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의 아파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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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의 아파트

최영 사진가 서부이촌동 이촌중산시범아...

BAZAAR BY BAZAAR 2019.02.06

최영 사진가

서부이촌동 이촌중산시범아파트(1970년 준공)

학생이자 사진가인 최영은 본인 나이보다 훨씬 많은 1970년생 이촌중산시범아파트에 산다. 우리나라의 많은 시범아파트 시리즈 중 하나인 이곳에 얽힌 역사는 잘 모르지만 상황은 잘 알고 있다. 서울시가 100% 대지 지분을 갖고 있어 재개발이 되어도 세입자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는 것. 그래서 재개발 열기가 물거품이 되고 사람들이 떠났다는 것. 덕분에 자신이 환상적인 한강 뷰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왜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나?

오래된 아파트가 재미있어 보여 충정아파트나 미동아파트를 괜히 둘러보곤 했다. 이사 갈 때가 됐을 때 오래된 아파트이면서 채광이 좋은 집을 찾았다. 남향이어도 앞에 건물이 있으면 빛이 안 들 수도 있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앞에 강이 있으면 채광이 좋겠다 싶었다. 집 알아보는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지도 중심으로 검색하는 기능이 있어서 한강변을 훑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이곳에 살아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한강이 정면으로 보이는 집 치고 학생인 내가 월세를 내고 살 수 있는 가격이라는 점. 이곳이 새 집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화장실 한편에 수도관이 드러나 있는 게 가장 불편하다. 오래되어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고, 동파되지 말라고 비닐을 칭칭 감아놨는데 보기 흉하다. 살면서 심하게 불편한 건 없는데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신경 쓰이는 점이 이것저것 있다.

처음 구조 그대로 남겨둔 것과 바꾼 것은 무엇인가?

우리 집 아래 할머니가 사시는 집을 보고 왔는데 처음부터 설치되어 있었다는 찬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붙박이장을 경계로 벽도 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없다. 색만 하얗게 칠했지 거실에 있는 벽장과 방에 있는 벽장, 화장실의 갓 유리와 문고리는 옛날 그대로다. 벽 한쪽에 발린 실크 벽지는 이전 세입자가 저지른 일인데 기념으로 놔뒀다. 처음에는 정말 싫었는데 가끔 영화 세트장 같다는 이야기도 듣고 나쁘지 않다. 방 장판 색이 너무 노래서 카펫 타일을 깔아 숨겼다.

이웃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사람이 없는 집이 많다. 우리 집 위도 아래도 사람 사는 기척이 없다. 이사가 잦다 보니 버린 가구나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로 보인다. 앞집도 자칭 복서인 아저씨 혼자 사는데 이사하는 날 딱 마주쳐 인사를 나눈 후로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 아저씨가 반말로 안부를 묻는 것이지만.

이곳의 아침과 저녁은 어떤 모습인가?

창문을 열면 맞은편 동이 보인다. 원래 적벽 건물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거 같은데 그게 또 바래서 동마다 색이 다 다르다. 밖으로 난 작은 발코니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두고 아침식사 때마다 꺼내 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홍콩 같다는 얘기를 종종 하는데 나도 아침 풍경을 보면 가끔 그렇게 느낀다. 밤이면 번화한 거리에서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이 마치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해 기분이 묘하다.

 

 

총 6개 동의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2열로 뻗어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거주의 형태를 시범적으로 실험한 시범아파트 중 하나다. 아파트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범아파트는 노후의 위험을 안고 아슬한 시험대 위에 아직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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