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신이치로식 미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정교함, 존재감, 고요함, 자연적인 것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집요함. 오가타 신이치로(Ogata Shinichiro)의 공간을 경험하고 난 뒤 우리에게 남는 것들이다. | 디자인,오가타 신이치로,심플리시티

3월의 도쿄에서 오가타 신이치로의 여러 공간을 들러보았다. 레스토랑 히가시야마 도쿄, 다이닝 클럽 야쿠모 사료, 전통 과자점 히가시야 긴자, 안다즈 호텔의 갤러리와 루프톱의 채플까지 말이다.그의 손이 매만진 공간을 경험할수록 그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각각의 장소를 넘어서는 내적 긴장감, 순간의 느낌을 보유하게 만들어주는 고요하지만 강렬한 분위기, 그리고 ‘일본적인 것’으로 인상되는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디테일들. 이 뒤섞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오가타 신이치로의 미감으로 수렴되어 그에게로 향했던 것이다.1998년 설립한 회사 심플리시티(Simplicity)를 통해 이솝 도쿄와 교토, 안다즈 호텔, 블룸 앤 브랜치 등의 감각적인 공간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개념의 일회용 그릇 와사라(Wasara), 세라믹 브랜드 Sゝゝ를 탄생시킨 그의 뜻은 결국 일본 전통 양식을 오늘날의 구체적인 삶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데 있는 듯하다.일본의 칼럼니스트 세이고우 마츠오카는 오가타 신이치로를 ‘진귀한 사람(Rarity)’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구석구석에 훌륭한 장인들은 무척이나 많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울러 자신의 공간을 창조하고, 다양한 제품들로 변주해내는 건 다른 차원의 퀄리티이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덜어내는 것(Tachikiri)이 무엇인지, 절제(Amasu)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다.”는 문장과 함께 말이다.도쿄 타워와 시선이 평행으로 닿는 안다즈 호텔 51층 갤러리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차분함을 넘어 조금은 무겁고 고요한 느낌이었다.심플리시티 웹사이트에서 당신이 일본 문화에 새롭게 눈뜨게 된 계기를 서술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그 문장은 디자인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계기로 느껴졌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어린 시절부터 늘 서양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20대 때 뉴욕과 유럽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그들에게 영향을 준 것들이었다. 가쓰라리큐(17세기 초 교토 외곽에 만들어진 일본 황족의 별장)에서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건축이나 고흐나 나비파의 평면적인 그림들을 비롯해 혁명 이후의 프랑스 요리에 일본 간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때 내가 느낀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두 가지의 감정은 일본 문화를 현대에 전승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으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어떤 식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접근을 시작했나?무엇을 가지고 일본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내 가게를 차리는 일은 10대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망설임은 없었다. 요리와 공간, 사용하는 그릇을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이 결국은 일본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단순한 식당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자 요리를 음미하는 장소로서 특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준비해서 1998년 히가시야마 도쿄(Higashi-Yama Tokyo)를 오픈하게 됐다.나가사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당신에게 그 도시가 당신에게 준 감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오가타 신이치로를 있게 한 나가사키에서의 유년 시절이 궁금하다.나가사키는 서양의 문화를 처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곳이다. 그 지점에서 생각해보면 내 DNA 안에 이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나가사키를 떠나 무조건 도쿄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도쿄로 온 뒤엔 다시 뉴욕으로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 일본을 떠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바다와 산, 강에 둘러싸여 살던 나가사키에서의 유년 시절이 지금의 나로 하여금 자연과 가까운 것, 자연에서 가져온 것들을 취하게 만든 것 같다.사회 초년 시절, 도쿄와 뉴욕의 트렌드를 좇다가 일본 사람으로서 일본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이제 당신이 생각하는 ‘일본적인 감각’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제일 어려운 질문이며, 이 대답이 어쩌면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적인 것이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 안에서의 어떤 감성이다. 자연을 존중하기 때문에 자연을 초월하는 것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일본인의 미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이런 마음가짐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이되 자기만의 것으로 더 세련되게 창조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한자로부터 만들어진 일본어는 중국어와는 전혀 다르게 읽는다. 한자로부터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만들어냈고, ‘음’ 밖에 없던 한자를 문자로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인들은 ‘그대로 옮겨놓는(Copy and Paste)’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며 그러한 사고와 감성은 모든 개인이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다. 나 역시 디자인을 할 때 언급한 부분들을 최대한 고려하며, 최종적으로는 의도적으로 ‘빈 공간(Empty)’을 만들어낸다. 여백을 만듦으로써 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일본 ‘모노즈쿠리’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이솝(Aesop)은 각 매장의 지역성을 섬세하게 고려하고 컨셉추얼하게 제안하는 브랜드다. 그런 브랜드의 리테일 스토어를 다섯 곳이나 디자인했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무엇보다 이솝이라는 브랜드가 제품을 만들어내는 자세와 정신, 컨셉트에 공감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었다. 절대적인 신뢰에 기반한 유일한 클라이언트라 할 수 있다. 이솝의 제품들은 확고한 브랜드 철학 덕분에 어느 장소에 놓여도 제품의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일본 내 이솝 매장을 디자인하며 각 도시의 지역성을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가령 도쿄 숍에는 카오스적이면서도 뭔가 잘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살렸다면 교토 매장에는 어디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고귀하고 우아한 무드를 만들었다. 그건 옛 교토가 수도이던 시절, 왕이 일반인들에게 절대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비로운 전통에서 기인한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교토에는 여전히 그러한 각별한 느낌이 남아 있기도 하다.당신의 레스토랑과 숍에는 특별한 미감이 서려 있다. 사람마다 그것을 정갈한 것, 모던한 것 혹은 일본적인 것으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 주어졌을 때 당신은 어떤 면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가?공간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인데, 그건 그곳의 요리와 모든 크고 작은 식기들, 궁극적으로는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내 레스토랑을 일종의 커뮤니티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텔의 경우 정말 다양한 손님들이 찾는 공적인 장소인 반면, 우리 매장은 프라이빗한 영역에 가깝다. 레스토랑까지 찾아오는 길이 어렵기도 하고, 입구 역시 한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손님 입장에서 보면 불친절한 요소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점이 어떤 경계선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우리의 컨셉트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당신의 프로젝트를 보면서 당신의 집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장 특별한 미감을 가진 남자의 집은 대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랄까. 당신의 집은 어쩐지 오가타 신이치로의 관점(View)과 연결된 지점에 있을 것 같은데.분명한 건 내가 디자인한 레스토랑이나 매장과 같은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은 지저분하고 생활감을 풍기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형태의 저렴한 물건들도 곳곳에 놓여 있다. 그 속에서 온전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사적인 나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집이 있기 때문에 난 작업(Creation)을 계속해나갈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비워낼 수도 있다. 침대를 좋아하지 않아 다다미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서예 족자가 걸린 벽이라든가 하는 고전적인 풍경은 없다. 전체적으로 일본적이라기보단 모던한 분위기에 가깝다.안다즈 도쿄(Andaz Tokyo)는 디자이너 토니 치(Tony Chi)와 함께한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각자의 공간적 컨셉트적인 영역이 나뉘었을 것 같다. 안다즈에 가면 조화롭지만 서로 다른 감각의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당신이 맡은 영역 안에서 무엇을 담고 싶었나?호텔의 중심이 되는 리셉션과 객실은 오랫동안 하얏트를 담당해온 토니가 디자인했고, 나는 그 주위를 이루고 있는 안다즈 갤러리, 스파와 풀, 루프톱 바와 채플을 담당했다. 토니와 많은 논의를 나누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다즈 도쿄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도쿄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일본의 정적인 요소도 필수적이었지만 동시에 카오스적인 도쿄의 면모도 표현해야 했다. 37층 스파는 도쿄와 바다가 연결되는 조용한 물의 움직임을 컨셉트로 했고, 루프톱 바는 옥상을 정원으로 상상하며 일본 정원의 느낌을 살렸다.당신이 디자인한 새로운 개념의 일회용 그릇 와사라 역시 일본 전통이 각별히 여기는 ‘와시(和紙, 일본 전통의 수제 종이)’와 연결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컨셉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도 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쳤을 것 같다. 얄팍한 와사라에 담겨 있을 당신의 깊은 사유의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어떤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와사라를 보고 만져보면 ‘일본’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컨셉트였다. 프랑스에 있는 사람도 이걸 보는 순간 일본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의 표정과 특징이 드러나도록 프레스 금형을 통해 만들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종이는 나무를 이용하지만, 와사라의 경우 애초부터 환경을 고려해 나무 대신 사탕수수 섬유를 사용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식사할 때 그릇을 직접 입에 댄다. 때문에 입에 접촉하는 부분은 3D 기술을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얇게 잘라냈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살짝 구부러진 곡선 형태로 잘라내 입에 접촉했을 때 어색하거나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 거다. 와사라의 흰색 역시 순박하고 신성한 느낌이 드는 일본적 정서를 더한 것이었다.당신의 디자인적 요소와 그 뿌리는 일본적인 것으로부터 기인하는데, 물리적으로 일본 밖의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궁금하다.나에게 일본적인 것은 방법론이자 사고방식이자 철학이다. 때문에 장소가 어디든 나의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예를 들어 프렌치 비스트로를 의뢰해오면 보통 파리의 비스트로에 놓여 있는 빨간색 벤치를 요소로 삼아 교토에서 만든 붉은색 직물을 사용하는 정도를 허용할 뿐, 나머지는 모두 일본 스타일로 디자인을 구상한다. 말하자면 내 모노즈쿠리 컨셉트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만일 나에게 프랑스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것을 요청한다면 난 거절할 것이다. 가장 일본적이지 않은 곳에 일본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도전이다.오가타 신이치로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해줄 수 있나?일본적인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생활양식을 만들고 싶다. 도구, 공예, 공간, 일본의 차, 음식을 먹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생활을 위한 어떤 형식 말이다. 취미나 취향의 정도가 아닌, 삶을 누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보다는 생활양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다만 난 어떤 비일상적인 것을 제안하고 그것이 점차 일상적인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