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옷을 벗은 여자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75명의 여성이 카메라 앞에 섰다. 윗옷을 벗고 무표정한 채로. | Woman,여성,브래지어,박의령

75명의 여자가 윗옷을 벗었다. 상반신에 브래지어만 입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그 모습을 서울에 사는 사진가 박의령이 찍었다. 촬영은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이뤄졌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 말이다. 하늘에 해가 떠 있거나 밤이 되어 어두워졌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몰래 찍으려 했고 지나가던 취객은 불쾌한 말을 내뱉었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어느 사진가의 작업 과정 속에 최근 벌어진 여성혐오와 성폭력 관련 이슈가 짜인 대본처럼 재현된다. “그들을 향해 분노했고 욕도 했다. 모델과 나 단둘이 거리에서 맞닥뜨린 그런 상황 하나하나가 진짜 현실인 거다.”도발적인 프로젝트에 동참한 75명의 여성들은 직업, 나이, 키, 몸무게 등 어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다. “절대로 인터넷에 모델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리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고 떨어뜨리는 과정도 싫었고. 알음알음 알게 된 주변 사람들, 친구, 친구의 친구, 나도 사진에 들어가 있다.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섰다. 속옷 색깔, 걸친 윗옷, 헤어, 메이크업 그 무엇도 사진가는 관여하지 않았다. 모델에게 표정이나 포즈도 최대한 요구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사진을 보면 뭐랄까, 알게 모르게 자신감과 어떤 결의 같은 것이 분명히 보인다고 생각한다. 필름 카메라로 투박하게 찍은 사진들이라 단점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데 되려 작은 해방감이 느껴지더라. 이상하게도 75번째 사진을 찍고 나서 카메라가 거의 수명을 다했다.”인터넷 사이트를 떠도는 상의를 벗은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상해보라. 야릇하고 나긋한 사진에서 느껴지는 연출된 감정 따위가 조금도 없다고 할까?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찍힌 수동적 사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도록 권고하는 능동적인 사진이란 느낌마저 들었다.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예술 축제인 미국 ‘버닝 맨 페스티벌’에서 벌어지는 ‘크리티컬 티츠(Critical Tits)’라는 퍼레이드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성들이 상의를 훌훌 벗어 던진 채 자전거나 바이크를 타고 모래 위를 자유롭게 달리는 그 모습 말이다. 대상화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넘어 자신들의 선택으로 옷을 벗고 감춰져 있던 것을 떳떳하게 드러내며 즐기는 모습은 사막이든 서울이든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여름 내내 찍었는데 정말 더웠다. 나중엔 다들 옷 입기 싫어하더라.(웃음) 시원하고 너무 편하니까. 74명을 만나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다양한 몸이 있는데 왜 그렇게 외면해왔을까? 스스로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 누군가 사진집을 보게 된다면 그런 아름다운 구석을 봤으면 좋겠다.”그리고 나는 이 사진집을 75A라는 밴드의 음악과 함께 들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진가 박의령에 말에 따르면 “사진집은 음악과는 별개이면서 하나이다”. 75A는 프로듀서 그레이(Graye)와 기이한 느낌으로 노래하는 프리크 포크(Freak Folk) 싱어 오요(Oyo)의 프로젝트로 실험적이고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다. 사진, 옷, 뮤직비디오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는 75A라는 비정형 프로젝트가 궁금하다면 지금 한창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인 텀블벅(tumblbug.com/75a)에 들어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