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 27 S/S 쇼를 본 에디터가 '가벼운 사랑'을 다짐한 이유
새 컬렉션은 가벼움과 해방감, 서로 다른 존재가 연결되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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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ER, CLOSER
지난 9월,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마주한 보테가 베네타 2027 S/S 컬렉션은 가벼움과 해방감, 서로 다른 존재가 연결되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덜어내고, 더 깊이 느끼는 것. 그 ‘가벼움’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쇼 시작 전, 루이스 트로터가 게스트에게 전한 선물. 좌석이었던 일리야 골드만 구빈의 <카톤 호커> 작품 위에 가죽 꽃 오브제가 놓여 있었다.
“It’s more beautiful when we open up and get to know each other.” 지난여름에 자주 듣던 노래 ‘Less than a Lover’ 속 가사 한 줄이다. 마음의 한 겹을 벗고 서로를 알아갈 때, 관계는 더 아름다워지고 단단해진다는 의미. 보테가 베네타의 2027 S/S 쇼를 보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는 자신의 세 번째 컬렉션에서 ‘가벼움’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정교함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힘을 뺀 테일러링, 가벼운 가죽, 몸과 옷 사이에 여유를 둔 실루엣. 이로써 가벼움과 해방감을 이야기한다. 과연 무언가를 덜어내는 일은 우리가 맺는 관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난다. 겹쳐 입었던 옷은 하나씩 가벼워지고 몸은 이전과 다른 감각을 느끼기 시작한다. 루이스는 이번 컬렉션 노트를 통해 이를 “신체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벗어냄(de-robing)’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옷이 점차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공간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옷과 몸 사이에는 공기가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실루엣은 몸을 감싸고 제한하기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향해 나아간다. 보테가 베네타의 새 컬렉션 역시 그렇다. 테일러링은 정교함을 잃지 않은 채 한층 느슨해졌고, 가죽은 모델의 캣워크에서 느껴지듯 가벼워졌다. 무거워 보이는 프린지가 걸음마다 깃털처럼 흩날리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 또한 유연해졌다. 메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유니섹스가 아니다. 서로 다른 위치와 표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자, 용기를 내 보호구 한 겹을 벗어냈다. 그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어쩌면 서로 다른 채로 연결되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보테가 베네타의 중심에는 하우스 상징인 ‘인트레치아토’가 있다. 이는 소재를 엮는 수공예를 넘어 서로 다른 분야와 사람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곤 한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모인 아티스트들의 작업도 그 연장선에 놓인다. 먼저, 일리야 골드만 구빈(Illya Goldman Gubin)이 맡은 좌석. <카톤 호커(Karton Hocker)> 스툴은 그가 직접 끌어안아 구기고 형태를 만든 하나뿐인 카드보드 박스다. 평범한 소재가 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거쳐 고유한 조형 오브제로 거듭났다. 쇼의 서막에는 플로리안 해커(Florian Hecker)가 런웨이 공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사운드 설치 작품이 펼쳐졌다. 구조물 20개는 각각 스피커와 사운드 리플렉터로 구성돼 각기 다른 소리를 공간에 투사했다. 소리들은 순간마다 하나의 유동적인 구성을 이루며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청각적 경험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마크 레키(Mark Leckey)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엮어 완성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더해졌다. 서로 다른 소재와 감각, 시간과 사람. 각자의 고유함을 지우지 않은 채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 어쩌면 연결이란 서로를 똑같이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다른 채로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가벼움에는 낙관이 깃들어 있다. 몸과 옷,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까지도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낙관이다.” 이번 쇼 노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여름은 하나의 제안이 된다. 덜 입되, 더 깊이 느끼는 것. 그리고 공기가 머물고 흘러갈 수 있도록 무언가를 열린 채로 남겨두는 것.” 도래하는 여름엔 그 노래처럼 ‘연인 아닌 그 어딘가’의 관계에도 마음을 열어보려 한다. 찬찬히 알아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고, 오래 음미해야 발견되는 아름다움도 있으니까. 물론 가벼워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다른 소재를 엮어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인트레치아토처럼 관계 역시 다름을 지우지 않은 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번 컬렉션이 말하는 가벼움은 무언가를 덜어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일 여백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Credit
- 사진/ © Bottega Veneta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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