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체중 50kg대를 가뿐히 넘어버린 나는 평생을 66사이즈, 혹은 그 이상의 몸으로 살아왔다. 작지 않은 키 덕분에 다행히 ‘뚱뚱하다’고 불리지는 않았지만, 한순간도 다이어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체중 감량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이른바 생활 다이어터.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덴마크 다이어트부터 최근의 ‘고탄고지(고탄수화물 고지방)’ 식단까지,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는가 하면 보조제나 시술의 도움을 받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물론, 운동도 했다. 재미있는 건 20년이 넘도록 적극적인 다이어트를 계속해왔음에도 결국 ‘예전부터 바라온 모델 사이즈’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 2018년 지금도 나는 여전히 66사이즈의 건강함을 자랑한다. 대체 이유가 뭘까?
다이어트가 매번 실패로 끝나는 진짜 이유
전통적으로 우리는 “섭취 칼로리보다 소비하는 칼로리가 많으면 살이 빠진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껌 하나를 씹을 때에도 칼로리를 따졌고, 과식한 날이면 어김없이 트레드밀 위를 달렸다. 그런데 최근 다이어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두되고 있다. “체중 감량에 있어 칼로리 계산은 무의미하다”는 견해다. 시작은 칼로리의 정의로부터 비롯된다. 칼로리(Calorie)란 물질의 온도를 높이는 데 소요되는 열의 양, 즉 물 1g을 1℃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을 뜻한다. 에너지의 단위 중 하나로, 본래는 증기 기관에 쓰인 개념이다. 기계를 위한 단위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디 사람 일이 계산대로 딱딱 흘러가던가? 이론처럼만 되었어도 일도 사랑도 세상 어려울 게 없을 터.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최근 화제가 된 SBS스페셜 <칼로리의 난>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이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은 ‘포만감 호르몬’이라 불리는 렙틴(Leptin)과 ‘공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그렐린(Ghrelin)이 대표적이다. 먼저, 배가 고플 때 분비되는 그렐린은 식사 전에 수치가 올라가 입맛을 당기게 하고, 식후 자연히 수치가 떨어진다. 렙틴은 간단히 말해 ‘이제 그만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물질이다. 체온 조절 및 대사를 촉진하는 신경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기초대사량을 높이고 체중 감소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물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렙틴 분비량이 상승하여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되고, 식욕을 억제해 먹기를 중단하게 되는 것.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데, 문제는 이 두 호르몬이 제때 적절히 분비되지 않거나 렙틴 저항성이 생겨 그만 먹으라는 신호에 몸이 무감각해질 때 발생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뚱뚱한 사람일수록(지방 조직이 많을수록) 렙틴 저항 또한 쉽게 생겨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슬픈 사실이다.
의지력이 약해서 살이 찌는 것이 아니다
호르몬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렐린이나 렙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면 식후 올라가야 할 렙틴 수치가 되려 떨어지는가 하면, 식사를 하든 하지 않든 그렐린 수치가 미동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무얼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프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포만감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상태라면 초사이언인에 가까운 강한 의지력으로도 결국 요요를 경험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굿 칼로리 배드 칼로리>의 저자 게리 토브스는 이것을 일종의 호르몬 조절장애라고 표현했다. “비만은 절대 과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칼로리를 먹어도 뚱뚱한 사람의 뇌는 몸에 지방을 저장하려 하고, 날씬한 사람의 뇌는 활활 태우려고 한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뇌를 단련해 내 몸이 지방을 처리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인 유일한 해답인 셈이죠."
좋은 칼로리만이 체중을 감량하고, 감량한 체중을 요요 없이 유지해주는 장기적이고도 유일한 다이어트 비법. 건강하게 먹으면 0칼로리다.
칼로리 계산보다 중요한 건 칼로리의 질!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죽을 만큼 움직여도 끝끝내 돼지 탈을 벗을 수 없다는 자책은 이제 그만.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음에도 내가 뚱뚱한 건 자제력이 아닌 건강하지 못한 호르몬 탓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몸은 같은 칼로리를 섭취하더라도 음식이 어떤 영양소로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하기도 하고, 전혀 반응하지 않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체중 증감이 칼로리에 기인하지 않는 절대적인 근거이자 칼로리의 양보다 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질 좋은 칼로리를 섭취하면 빨리, 오래 배부르고, 지방을 몸에 비축하려 하지도 않는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답은 있다. <최강의 식사>의 저자 데이브 아스프리는 렙틴 감수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가장 먼저 유해한 렉틴(Lectin, 특정 당 분자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함유한 식품을 들었다. 사람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렉틴의 종류는 제각기 다른데, 대체적으로 토마토, 가지, 피망, 감자 등 가짓과 식물에서 발견되는 렉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과당도 문제다.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져 렙틴 저항성을 높이기 때문. 하지만 건강한 지방과 단백질, 충분한 채소와 약간의 완전무결한 녹말은 칼로리의 숫자가 높아도 우리 몸의 호르몬을 공격하지 않는다. <칼로리의 거짓말>의 저자 조나단 베일러는 좀 더 세분화된 식단을 제시했다. 채소류 45%, 생선·살코기·달걀 35%, 딸기류·감귤류 과일 10%, 아마·견과류 10%로 구성된 건강한 식사를 지속한다면 충분한 양을 먹어도 체중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조애경 원장 역시 이에 동의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다이어트 이론이 등장하고 그것이 마치 신비의 명약이라도 된 양 화제가 되지만, 원칙은 명확해요. 단순 당질, 정크푸드, 칼로리만 높고 영양가는 낮은 음식을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면 우리 몸은 불필요한 지방을 저장하려 하지 않죠. 살이 찌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이 먹는 것을 조정하는 호르몬, 그리고 그 호르몬의 건강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질에 좌우된다. 좋은 칼로리만이 체중을 감량하고, 감량한 체중을 요요 없이 유지해주는 장기적이고도 유일한 다이어트 비법. 건강하게 먹으면 0칼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