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의 청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Celebrity

지수의 청춘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배우 지수가 한 말이다. 이토록 평범한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일 거다. 2018년의 서울을 살아가는 청춘을 형상화한 듯한 지수가 보내고 있는 시간에 대하여.

BAZAAR BY BAZAAR 2018.09.22

코트, 트랙 톱은 라운드 니트는 모두 Valentino.

지금이 딱 여름과 가을의 경계인 것 같다. 여름과 가을 중 어느 계절을 더 좋아하나?

당연히 가을이다. 봄이나 가을처럼 걷기 좋은 계절이 좋다. 좀 더 서늘해져서 단풍이 지면 집 근처 북한산을 등반하고 내려와서 백숙 한 그릇을 먹고 싶다.

등산을 좋아하나?

올라갈 때는 ‘내가 왜 올라왔지’ 하고 후회하다가도 정상에 도달하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흥을 받게 되는 것이 등산이지 않나.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다니다 자연스레 산을 좋아하게 됐다. 할머니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나?

유도를 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운동을 했고, 지금보다 열심히 살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격이었던 것 같다. 뭐든 주도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크면서 점점 주동자가 되지 않는 게 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을 하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니까 그냥 대세를 따르는 게 편하더라. 책임 회피인 셈이다. 그래도 음식 메뉴는 먼저 제안하는 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워낙 좋아한다. 특히 한식을 좋아하는데, 고기와 국물, 이 두 가지의 조합에 미친다. 고된 날에는 삼겹살을 먹고 김치찌개로 마무리하면 너무나 훌륭하다.

아빠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웃음) 사실 조금 더 요즘 사람다운 얘기를 할 줄 알았다. 반삭발을 한 배우 지수를 처음 봤을 때, 동료 에디터들과 “딱 요즘의 얼굴”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동네 친구들이 들으면 놀릴 만한 이야기다.

그러한 이미지 때문에 패션 브랜드들의 러브콜이 잇따른다. 패션에 관심이 있나?

브랜드로 치면 아미(AMI) 같은, 과하지 않지만 느낌이 있는 옷을 잘 소화하고 싶다. 배우 중에서는 남주혁과 변요한 형과 친한 편인데, 그들이 옷 입는 스타일에 영향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요한이 형은 할리우드 배우의 느낌이 나지 않나? 남성적이면서도 섹시한, 남자가 봐도 참 멋있는 사람이다. 어릴 때는 나이가 들면 무조건 수트가 어울리는 젠틀맨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은 나에게 잘 어울리는, 편안한 옷을 입는 게 좋다.

스트라이프 니트는 Salvatore Ferragamo, 터틀넥은 Man on the Boon.

수트를 소화하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배우 유재명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트가 딱 한 벌 있었다고 말하더라. 여전히 넥타이도 잘 못 매는 데 사람들에게 수트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으니 인생이 재밌는 것 같다고 말이다. 방영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탁구공>에서 배우 유재명과 호흡을 맞췄는데, 그분과 보낸 시간은 어땠나?

참, 철학자 같은 분이다. <탁구공>은 한 편의 버디영화 같은 드라마다. 남자 둘이 줄곧 대화를 주고받는, 흔치 않은 스타일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어서 좋았고, 상대가 유재명 선배님이라서 더욱 좋았다.

<탁구공>에서 사랑에 서툴고 사색을 즐기는 철학과 대학원생 캐릭터를 연기했다. 머릿속이 복잡한, 현학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 안에도 그와 같은 면모가 있다. 나는 안다.(웃음) 드라마 속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고통 속의 쾌락을 뜻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주이상스에 해당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더라. 모든 쾌락의 원천이 고통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배고픔이 없다면 내내 굶다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궁극의 행복을 알지 못할 것이고, 고통을 견디며 운동하지 않으면 운동 후의 개운함을 알지 못할 테니까. 결국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는 결핍과 고통이 필수조건이 아닐까?

패턴 니트, 터틀넥은 모두 Dries Van Noten by BOONTHESHOP.

이 역시 동네 친구들 앞에서는 하지 못할 이야기인 것 같다.

드라마 속 유재명 선배님의 대사에도 있다. “너, 여자 앞에서도 이런 재수 없는 이야기를 하냐?”(웃음)

연애할 때도 나에게 고통을 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는 편인가?

이에 대해서 매니저 형이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매니저 형은 배우에게 사랑을 줘야 하는 직업이라 일상에서는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하더라. 나의 경우에는, 물론 상대방이 누군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쪽이니까 반대로 연애할 때는 사랑을 좀 더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는 건 없다는 거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거니까.

일, 사랑, 예술 중 당신의 성장에 주된 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인 것 같나?

결핍인 것 같다. 엄청난 결핍은 아니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결핍이 있는 거니까. 사업에 실패해서 무너질 정도의 실패가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크고 작은 일이 잘 되지 않는 경험은 매일같이 한다. 그러한 결핍과 상처와 약간의 실패가 결국 나라는 사람을 성장시켜준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옛날에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실패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예전에 내가 아는 어른이 “실패는 경험 빼고 모든 걸 앗아간다.”는 말을 했는데, 되게 잔인하면서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죽 재킷, 니트, 팬츠, 양말, 로퍼는 모두 Bottega Veneta.

모든 경험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인가?

이 분의 맥락은 어떤 경험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는데, 나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실패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모든 경험이 나에게 의미가 있더라. 더 잘하고 싶고, 더 크고 싶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싶으니까.

종종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지수에게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머니인 것 같다. 문제가 있을 때,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의 여준영 대표님도 내가 좋아하는 어른이다. 같은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독특한 분이다. 최근에 이 분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말이 생각난다. “원하는 것은 항상 원치 않는 것을 품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원치 않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는 그 말에 매우 동의 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들을 기록해놓는 매체가 있나?

‘셀피’는 잘 찍지 않는다. 가끔 스마트폰 메모장이나 SNS의 비공개 계정에 무언가를 끄적이긴 한다. 시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좋아해서 흉내 내는 수준이다. (휴대폰을 꺼내며) 공개할 만한 것은 아니니 소리 내어 읽지만 말아달라.(웃음) 성장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악몽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재킷, 베스트, 니트, 팬츠는 모두 Ermenegildo Zegna Couture.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뭔가?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청춘물 <첫사랑은 처음이라서>를 찍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작품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이 대체로 어두운 톤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톤 자체가 밝고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워서 좋다. 개인적으로 워낙 청춘물을 좋아한다. 최근에 본 <두더지>라는 일본 영화도 정말 좋았다. 이번에 <탁구공>을 함께한 김상호 감독님이 추천해주셨는데, 청춘의 절망과 희망을 강렬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다. 세상의 한복판, 주류에서 떨어져서 살아가는 소외된 청춘들의 이야기에 아무래도 마음이 간다.

포털 사이트에서 지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이가 나오지 않더라. 젊음이 무기라고 생각할 만한 나이인데, 굳이 나이를 삭제한 이유가 있나?

데뷔작이었던 <앵그리맘>에서 고등학생 역할을 맡았었다. 실제의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니까 누군가가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누군가가 알려고 하면 금세 알 수 있지만, 가장 직적접인 페이지에서는 나이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 배우에게는 여러 모로 좋은 것 같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평범한 말인데 왠지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지수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인가?

내가 그런 멋진 말도 했었나?(웃음) 스타일도, 연기도, 삶도 자연스러울 때 가장 멋있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누군가를 의식해서 시작하는 일들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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