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OUT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세 명의 작가가 그들의 삶을 예상 밖으로 이끈 옷의 마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 BAZAAR,바자

THE DRESS REHEARSAL내가 열다섯 살이 다 돼가던 1975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자라고는 전혀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남자애들을 무서워했다. 어릴 적부터 언니, 여동생들과 함께 자라났으며, 여자학교에 다니던 나는 남자애들이 왜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길고 마른 몸집, 뾰족한 팔꿈치, 무식하게 큰 손, 냄새 나는 발, 계속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내 가슴에만 눈길을 돌리는 모습. 남자와 키스를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도대체 어떻게 그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이런 일종의 남성혐오감만큼이나 강력한 두려움을 준 건 바로 옷이었다.(물론 남자아이들보다는 겁이 덜 났지만.) 각각의 아이템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무엇을 입어도 상관없었으니까. 그러나 옷차림을 통해 남자아이들의 호감을 산다는 개념 자체가 두려웠다. 당시 나는 깡말랐었고, 사춘기가 늦어 몸이 덜 발달됐으며 헝클어진 머리에 특별한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저 타인의 관심을 피해 나만의 작지만 와일드한 꿈을 꾸며 살아가고 싶었다.그러던 중 난 테니스 클럽 디스코(Tennis Club Disco)에 초대를 받았다. 초대를 받았다고는 말하지만, 사실 내 친구 언니의 남자 친구가 우리에게 따라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솔직히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엄마에게 숙제가 많다고 핑계를 댔다. 게다가 그날 저녁엔 드라마 가 방영되는 날이었다! 엄마는 미쳤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초대! 그것도 테니스 클럽 디스코에! (왜 엄마들은 테니스 클럽을 좋아할까?) 물론 초대를 받았으니 가야 했다!엄마는 내게 메이크업을 해주겠다며 메리 퀀트 펜슬과 네이비 블루 마스카라로 눈을 색칠했다. 거울로 고개를 돌리니 헝클어진 머리의 판다 한 마리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옷은? 평소 용돈으로 작은 애완용 파충류나 양초 만들기 재료를 사던 내가 유일하게 산 옷인 에탐(Etam)의 데님 스커트를 입었다. 학교에 신고 가는 신발과 너무 잘 어울려서일까? 엄마는 그런 차림으로 가면 어떤 남자도 관심 갖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남자라. 갑자기 확 겁이 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목이 칼칼한 것이 왠지 감기에 걸릴 것 같다고 둘러댔다.그러자 엄마는 자신의 오시 클라크 드레스를 빌려주겠다고 했다.나는 이 드레스를 잘 알고 있었다. 블랙 크레이프 소재에 허리선이 높은 긴 드레스로 앞부분에 작은 단추들이 달려 있었고, 목선은 살짝 깊게 파였으며 긴 장식 띠가 달려 있었다. 엄마가 이 드레스를 입으면 마치 매거진 속 모델처럼 아주 아름다워 보였다. 엄마가 그려준 판다 눈 메이크업과 짤막하고 삐죽삐죽 솟아오른 헤어스타일에 이 드레스를 입으니 사람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꼭 라이자 미넬리 같다고 말했다.그 모습으로 난 디스코장에 도착했다. 춤추는 사람들의 땀 냄새가 나는 길고 어두운 홀을 지나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맥주를 들이켜는 바에선 불빛이 번쩍거렸고, 음악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곳은 남자애들로 가득했다. 춤을 추거나 바 근처에 접근하기 위해 사람들을 밀치고, 여자애들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화장실 뒤뜰에서 토를 하는 남자아이들. 친구의 언니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내 친구는 남자애 한 명을 꼬셔 몸까지 더듬는 데 성공했다. 반면 나는 롱 블랙 오시 클라크 드레스 차림으로 사과주 반 잔을 들고는(입엔 대지도 않았다) 얼어붙은 듯 서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청바지 차림임을 인식하고 있었다.그냥 그렇게 서서는 시간이 빨기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그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은근한 두려움, 모든 점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두려움이다. 내 옷차림은 모든 이들에게 대놓고 소리치는 듯했다. 내가 삶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삶에 서투르다는 것, 주어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그러나 그날 저녁 이후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누구의 관심도 끌고 싶지 않았고, 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겁 많고 내성적인 소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해 가을, 나는 눈가에 아이섀도를 바르기 시작했고, 립글로스도 발랐다. 용돈을 모아 카우보이 부츠를 사고, 시스루 레이스 속치마와 스커트 차림에 그 부츠를 신기도 했다.(엄마의 에서 보고 따라 한 것이었다.) 머리도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뒀다.그리고 얼마 후, 하늘하늘한 라일락 컬러 드레스와 귀여운 하이힐 차림으로 어느 파티에 참석했고, 파티에서 돌아와 어두운 집 앞에서 내 프랑스 펜팔이었던 친구의 오빠와 키스를 했다. 그리곤 일 년 정도 키스를 하지 못했다.(예전에는 그렇게 겁이 나던 남자에게 관심이 한번 가기 시작하니 오히려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 키스의 추억은 좀 더 강한 감정과 연관되어 남아 있다. 주어진 상황에 완벽한 옷차림을 했다는 생각에서 느끼는 희열, 집에 있으면서도 신비롭게도 세상과 교류한다는 생각에 느끼는 희열이 그것이다.누군가 당신에게 옷은 삶에서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귀에 담지 말도록 하라. 색상, 무게, 재단, 애티튜드 등 우리의 몸을 옷이 어떻게 감싸느냐에 따라 새롭고 신비스러운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신비로움은 우리 마음의 영양분이며 삶의 힘이다. 에너지와 주어진 상황, 그리고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이다. 그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그렇다면 처음 입었던 오시 클라크 드레스는 어떻게 됐을까? 현재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내가 사는 로프트의 옷장에서 잘 살고 있다. 며칠 전 문득 눈에 띄어 입어봤는데, 40년이 지나 폐경기에 이르렀으며, 삶에 있어 온갖 고통을 겪어본 중년이지만 마음만큼은 아직도 괴짜 같고 활기찬 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드레스가 내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글/ Julie Myerson30 MILES FROM PARIS때는 1979년 봄, 인버네스(Inverness)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수학 여행으로 나흘 동안 파리에 머물렀다. 실제로 머무른 곳은 파리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진 호스텔이었지만. 일정은 나흘이었지만 실상은 이틀뿐이었다. 스코틀랜드 고지에서 기차, 페리, 버스를 갈아타며 파리까지 가는 데 하루, 돌아오는 데 또 하루가 꼬박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파리에서 떨어진 곳에 머물렀지만 어쨌든 파리에서 이틀을 보낼 수 있었으니. 파리! 당시 프랑스 출신 선생님의 고향으로 선생님은 나를 똑똑하다고 귀여워했고 책도 선물해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그 책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해서 선물 받은 책이 카뮈의 와 사르트르의 였다.(읽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책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파리는 내가 살던 동네 극장에서 자막이 딸린 외국 영화를 상영하는 일요일 저녁에 본 것들 중 가장 쿨한 영화들의 배경이었고, 샹송의 수도였다. 나는 샹송도 좋아했고, 프랑스 재즈도 좋아했으나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잘난 체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우리는 들고 온 배낭을 침대 위에 풀었다. 학교 친구들은 당시 크게 유행하던 영화 의 올리비아 뉴튼-존처럼 높게 묶은 헤어스타일에 풍성하게 퍼지는 1950년대 풍 스커트, 아주 밝은 핑크와 옐로, 화이트 아이템,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발목 양말 룩을 즐겨 입었다. 개인적으로 난 그런 스타일을 입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게 분명했고, 당시 열여섯 살이던 나는 옷에는 별 관심 없이 카뮈를 읽는(아니, 카뮈를 곧 읽게 될) 소심한 소녀였으니까. 그리고 사실 패션에 신경을 안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진정 패셔너블했다. 나는 배낭에 엘비스 코스텔로의 ‘This Year’s Model’ 투어 공연 티셔츠와 세탁 후 곱게 다림질해 접어둔 아빠의 오래된 화이트 작업 티셔츠를 엄마 몰래 즉흥적으로 챙겨 가져갔다. 친구들은 의상을 착용했고, 난 내 청바지와 아빠의 셔츠를 입었다. 셔츠는 하도 길어서 옷자락이 내 무릎 뒤까지 내려왔다. 친구 한 명은 버스를 기다리던 중 호스텔 밖 잔디밭에 자라난 데이지를 꺾어 만든 목걸이를 내게 줬다. 나는 그 목걸이를 머리에 얹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나는 길고 어깨선이 팔 중간까지 내려오는 이 셔츠, 단추를 풀어 입는 이 셔츠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도 좋았다. 집이나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절대로 입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럴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갈 땐 날씨가 좋아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고향에서는 4월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날씨, 만약 그렇다고 해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날씨였다.여행 마지막 날, 스코틀랜드 고지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난 선생님들로부터 베스트 드레서 상을 받았다. 장난으로 상을 준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뭐, 지금 와서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아직도 난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국의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며 바람에 흩날리던 셔츠, 몰래 슬쩍 한 그 화이트 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꽃을 장식한 채 차들이 달려가는 파리의 길가에 선 내 모습을. 난 날개를 달고 있었다. 글/ Ali SmithA UNIFORM FOR LIVING어린 시절 나는 깔끔함과 도덕성을 늘 연관 지어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잘 정리 정돈되어 제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만약 외모가 완벽하다면 다른 면에 있어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는 논리였다. 옷차림이 완벽하다면 내 삶의 잘못된 일들이 내 잘못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나는 아이가 서툴게 그린 듯한 저지와 스커트를 매치해 입는 모습을 꿈꿨었다. 그것도 네이비나 차콜 그레이, 짙은 그린 컬러로. 멋지지 않을까?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되지만, 왠지 유니폼을 입으면 도발적인 매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금단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특정한 한 아이템에 항상 마음이 끌렸다. 딱 무릎까지 내려오는 A라인 스커트. 학생이나 도서관 사서를 연상시키며 어떻게 보면 텐트처럼 보이기도 하는 A라인 스커트에는 지적인 품위가 있으며 여성스러우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멋이 있었다. 어떤 몸매에도 잘 어울리며 이 아이템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판단하기 힘들기에 신비로운 멋도 있었다. 게다가 3퍼센트 정도 왕족적인 위엄도 갖고 있었다.(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즐겨 입는다.)A라인 스커트는 그다지 흥미로운 아이템이 아니다. 골드 레이스 소재에 부채꼴 모양을 한 드레스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집중시키는 그런 아이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A라인 스커트가 성실하고 진지해 보여서 좋다. 입은 사람이 믿음직해 보여서 좋고, 무슨 일을 맡겨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여서 좋다. 입고 글을 쓰기에도 최적인데, 이런 점에서 생각의 흐름을 조이는 펜슬 스커트와는 정반대다.내가 A라인 스커트를 입고 기차를 타면 사람들이 나를 이따금씩 종업원으로 착각할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그러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둔다. 뭐 문제가 있나?) 백화점에 가면 여자들이 내게 드레스 몇 점을 건네주며 이걸로 하겠다고 말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가까이 보이는 진짜 종업원에게 일을 맡긴다. 마드리드 리츠 호텔에선 누군가 내게 체크아웃을 늦게 하고 싶다고 부탁한 적도 있었는데,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좋아했었다.(어딜 가든 내가 그곳에 속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마음에 든다.)가끔씩 그레이 울 소재의 A라인 스커트와 짧은 소매의 그레이 저지 톱에 힐을 신고 초저녁 외출에 나서면 발걸음도 가볍다. 마치 버스운전사, 아니면 버스터미널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시크한 룩을 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느껴져서 좋다. 어제 저녁에는 아이보리색 실크 크레이프 소재 블라우스에 토마토 레드와 하늘색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었는데, 마치 여행의 황금시대였던 1950년대 비행기 승무원이 된 것만 같았다. 그린과 블랙 스트라이프 스웨터와 잘 어울리는 블랙 워치의 타탄 A라인 킬트도 한 벌 가지고 있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입고 산책을 나서고 싶어진다. 이 모든 게 믿음직한 룩이다. 진지하면서도 장난기가 적당히 섞여 있어 입고 나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해도, 무엇이 되어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언덕을 오르거나 학교 입구를 지키고, 도서관 정리를 해야 한다고? 내겐 문제없다. 예전부터 운동에는 관심도, 자신도 없지만 화이트 코튼 피케 소재 A라인 테니스 스커트라면 자신 있다.A라인 스커트는 좁은 것에 대한 패션의 집착도 거부한다. 여자가 작아 보일수록 높은 가치가 있다는 관점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지난 주말, 딸과 함께 네이비 트위드 A라인 스커트를 입어봤다. 딸이 말했다. “예쁘긴 한데, 마치 유로스타 열차에서 일하는 사람 같지 않아요?”어떻게 해야 할까?자, 승차권 확인하겠습니다! 글/ Susie Boyt 번역/ 찰리 강 에디터/ 이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