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를 모든 웹툰 작가에게 일반화시킬 수 없음을 미리 말해둔다. 난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난다. 세면을 하고 가벼운 아 침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고 작업실에 출근하 면 보통 8시 30분 정도 된다. 책상에 앉으면 밤새 온 메일이나 쪽지 등을 체크하고, 오늘 해야 할 원고의 아이디어나 시나리오를 정리한 후 곧이어 콘티 스케치 작업에 돌입한다. 오전은 집중력과 능률이 매우 높은 시간이라 되도록 이때 실제 원고 작업을 많이 해두려고 한다.
정확히 12시가 되면 작업실 바로 옆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점 심을 먹고 다시 작업실로 향한다. 한참 노곤해지는 오후 3시쯤에는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기도 한다. 이렇게 굳이 낮잠을 챙겨 자는 이유는 그 이후의 능률을 위해서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한두 시간을 멍히 앉아 인터넷 서핑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피곤함을 확실히 풀고 집중해서 작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때로 집중이 안 될 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휴대용 태블릿을 들고 동네 카페에서 작업하기도 한다. 해가 지면 귀가해 저녁을 먹고 잠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모든 일과가 끝나면 대략 10시. 바빠서 놓쳤던 예능 프로그램 다시 보기나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 혹은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특별히 외출하 여 술이라도 한잔 마시지 않는 이상은 이것이 나의 평소 일과다. 매우 평범하다. 이런 생활 패턴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작가가 그렇게 생활해요? 보통 올빼미 아닌가요?” 물론 그랬던 적이 있었다. 확실히 조용한 밤 시간에 집중도는 자연스레 높아진다. 하지만 그 패턴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건강이 상하기 마련이다. 나는 엔딩도 휴식도 없는 장기 연재를 이미 8년째 하고 있는 웹툰 작가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내 작가로서의 포부의 90%를 차지 했다. 물론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젠 그보다는 ‘얼마나 오래 작가생활을 하면서 한 집의 가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냐’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나는 부인하지 못한다.
대중을 대상으로 매주 몇 회씩 꼬박꼬박 작품을 뽑아내야 하는 직업이 의미하는 것은, 아파서도 안 되고, 공휴일이나 연휴라고 쉬어서도 안 되며, 그와 동시에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져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퀄리티를 떨어뜨리기는커녕, 점점 높아지는 대중의 눈높이와 재미의 포만감 을 채워주기 위해서 더 많은 아이디어로, 더 긴 분량의 이야기를 한 편 안에 채워 넣어야 한다. 인기 순위는 뒤쪽으로 밀린 지 오래다. 매일매일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신선한 연출력으로 무장한 신인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상위권을 점령해나가는 가운데 이제 너무나 익숙하여 신선함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만화를 연재하는 중년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치 체력장의 오래 버티기를 하듯 두 손에 힘을 꽉 쥐고 철봉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한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내 작가로서의 포부의 90%를 차지 했다. 물론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젠 그보다는 ‘얼마나 오래 작가생활을 하면서 한 집의 가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냐’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나는 부인하지 못한다.
작가로서 작품에 임하는 집중력과 긴장도 중요하지만, 평생 작가로서 살아남으려면 생활과 활동의 적당한 밸런스도 중요하다. 그래서 결론 적으로 내 생활이 이처럼 자로 잰 듯 평범하게 최적화된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다만 이런 삶에서 굳이 단점을 찾자면 ‘새로운 모험’을 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방법은 찾아야 한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은 웹툰, 나아가 콘텐츠의 세계라 는 거대한 숲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내 앞을 가로막는 무성한 수풀에 낫질을 해야 한다.
“그러지 말고 만화를 좀 미리미리 그려놓고 한 달 정도 푹 쉴 수도 있잖 아?” 그것도 맞는 말이다. 웹툰 작가는 원하는 대로 시간을 배분해서 사 용할 수 있다. 그것은 가히 축복에 가까운 특혜다. 하지만 생활툰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우리의 생활 자체를 만화로 옮기는 경우에는 그날그날 변하는 날씨와 뉴스마저 작업 내용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활툰은 생선회와 비슷하다. 미리 만들어놓으면 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더불어 마감 10분 전까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컷 이라도 더 웃겨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늘 말하지만 나는 천부적인 재능과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노력은 기본적으로 받쳐 줘야 지금의 입지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
웹툰의 미래는 매우 긍정적이다.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고, 사람들의 관심과 수요는 증폭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기획자와 담당자들, 그리고 작가들이 만들어낸 멋진 결과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마냥 밝지 않은 이야기도 숨어 있다. 갑작스러운 대중의 관심에 공황장애에 걸린 동료, 이유 없이 이어지는 악플 속에 펜을 놓으려는 친구,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몇 시간이고 지하철 순환선을 빙빙 돌며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 일명 메이저리그라 불리는 유력 포털 사이트의 연재처를 잡지 못 해 받은 자존심의 상처가 곪아 악만 남은 사람도 있다. 나는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길이다. 이건 누군가에겐 꿈인 직업이다.
오늘도 친구의 전화가 온다. “오늘 저녁에 뭐해?” “응, 마감이라 일해야 해.” “너는 매일매일 마감이냐?” 그렇다. 매일매일 마감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내 만화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가 있다. 그러니까 어찌 됐든 아직은,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