하균은 영화에서 최고의 거름이자 재산은 주어진 환경이라 했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게 주어진 환경은 배우들의 빈틈없는 친밀감이다. 현장에서 뿜어내는 그들만의 자연스러움이 일상이 되기까지 서로가 배려하며 더 넓고 깊었을 노력. 인터뷰 말미에 세 명의 배우에게 각각의 질문을 던졌다. “오랫동안 이 길을 함께 걸어갈 믿을 만한 동료, 뾰족하고 모남 없이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이, 세월의 공격을 피해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 질문은 달랐으나 그들이 전해온 답변의 뉘앙스는 같은 리듬을 타고 흐른다. 결국, 기준을 어디 두느냐의 문제이겠지만 수치를 지표로 삼지만 않는다면, <나의 특별한 형제>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