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사이즈의 진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날렵하다는 표현을 넘어 연필처럼 가느다랗고 몸에 꼭 맞춘 실루엣이 세상을 휩쓴 이후,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제 모델의 몸보다 두어 배는 커다란 오버사이즈에 몰두 중이다. 과연 이 유행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까, 아니면 새로운 스키니 진이 될까? | 오버사이즈,트랜드

2017년을 코앞에 둔 지금, 거리를 휩쓰는 유행은 마치 기성복의 반작용처럼 서서히 일어난 ‘커다란 옷’의 향연이다. 저명한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바니스 뉴욕의 크리에이티브 앰버서더인 사이먼 두넌(Simon Doonan)은 이러한 ‘현상’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을 와의 인터뷰에 내놓았다. “우리는 노출증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루엣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죠. 커다란 콤 데 가르송 코트는 아름답고, 기적 중의 기적이며, 또한 모두에게 맞죠!” 그렇다면 요즘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오버사이즈’에 이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2000년대 중반에도 헨릭 빕스코브나 베르나르 빌헬름처럼 입체 재단과 변형한 오버사이즈 유행을 이끈 디자이너들이 존재했지만, 스트리트웨어가 고급 기성복 문화와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2010년대까지는 어디까지나 소수에 그쳤다. 에디 슬리메인과 라프 시몬스가 질 샌더와 헬무트 랭의 간결한 디자인을 유산 삼아 2000년대 젊은이들의 옷장을 여성복 치수 청바지와 테일러드 재킷으로 가득 채운 시절이었다. 한 치수라도 더 작게 입고, 깡마른 몸의 실루엣을 드러내는 게 화두였던 만큼 칼 라거펠트가 디올 옴므를 입기 위해 수십 킬로그램을 줄였다거나, 아크네 스튜디오와 칩 먼데이처럼 스키니 진에 기반을 둔 스킨디나비아 브랜드들이 모두 이 시기에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하지만 유행은 속절없이 다시금 지나고 있다.우리는 노출증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루엣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죠. 커다란 콤 데 가르송 코트는 아름답고, 기적 중의 기적이며, 또한 모두에게 맞죠! by 사이먼 두넌버질 아블로의 오프 화이트, 카니예 웨스트가 디자인한 아디다스, 고샤 루브친스키가 포착한 러시아 소년들의 헐렁한 1990년대 빈티지 트레이닝복 스타일이 위세를 떨치며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가 다시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에 태어나 이러한 유행을 직접 겪지 않은 젊은이들이 오버사이즈와 스포츠웨어의 만남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버사이즈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각인한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와 라프 시몬스가 시차를 두고 만든 룩은 마니악한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렀다. 당시 대중은 아직 그들을 따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인스타그램과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를 등에 업은 유명인사들의 데일리 웨어가 세상에 퍼지며 이러한 공식은 금세 깨졌고, 또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가냘플 정도로 가느다란 실루엣이 인체의 선이 가진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면, 지금의 큰 실루엣 역시 우리가 옷을 입었을 때, 극단적으로 강렬하고 우아한 인상을 남긴다. 처음 오버사이즈를 전파한 사람들은 커다란 플라이트 재킷과 코트 아래 찢어진 스니키 진을 입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사람들은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가 1990년대 고급 기성복과 스트리트웨어를 재해석한 ‘빅 사이즈’의 진화를 받아들였다. 록 밴드 로고를 넣은 챔피온 후드 파카에 남성용 데님 트러커 재킷을 입고, 극도로 통이 넓은 데님 청바지 혹은 몇 치수는 더 큰 슈프림의 트레이닝 바지를 입는다. 패션 안에서도 남성들의 문화로 오랜 시간 존재한 스니커즈 역시 오버사이즈 유행과 더불어 남녀 모두에게 좀 더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지금 인스타그램에 ‘#오버사이즈’를 검색하면, 한국어만으로 1만3천8백여 개의 게시물이 뜬다. 겨울임을 고려해 ‘#오버사이즈 코트’를 넣으면 무려 1만7천 개를 훌쩍 넘는다. 커다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야구모자를 쓴 채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의 사진은 남녀 불문하고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의 주요 ‘포착’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슬림 피트가 처음 대중에게 인식될 때 저런 바지를 어떻게 입느냐는 저항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하나의 단기 유행을 넘어 클래식에 가까운 스타일로 정착하는 과정에도 비슷한 저항이 따를 수 있다.그렇다면 오버사이즈 혹은 빅 실루엣은 새로운 고전으로 패션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까? 실제로 이러한 스타일은 간편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의복 진화 과정과 정반대에 있다. 한 번이라도 커다란 소매가 무릎을 치는 코트를 입고 도시를 거닐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란 걸 금세 깨닫는다. ‘보여주기’와 ‘차별성’에는 최적화했지만, 당신이 매일 전투복처럼 입고 일을 하러 나갈 만한 옷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도 혜성처럼 나타난 어느 디자이너가 모두의 취향에 단체 최면을 걸지 않는 한, 한때 유행으로 그칠 것처럼 보였던 커다란 옷들의 향연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사이먼 두넌의 얘기처럼, 빅 실루엣 코트가 지닌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는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소셜미디어 시대와 제법 잘 어울리니까 말이다. 노파심에 하나 덧붙이면 커다란 실루엣과 커다란 실루엣을 ‘함께’ 입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아는 모든 과도한 스타일과 더불어 두 가지 예측 가능한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전위성을 띠거나, 남의 옷을 빌려 입었다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한 다수에게 받거나.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이는 곧 패션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