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의 아파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최영 사진가 서부이촌동 이촌중산시범아... | 아파트,서울,건축,옛날아파트,이촌중산시범아파트

최영 사진가 서부이촌동 이촌중산시범아파트(1970년 준공)학생이자 사진가인 최영은 본인 나이보다 훨씬 많은 1970년생 이촌중산시범아파트에 산다. 우리나라의 많은 시범아파트 시리즈 중 하나인 이곳에 얽힌 역사는 잘 모르지만 상황은 잘 알고 있다. 서울시가 100% 대지 지분을 갖고 있어 재개발이 되어도 세입자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는 것. 그래서 재개발 열기가 물거품이 되고 사람들이 떠났다는 것. 덕분에 자신이 환상적인 한강 뷰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왜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나? 오래된 아파트가 재미있어 보여 충정아파트나 미동아파트를 괜히 둘러보곤 했다. 이사 갈 때가 됐을 때 오래된 아파트이면서 채광이 좋은 집을 찾았다. 남향이어도 앞에 건물이 있으면 빛이 안 들 수도 있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앞에 강이 있으면 채광이 좋겠다 싶었다. 집 알아보는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지도 중심으로 검색하는 기능이 있어서 한강변을 훑다가 이곳을 발견했다.이곳에 살아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무엇보다 한강이 정면으로 보이는 집 치고 학생인 내가 월세를 내고 살 수 있는 가격이라는 점. 이곳이 새 집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화장실 한편에 수도관이 드러나 있는 게 가장 불편하다. 오래되어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고, 동파되지 말라고 비닐을 칭칭 감아놨는데 보기 흉하다. 살면서 심하게 불편한 건 없는데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신경 쓰이는 점이 이것저것 있다.처음 구조 그대로 남겨둔 것과 바꾼 것은 무엇인가?우리 집 아래 할머니가 사시는 집을 보고 왔는데 처음부터 설치되어 있었다는 찬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붙박이장을 경계로 벽도 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없다. 색만 하얗게 칠했지 거실에 있는 벽장과 방에 있는 벽장, 화장실의 갓 유리와 문고리는 옛날 그대로다. 벽 한쪽에 발린 실크 벽지는 이전 세입자가 저지른 일인데 기념으로 놔뒀다. 처음에는 정말 싫었는데 가끔 영화 세트장 같다는 이야기도 듣고 나쁘지 않다. 방 장판 색이 너무 노래서 카펫 타일을 깔아 숨겼다.이웃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사람이 없는 집이 많다. 우리 집 위도 아래도 사람 사는 기척이 없다. 이사가 잦다 보니 버린 가구나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로 보인다. 앞집도 자칭 복서인 아저씨 혼자 사는데 이사하는 날 딱 마주쳐 인사를 나눈 후로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 아저씨가 반말로 안부를 묻는 것이지만.이곳의 아침과 저녁은 어떤 모습인가?창문을 열면 맞은편 동이 보인다. 원래 적벽 건물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거 같은데 그게 또 바래서 동마다 색이 다 다르다. 밖으로 난 작은 발코니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두고 아침식사 때마다 꺼내 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홍콩 같다는 얘기를 종종 하는데 나도 아침 풍경을 보면 가끔 그렇게 느낀다. 밤이면 번화한 거리에서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이 마치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해 기분이 묘하다. 총 6개 동의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2열로 뻗어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거주의 형태를 시범적으로 실험한 시범아파트 중 하나다. 아파트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범아파트는 노후의 위험을 안고 아슬한 시험대 위에 아직도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