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만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매년 이맘때면 그 유명한 ‘셉템버 이슈’ 즉 9월호를 위한 촬영이 한창이다. 가을/겨울 시즌을 위한 뉴 아이템들을 실제로 영접할 수 있는 현장! 계절을 앞서 나가는 옷과 그에 매치되는 새로운 핸드백, 슈즈로 스튜디오는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리고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 모여든 스태프들은 대부분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패션계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들이 잔뜩 쌓인 신상품 중 가장 관심을 가진 것 역시 스니커즈. 10대 모델 앨리스도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를 신고 있었음에도 샤넬의 새로운 스니커즈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 요즘은 ‘핸드백보다 스니커즈’를 쇼핑하는 것이 대세다. 스트리트에 열광하는 트렌드의 기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도시남녀, 즉 운도녀과 운도남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럭셔리 스포티즘’의 주역인 스니커즈를 포멀한 수트나 드레스에 매치하면 오히려 쿨하고 트렌디하다고 느낄 정도니까. 온라인 쇼핑몰의 거물 네타포르테는 올해 상반기 프리미엄 스니커즈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상승했다고 밝혔으며, 매치스패션도 올해 스니커즈 판매량이 작년 대비 2배가 늘었다고 발표했다. 세계 3대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에 따르면 전 세계 스니커즈 시장 규모는 35억 유로(4조 4천148억원)로 전년 대비 10% 성장했지만, 핸드백은 7%에 그쳤다고. 사실상 스니커즈가 명품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저 ‘운동화’ 취급을 받던 거리의 아이템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1백만원을 훌쩍 넘는 하이 패션의 전유물로 신분상승한 것. 이 프리미엄 스니커즈 열풍은 몇 시즌째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어글리’에 매료되어 있다. 익숙한 편안함에 투박하고 못생긴 스니커즈마저도 밀레니얼 세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는 사실. ‘살금살금 들어오거나 나가다’라는 스니커즈의 어원인 ‘Sneak’와는 상반되는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살펴보자. 대표주자는 구찌의 ‘플래시트렉’이다. 러버, 스웨이드, 테크니컬 캔버스 소재가 어우러졌으며 하이킹 오버사이즈 솔과 1980년대풍 그래픽 폰트를 차용한 구찌 패치 디테일이 돋보인다. 이미 래퍼 쿠에보와 카일리 제너 같은 셀러브리티들이 착용하며 화제의 중심에 있는 아이템. 베르사체는 지난해 아디다스 이지 출신의 살레헤 벰버리를 스니커즈 디렉터로 영입하며 야심작 ‘체인 리액션’을 선보였는데, 920달러라는 가격에도 24시간 만에 완판되었다. 프라다 역시 과거의 히트작을 연상시키는 형광 컬러 팔레트의 메시 소재 스니커즈 ‘클라우드 버스트’를 선보였고, 클로에의 나타샤 램지-레비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역동적인 디자인과 편안한 기능성을 갖춘 ‘소니 스니커즈’를 디자인했다. 그 외에도 셀린은 2000년대 초반 남성 러닝화를 닮은 스웨이드 스니커즈 ‘딜리버리’를 선보였고, 발목 부분에 네오프렌 소재를 더해 하이톱으로 출시된 루이 비통의 ‘아치라이트’도 품귀 현상에 힘입어 재출시됐다.
하이프비스트들(Hypebeasts)을 유혹하는 것은 패션 하우스뿐만이 아니다. 스포츠 브랜드들 역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이 프리미엄 스니커즈 열풍에 가세하고 있으니까. 나이키는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와 손을 잡았다. 미리 발표된 영상 속에는 우아한 장미무늬 원피스를 입고 책상 위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안나 윈투어가 빨간 에어조던 운동화를 신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나이키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최초의 여성용 에어 조던 ‘AJI Zip AWOK’로 한국에는 9월 7일 출시 예정이다. 리복은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과 손잡고 내년 봄부터 새로운 라인을 선보인다고 발표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 필라 역시 1998년 출시했던 러닝화 볼란테를 재해석해 청키한 디자인의 어글리 러닝슈즈를 선보이며 1990년대 향수를 부추긴다. 올가을, 어글리 스니커즈야말로 곁에 두어야 할 가장 감각적인 파트너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