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즌 소식이 들릴 때부터 기대를 모았던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드디어 막을 올렸어요. 무대에 올라가는 입장에서 이번 작품은 설렘과 걱정 중 어떤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나요?
설레는 부분이 좀 더 컸죠. 비율로 따지면 설렘이 70%, 걱정이 30%였어요. 그런데 가끔은 얼굴에 난 아주 작은 트러블도 남은 잘 신경 안 쓰는데 내 눈에만 크게 보이는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설렘이 있는 상황에서도 저 혼자 30% 정도의 걱정이 있었던 것 같긴 해요.
어떤 걱정을 주로 했나요?
작품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어요. 워낙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 큰 작품이니 관객분들은 당연히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월하라는 역이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인물이고, 거의 퇴장 없이 작품을 끌어가야 하는 인물이다 보니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월하라는 인물은 정말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만든 캐릭터라 준비를 할 때 마치 학교에서 즉흥 연기를 하는 것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만들었거든요. 정말 막바지까지도 준비를 타이트하게 했어요. 그래서 제 스스로 뭔가 세팅이 덜 된 느낌이 있었어요. 실수 없이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월하는 가늠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정해진 형식이 없는 역할이라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제안할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의견이 반영된 신이 있을까요?
맞아요. 심지어는 성별도 가늠할 수 없는 젠더리스 역할인 데다 저랑 배우 이석훈, 구원영 이렇게 트리플 캐스팅이에요. 일단 배역을 맡은 배우들 세 명이 너무 달라요. 그것만 봐도 연출자 입장에서 뭔가 대단한 교집합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연출자가 거의 방목했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디렉션을 주셨죠. 그래서 거의 모든 장면에 저의 스타일이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해요. 어떻게 보면 나름 편안하게 작품을 시작한 것도 있어요.
내가 연기하는 월하는 이렇다는 얘기를 몇 개의 단어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태양 그리고 안개요. 우선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줄거리라고 하면, 이명우라는 남자가 죽기 1분 전에 시간여행 가이드인 월하를 만나 추억 여행을 하는 이야기인데요. 여기서 월하는 관객에게 아무런 세트 없이도 “사막이에요.” 하면 사막이고, “여기는 산입니다.”라고 하면 산으로 느껴지게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월하가 명우라는 인물을 데리고 추억 여행을 갈 때, 영화라면 가는 장면마다 CG가 있을 텐데, 무대는 어느 정도의 세트만 들어오게 돼요. 거기서 명우에게 “자 이제 너의 기억에 들어가면 돼”라고 말할 때마다 명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들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월하가 가진 에너지 자체가 태양처럼 뜨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과 신을 넘길 때도 서로 손발 오그라드는 상황이 없게끔 하려면 내가 더 큰 에너지로 가서 사람들이 그 상황을 믿게끔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도 한편으로 에너지만 가득하고 뜨겁기만 하면 보는 사람이 너무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안개같이 서늘하고, 묘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계속해서 ‘저 캐릭터는 뭐야’라는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도록요.
혹시 연기를 하면서 월하라는 캐릭터 안에서 더하고 싶거나 반대로 덜어내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더하고 싶은 건 많아요. 장면과 장면을 넘기는 부분에서 조금 더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음 장면을 넘기기 위한 충분한 동기 부여를 위한 드라마를 쌓고 싶은 건 있죠. 코믹한 장면에서도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그런 것 때문에 자칫 공연이 지루해질 수도 있잖아요. 지금 맞춰진 정도가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계속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많은 편인데요. 노래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울렸던 구절 하나를 꼽아본다면요?
‘애수’라는 곡이 좋더라고요. 그중에서 “따스하던 너의 손내음이 그리우면 가끔씩 빈손을 맡아보네”라는 구절이 부르면서도 제일 마음에 닿아요. 떠나간 사람이 그리워서 내 빈손을 맡아본다는 표현이 너무 애달프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사랑에 대한 감정이 있어야 평소에도, 일하는 데에도 굉장한 증폭제가 되는 사람이에요. 단순한 연애의 감정을 떠나서 언제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외로움도 많이 타고요. 그래서인지 그 구절이 가슴에 꽂히더라고요.
무대 위에 올라갈 때 나로서 보여주자는 쪽과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연기하자는 쪽이 있다면, 어느 쪽에 가까운 편인가요?
저는 전자에 가까워요. 연기 자체가 정답이 없고 연기를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건 주관적인 거지만, 어쨌든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 안에서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 제 모습을 모르거든요. 사람들은 밝고, 에너제틱하고, 희극적인 요소가 많은 걸 제가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비극이에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과 남이 나를 바라는 데에 차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저의 것으로 표현을 해도 사람들은 어떤 건 김호영 같다고 할 거고, 어떤 건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어떤 작품이든 자기화시켜서 접근하려고 해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무엇이든 제가 주축이 되려고 해요. 숨기기보다 맘껏 드러내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그렇게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건 방송 활동에서도 유효한 말이겠죠? 사실 뮤지컬을 보는 사람이라면 김호영이라는 배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방송에서는 마치 이제 막 데뷔한 신인처럼 뭐든 다 보여주겠다는 태도를 보고 좀 놀랐거든요. 이미 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보여주기 힘든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선 저는 제게 주어지는 임무에 관해서는 늘 최선을 다하려는 편이에요. 그게 뮤지컬이든 방송이든요. 사실 뭐든 열심인 것은 방송에서 뮤지컬 배우인 저를 부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첫 번째예요. 또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동안 다른 매체에 비해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대중성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한테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대중적인 인지도고요. 그렇다면 방송에 나갔을 때 저라는 사람을 어필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인 거죠. 물론 저도 가끔은 예능이나 다른 곳에서 뮤지컬 배우이기 때문에 바라는 모습들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시상식에서 시상을 하는데 제 대본에만 ‘뮤지컬 톤으로’라는 말이 적혀 있어요. 사실 뮤지컬 톤이라는 게 특정화되어 있는 건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그래도 하는 건 그게 곧 대중이 바라는 모습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나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나의 쓰임이 이런 거라면 못할 이유가 없는 거죠.
굉장히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저도 예민한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되도록이면 ‘지구 평화를 위해서 기왕 하는 거 해야지’라고 저만의 필터링을 거치는 거죠.
그런 데에는 좀 전에 이야기한 뮤지컬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뮤지컬의 대중성을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는 이유가 클까요? 아니면 방송이라는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일까요?
당연히 후자 쪽이죠. 모든 건 제 중심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지금이야 어딜 나가도 뮤지컬 배우 김호영이라고 알아보니까, 그걸로 인해 시청자들이 저 사람이 하는 뮤지컬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제일 좋긴 하죠. 그런데 일단 저만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무대 위에서야 다양한 경험을 해봤지만 방송에서는 아직 못해본 게 많거든요. 추상적으로 ‘나 이런 거 잘할 것 같은데’라는 것도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일단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걸 할 게 있나 찾기도 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걸 조금 더 뿌리 내려야 한다는 생각도 같이 하고 있어요.
변화와 확장의 시기에 있는 지금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저는 항상 제가 교차로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고요. 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무얼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어느 쪽으로 선을 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어쨌든 어디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교차로가 많이 있지만 결국 따라 가다 보면 하나로 모일 거라는 생각인 거죠. 어느 길로 가든 그것이 저의 길이면 돼요. 다만 제가 가는 길은 어느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 길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다른 길도 보면서 간다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수면론 아세요? 물에 빠져 있는 사람도 수면 위에 어느 정도는 올라와야 사람들이 구한다는 거예요. 물론 잠수를 해서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요. 수면론으로 따졌을 때 저는 이제 정수리가 보이는 정도인 것 같아요. 이제 막 수면 위로 올라와서 사람들이 ‘저기 있는 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정도요.
그런데 수면론은 누가 만든 거예요?
제가 만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