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식의 하와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박형식이 하와이 대자연 속을 담담하게 걸었다. 순수한 소년의 얼굴과 와일드한 남자의 모습 경계에서 발산되는 박형식의 다채로운 프리즘. | 인터뷰,박형식,힘쎈 여자 도봉순,화랑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서 처음 만난 박형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과 모자, 그리고 마스크로 본인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떨어진 한낮의 하와이는 푹푹 찌는 듯했다. 한증막 같았던 아스팔트 위를 얼마간 달려 제법 바다 곁으로 다가갔을 때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선선한 바람이 ‘웰컴’이란 인사를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착륙한 지 한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와이키키 해변에서 다시 만난 박형식은 빨간 반바지에 붉은 꽃이 그려진 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볼캡을 거꾸로 돌려 쓴 채 15인승 미니 버스 맨 앞자리를 사수한 그는 영락없는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면을 좋아하고, 컴퓨터 게임을 즐겨 하며 스파게티에 꼭 매운 할라페뇨를 곁들이는 사람.사흘간 촘촘한 간격으로 지켜본 배우 박형식은 팔랑거리는 무언가를 흔들면 어디서든 축지법으로 달려오는 고양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본인의 영역을 벗어난 것엔 멀찌감치 떨어져 관조하다가도 지극히 사소한 것에 ‘촉’을 바짝 세우고 주변을 환기시키는 재주가 있달까. 눈동자에 생기와 호기심이 가득한 스물일곱 살의 이 배우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대자연이 펼쳐질 때마다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서 한참을 바라봤다. 혹등고래가 출현하곤 한다는 거친 암석 사이로 바닷물이 미스트처럼 뿜어 나오던 찰나, 하와이에 처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전설을 가진 ‘붉은 새’를 마주친 순간, 그가 취했던 귀엽고도 천진한 제스처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인터뷰 도중 우연히 테라스로 날아든 작은 새 한 마리에도 이토록 열렬한 호기심을 보이던 그의 감탄과 음성은 녹음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정해진 디렉션이 도달하기도 전에 그저 하와이 대자연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반응하며 만들어낸 즉흥적이고도 찬란한 순간들은 그대로 사진에 담겨 있다. 작은 버스를 타고 와이키키 해변 동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동안 태양, 안개, 바람, 소나기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졌다. 박형식은 무엇이 다가오든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 멀리서 밀려오는 키 높이만큼의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하게 ‘첨벙’ 뛰어들고 서걱거리는 모래 위에 편안하게 눕던 그 모습은 요즘 브라운관에서 한껏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는 그의 삶의 방식과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침없고 자연스러웠다. 그날 저녁 붉은 홍학이 그려진 푸르른 하와이안 셔츠로 갈아입은 박형식은 날렵한 샴페인 잔에 따른 와인을 서너 잔 들이켰다. 평소 촬영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그는 그제야 널찍한 그릇 수북이 말아 올린 파스타를 싹싹 비웠다. 두 볼이 적당히 발그레해진 채로 의도하지 않은 취중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서울에서 하와이까지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는데, 긴긴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그동안 못 봤던 영화를 몰아서 봤다. 드라마 으로 6개월, 으로 5개월을 달려오면서 일 년간 거의 틈이 없었다. 극장에서 놓친 영화가 많아서 서너 편 정도 기내에서 봤다. 조정석 선배님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되게 좋아해서 도 봤고 도 봤다.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로 치던 OST 첫 멜로디만 들어도 몸에 소름이 쫙 돋지 않나? 현란하진 않은데 막 어딘가를 울린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다 그만둔 걸 후회했다.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인데 내가 틀리면 손등을 그렇게 때리셨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좀 참고 했더라면 지금 건반 코드라도 잡을 수 있었을 텐데.(웃음)요즘 마음이 굉장히 홀가분할 것 같다. 얼마 전 종영한 이 JTBC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의 시청률을 갱신하지 않았나? 시작하기 전에는 꽤 큰 부담감과 걱정 속에서 시작했다고 들었다.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바로 옆에 작가님과 감독님이 앉아 계시고 내 앞에 박보영 배우가 앉아 있는데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작가님뿐만 아니라 초반에는 모두가 나에 대해 반신반의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첫 주연작이나 다름없었고 검증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만했다. “잘할 거야.” 혹은 “잘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종방연’ 하고 나서 다 같이 발리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작가님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나를 정말 잘 알고 써주신 대본 같았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을 많이 꺼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 이게 연기구나, 여태까지 내가 했던 건 그저 흉내에 불과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장 가는 게 정말 행복했고 늘 설레었다. ‘오늘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런 마음으로.(웃음) 특히 소파에 봉순이(박보영)랑 같이 누워서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라고 고백할 때, 그 순간만큼은 그냥 ‘나’였다.촬영장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정말 웃음이 끊이지 않더라. 어디까지가 애드리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배우들 간의 ‘합’이 너무 쫄깃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이 행복한 사랑을 이루지 않았나? #멍뭉커플 #벚꽃키스 #키스장인처럼 온갖 달달한 해시태그를 한 다발 양산했다. 이번 드라마만큼은 ‘꽃길’만 걸은 느낌마저 드는데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은 없나?옥상에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놓인 폭탄을 두고 감정을 잡아야 하는 신이 있었다. 앞서 엄청 많은 신을 이미 소화한 상태라서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연기하려니 힘이 많이 딸리는 걸 느꼈다. 일단 찍었는데 스스로에 대해 너무 화가 나고 괴로울 만큼 원하는 감정선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이형민 감독님께서 캐치하신 거다. “맘에 안 드냐, 계속 마음에 남으면 다시 찍어보자”고 물어보시기에 “스스로에 대해 한계를 조금 느낀 것 같습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고 너무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다음 날 감독님이 어제 그 신을 다시 찍어보자고 하셨다. 스케줄이 그렇게 빡빡한 상황에서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감독님께서 나를 많이 믿어주시고 사랑해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사실 아이돌 출신 배우 앞에 으레 따라붙곤 하는 연기력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것 같다. 드라마 까지 전작들에서 차곡차곡 ‘박형식의 발견’이란 수식어로 호평 받지 않았나?다행히도 천성 자체가 ‘오그라듦’과 ‘민망함’을 잘 모르고 사는 편이다. 그건 무대에 섰을 때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카메오 식으로 스치듯이 출연하다 2012년에 드라마 와 에서 아주 작은 배역을 맡았다. 대사 몇 마디가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나게 연기했다. 질문에 언급되지 않은 작품에서 이미 ‘발연기’를 펼쳤는데 많은 분들이 그 작품을 안 봐서 잘 모르신다.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이다.(웃음)평소에 악플을 더 열심히 본다고 하던데 이유가 있나?악플 가운데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 보일 때가 있다. 스스로 느꼈던 단점을 누군가 콕 집어서 냉철하게 평가한 글을 읽어보면 역시나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다고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런 부분은 고치려고 노력한다. 어느 순간 나도 내려가는 시점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더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조차 담담하고 싶으니까.유튜브에서 희귀한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누군가 박형식의 ‘아기병사’ 시절부터 현재 모습까지 변천사를 6분가량에 걸쳐 편집해놓았더라. 스무 살에 데뷔했음에도 얼굴이 달라진 것 같다.2015년에 드라마 를 들어가면서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항상 부어 있는 얼굴로 방송에 출연했던 거다.(웃음)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먹으면서 운동하니까 젖살과 부기가 동시에 쫙 빠져버렸다. 턱선이 살아나고 볼살이 쏙 들어가더니 눈까지 커졌다. 그래서 나도 놀랐다. 원래 내 얼굴을 보게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웃음)얼마 전 새로운 소속사 UAA에 둥지를 틀었다. 앞으로의 차기작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모이지 않을까 싶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첫 작품을 어떤 것으로 선택할 것인가, 내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잘하는 걸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도전을 감행할 것인가 이런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항상 도전하는 쪽을 선택해왔는데 이제 두려움과 걱정도 생긴다. 그래도 나는 도전을 택하고 싶다. 결국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나지 않을까. 사이코 패스, 마초 냄새가 짙은 양아치 역할도 해보고 싶다. 나는 사람을 항상 ‘우주’라고 표현한다. 그 사람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기본적인 틀은 있지만 사람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면들이 있고 각자의 축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잘 끄집어내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의 가능성을 봐주는 분들과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혈액형이 AB형이라고 들었다. 사람들이 이 혈액형에 대해 갖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지 않나. 인간 박형식은 어떤 사람인가?단순하고 뒤끝도 없고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 ‘안민혁’이란 캐릭터는 나와 좀 비슷하다. 나는 좀 생뚱맞은 사람이다. 반전의 모습도 많이 가지고 있다. 조용할 것 같은데 낯선 곳에 놀러가면 위험한 것도 되게 좋아하고 미친 사람처럼 놀 때도 있다.(웃음) 이번에 발리로 여행 가서도 제트스키, 플라이보드처럼 온갖 해양 스포츠를 몸살이 날 정도로 즐겼다. 그리고 평소에 사소한 상상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다. 판타지나 SF물도 좋아하고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전부 다운받아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 ‘덕후’다.(웃음) 웹툰도 즐겨 보는데 재미있게 본 것 중에 이란 웹툰이 있다. 주인공이 분명히 죽었는데 3일 뒤에 계속 다시 살아나는 설정의 액션 누아르 만화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흥미로울 법한 발상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주인공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 웹툰 도 좋아하는데 이미 박태준 작가님이 예능 방송에서 주인공 후보로 박보검 씨나 안재홍 씨를 언급했더라. 그래서 마음을 접었다.(웃음) 주인공이랑 나랑 이름도 비슷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웹툰의 주인공 이름이 ‘박형석’이다.(웃음)해외 나갈 때 작성하는 입, 출국 신고서나 웹사이트 가입할 때 기입하는 직업란에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적는가?그냥 아티스트라고 적는다. 사실 아티스트 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림을 그리는지 음악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다른 감성과 표현력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감동을 주고 영감을 주는 사람들, 그리고 예술을 굉장히 동경한다. 한참 동안 그림 앞에서 감탄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뮤지컬을 보면서 소름이 돋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울기도 하고, 그런 모든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늘 예술을 좇으려고 하는 것 같다.지난겨울 와 인터뷰했던 박서준 씨가 이런 말을 했다. “형식이는 곧잘 ‘형! 사랑해!’라는 얘기를 굉장히 순수하게 한다. 고맙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것 같은데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사랑해’ 그러면 ‘어? 어, 나두’라고 멋쩍게 답하곤 했다.” ‘사랑’이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나?좌우명이 ‘서로 사랑하며 살자’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 의아했다. 사람들은 왜 ‘사랑해’라는 표현을 잘 안 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사랑한다’고 말한다. 팀 ‘단톡’방에도 종종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남긴다. 그럼 서로 간에 ‘나도’ 라는 답이 되돌아온다. ‘사랑해’라는 말은 전염된다. 내가 표현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도 점점 그렇게 동화된다. 사랑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여전히 “아버지, 사랑합니다. 형 사랑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연애할 때도 그런 표현력이 잘 작동하는가?물론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표현을 정말 많이 한다. 말을 안 하면 아무도 그 속을 모른다.(웃음)이상형은 어떻게 되나?나랑 죽이 잘 맞는 사람. 대화가 알콩달콩 계속해서 이어지고 무엇을 해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사람. 그런데 요즘 이상만 점점 커져서 쓸데없이 눈만 높아지고 있다. 아만다 세이프리드, 엠마 스톤 같은 사람들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웃음) 어찌 됐든 나도 밖에 나가서 계속 사람도 만나봐야 내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건데 생각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돼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