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7년 만의 신작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표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아직 번역되기 전인 문제적 일본 소설을 먼저 주문해서 원서로 읽어보았다. | 책,문학,기사단장 죽이기,하루키,일본 소설

18년 전 학교 도서관에는 이상하리만치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의 책이 즐비했다. 호기심에 한 권 읽어봤지만 솔직히 그의 작품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키와 나는 멀어지는 듯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임경선 작가의 팬이 되었고,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하루키의 팬이었다. 하루키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을 정도였다. 도대체 하루키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내 궁금증이 극에 달했을 무렵, 일본에서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루키의 신작을 출간한 신초사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출간도 되기 전에 증쇄를 결정했다. 발행부수는 1권이 70만 부, 2권이 60만 부에 달했다. 대대적인 광고 따위도 필요 없었다. 하루키 열병에 대해 매스미디어가 앞다투어 보도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 자체가 강력한 힘을 지닌 브랜드이기도 했다. 신초사는 출간 한 달 전인 1월 21일 신작 타이틀만 공개했다. 신작에 관한 정보를 일절 흘리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하루키스트(하루키의 팬)들은 책이 출간되기 전에 자신이 예상한 의 줄거리를 서로 들려주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재미있는 점은 하루키의 안티 팬들도 같이 달아올랐다는 것이다. 그의 독특한 문체를 흉내 낸 패러디가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팬과 안티 팬이 동시에 하루키 열병을 앓은 셈이다. 일본의 대형서점인 키노구니야 서점과 츠타야 서점에서는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펼쳤으며, 발매일인 2월 24일 0시부터 를 판매하는 ‘0시 발매’를 실시했다. 1초라도 빨리 하루키의 신작을 손에 넣기 위해 많은 팬들이 줄을 섰고, 그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이참에 나도 그 시끌벅적한 축제에 동참해보기로 했다. 하루키의 매력을 탐구해볼 절호의 기회였다. 는 1, 2권을 합쳐 1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소설이다. 솔직히 다 읽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섰으나, 고민 끝에 주문 버튼을 클릭했다. 책은 놀랍게도 발매 다음 날인 2월 25일에 도착했다. 책 표지에는 각각 동양과 서양의 칼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루키가 표지 시안을 결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타이틀과 표지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사전을 찾아가며 묵묵히 책을 읽어내려갔다. 주인공 ‘나’는 36세의 화가이다. 미대를 나왔으나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채,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유즈에게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 받는다. 그 길로 그는 집을 나와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을 여행한 후, 친구의 아버지(‘아마다 도모히코’라는 유명한 일본 화가)가 지은 오다와라 근교의 산장에 홀로 머물게 된다. 어느 날 산장의 다락방에서 아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타이틀의 그림을 발견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를 일본화로 번안한 작품이었다. 알고 보니 아마다 도모히코는 오스트리아 빈 유학 당시 나치 암살 계획에 가담한 전력이 있으며, 일본에 강제송환된 후 서양화에서 일본화로 전향했다. 한편 ‘나’는 산장 근처 호화 주택에 사는 멘시키 와타루라는 미스터리한 인물로부터 거액의 보수를 줄 테니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이후 ‘나’는 멘시키 와타루와 함께 한밤중에 들리는 방울 소리의 근원지를 쫓다가, 근처 숲속에 파놓은 석실 같은 구멍을 발견한다. 는 ‘하루키 초보’인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가 만들어낸 기묘한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의 문장은 스토리를 떠나 읽어내려가는(일본은 세로쓰기이다) 맛이 있었다. 스토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으며, 빨리 다음 페이지가 읽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들었다. 나는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하루키의 신작을 뭔가에 홀린 듯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는 명성대로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무시무시한 필력의 소유자였다. 문예평론가 사이토 미나코는 를 하루키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무라카미 입문편’이라고 평했다. 음악으로 치면 하루키의 베스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의 앨리스가 구멍에 빠졌듯이, 독자들은 하루키 월드가 준비한 장치에 빠질 것이며 그 마력에 저항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또한 평론가 다카자와 슈지는 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역작이라고 평했다. 신작을 통해 하루키는 ‘상실-탐색-발견-재상실’이라는 기존의 스토리 패턴을 갱신하였으며, 작가로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말했다. 신작에 등장하는 숲속의 구멍은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이음매라고 할 수 있으며, 이데아의 세계는 비현실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현실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번역가 겸 수필가 고노스 유키코는 하루키가 일인칭 문체로 복귀하면서 자기 비평과 유머가 돌아왔다고 반색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사용된 모티프가 많이 등장하며, 작가 스스로 과거의 작업을 한데 모아서 묶은 느낌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셀프 패러디는 소설 기법 중 하나이며, 효과적으로 구사하면 재미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 과거의 ‘변주’라고도 할 수 없는, ‘반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한편, 하루키의 신작에는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인 40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40만 명은 중국 측이 주장하는 남경대학살 희생자 30만 명을 10만 명이나 웃도는 숫자다. 이로 인해 하루키는 일본 우익 성향 네티즌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는 하루키를 매국노라고 부르며, 하루키의 책을 불매운동 하자, 그렇게 중국에서 책을 팔고 싶냐, 중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노벨문학상을 타려는 수작이냐 등등 하루키를 향한 비판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베스트셀러 1, 2위 자리를 지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더불어 2권 말미에 에필로그가 없다는 점 때문에 독자들은 3권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