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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로베르타부터 에이전트 루비까지,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질문해온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프로필 by 최노아 2026.10.01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AI가 만든 작품이 경매장을 뒤흔드는 지금,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 50년 전부터 기계와 협업하며 인간의 정체성과 기술의 역할을 탐구해온 린 허쉬만 리슨.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는 아시아 첫 개인전, AI 시대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을 생각해볼 시간.

사진/ 린 허쉬만

사진/ 린 허쉬만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경매에서 수억 원에 팔리고, 수천 명의 예술가가 반대 서명에 이름을 올린다. 기계는 예술가의 자리를 빼앗을까. 그 질문에 반세기 전부터 다른 방식으로 답해온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린 허쉬만 리슨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경매장에서 시작된 질문


사진/ 오비어스 아트

사진/ 오비어스 아트

2018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흐릿한 얼굴의 남자를 그린 초상화 한 점이 43만 2,500달러(원화 약 5억 원)에 낙찰됐다. 이는 예상가의 40배를 넘긴 가격으로, 작품 이름은 <에드몽 드 벨라미>다. 그런데 작품을 그린 주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전 세계가 놀랐다. 프랑스의 인공지능 아트 그룹 ‘오비어’가 인공지능(AI)에 미술사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든 초상화로, 세계 주요 경매사에서 판매된 첫 인공지능 작품으로 기록됐다. 4년 뒤인 2022년에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도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이 수상했다. 그런데 창작자가 작업 과정을 스스로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주최 측은 인공지능 사용을 알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며 수상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저작권청은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 크리스티가 다시 판을 벌였다. 인공지능 작품만 모은 첫 경매 ‘증강 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을 발표하자, 다음 날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켈리 맥커넌과 카를라 오르티스가 경매 취소를 요구하는 공개 서명을 시작한 것. 인간 예술가를 존중한다면 경매를 멈추라는 요구였다. 서명에만 약 6,500명의 예술가가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경매는 예정대로 열렸고, 72만 8,784달러, 약 10억 7,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AI와 예술을 둘러싼 질문 셋


사진/ edmond_belamy

사진/ edmond_belamy

인공지능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은 세 개의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누가 ‘진짜’작가인가라는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의 주인은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일까, 명령어를 입력한 사람일까, 아니면 기계일까. 법은 조금씩 답을 내놓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지난해 1월, 인공지능을 보조 도구로 활용한 작품은 저작권 등록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기계가 모든 것을 결정하면 저작물로 보기 어렵지만, 인간이 핵심적인 창작 과정과 판단에 관여했다면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누구의 능력, 아이디어를 학습했는가라는 질문이다. 크리스티 경매에 반대한 예술가들의 논리도 여기에 있었다. 이미지를 만드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그려온 방대한 이미지를 학습해 작동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원작자의 동의나 보상이 있었느냐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 지방법원이 동의 없이 저작물을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한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판단한 사례도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하다. 기술은 도구인가, 대체재인가. 붓과 카메라, 포토샵이 그랬듯 인공지능 역시 예술가의 손에 들린 새로운 도구일 뿐일까. 아니면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기술일까. 앞의 두 질문이 법과 제도의 영역이라면, 이 질문은 결국 예술가들이 직접 답해야 할 문제다.





기계와 작업한 지는 이미 50년


사진/ harold_cohen_휘트니 뮤지엄 제공 사진/ harold_cohen_휘트니 뮤지엄 제공 사진/ harold_cohen_휘트니 뮤지엄 제공 사진/ harold_cohen_휘트니 뮤지엄 제공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예술가와 기계의 관계를 둘러싼 고민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함께 시작된 것도 아니다. 크리스티의 ‘증강 지능’ 경매 출품작 목록에는 지금의 인공지능 작가들과 나란히 해롤드 코헨과 찰스 쿠시리 같은 컴퓨터 아트의 선구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charles_csuri_찰스 쿠시리 공식 홈페이지 charles_csuri_찰스 쿠시리 공식 홈페이지

코헨은 1970년대부터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작가다. 202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은 그의 초기 로봇 드로잉 기계를 재현하며 경력 전반을 조망하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미드저니가 등장하기 반세기 전부터 예술가들은 이미 기계와 함께 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 작가가 있었다. 1941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린 허쉬만 리슨이다. 코헨이 기계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면, 리슨은 기계와 기술이 인간에게 무엇을 하는지를 물었다.


사진/ harold_cohen_휘트니 뮤지엄 제공

사진/ harold_cohen_휘트니 뮤지엄 제공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사진/<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 사진/ 린 허쉬만 제공

1973년, 린 허쉬만 리슨은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라는 여성을 만들었다.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작가가 직접 로베르타가 되어 살았고, 옷차림과 화장, 몸짓과 말투, 필체까지 하나하나 설계했다. 로베르타는 자기 이름으로 된 운전면허증과 은행 계좌, 아파트까지 가졌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사회의 기록 속에서는 한 사람으로 실존하게 된 셈이다. 로베르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그의 존재를 보증한 것은 내면이 아니라 관공서의 문서와 은행의 기록이었다. 작가는 로베르타의 몸짓을 분석한 차트에 당시 여성에게 흔히 붙던 ‘히스테리’ 같은 단어를 캡션으로 달기도 했다. 여성이 어떻게 관찰되고 분류되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였다. 계정과 데이터, 알고리즘의 추천을 통해 한 사람의 취향과 정체성이 끊임없이 분류되는 지금 돌아보면, 로베르타는 오히려 낯설지 않다. 우리가 남긴 기록으로 또 하나의 ‘나’가 만들어지는 시대를 반세기 앞서 상상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시 비평가와 큐레이터, 딜러들은 이 작업을 두고 예술이 아니라고 했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로베르타는 이후 그의 작업 전체의 토대가 됐다.


사진/ 린 허쉬만 공식 홈페이지 사진/ 린 허쉬만 공식 홈페이지 사진/ DiNA_린 허쉬만 제공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등장하자, 작가는 그 질문을 인공지능으로까지 옮겼다. 그렇게 나온 것이 1998년 시작한 <에이전트 루비>다. 여성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 웹 에이전트로,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의 의뢰로 제작돼 웹사이트에서 관람객과 대화를 나눈다. 사용자의 질문을 기억하고, 필요하면 인터넷을 검색해 지식을 넓힌다. 루비의 기분은 웹 트래픽에 따라 달라지고, 대답을 못 할 때면 더 나은 알고리즘이 필요하다고 털어놓는다. 이 챗봇은 휴대용 단말기인 팜 파일럿에 내려받아 들고 다닐 수도 있었다. 챗 GPT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2004년에는 인터넷 콘텐츠를 처리하며 스스로 배우는 후속작인 <디나(DiNA)>를 선보였다.





기술은 정말 중립적일까


사진/ civic radar hershman teknolust, 2014

사진/ civic radar hershman teknolust, 2014

로베르타도, 루비도, 디나도 모두 여성이다. 우연은 아니다. 페미니즘을 작업의 중심에 둬 온 리슨은 여성의 얼굴을 한 인물을 거듭 등장시키며 기술 역시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질문했다. 누가 기계를 설계하고, 기계는 누구의 모습을 하며, 그 모습은 어떤 시선으로 소비되는가. 오늘날 인공지능이 학습 데이터에 담긴 성별이나 인종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반복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은 스스로 세상을 배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리슨이 수십 년 전 끌어낸 질문은 다시금 회자되는 이유다.





예술가는 기계와 경쟁하지 않는다


사진 /<Théâtre D'opéra Spatial> (Jason Allen, 2022)

사진 /<Théâtre D'opéra Spatial> (Jason Allen, 2022)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인공지능은 예술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린 허쉬만 리슨의 60년 작업을 보고 나면, 어쩌면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체’라는 말은 예술가와 기계가 같은 일을 두고 경쟁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누가 더 빨리, 더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는지를 겨루는 식이다. 하지만 리슨은 한 번도 기계보다 그림을 잘 그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꾸는지,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남고 또 사라지는를 묻는다. 로베르타의 운전면허증은 사회의 시스템이 한 사람의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줬고, 루비와의 대화는 기계 역시 결국 인간이 건넨 정보와 데이터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또한 크리스티 경매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떠올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예술가들이 문제 삼은 것도 단순히 ‘기계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그 기계가 무엇을, 누구에게서 배웠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앞에서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역시 기계와 겨루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새 기술을 가장 먼저 사용해보고, 그 기술이 인간에게 무엇을 하는지 질문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 리슨은 그 일을 반세기 전부터 해온 셈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새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수십 년 전 던진 질문이 다시 현재형이 되기 때문이다. 기술이 예술을 대체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예술가는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예술가를 기술에게 다가가 질문하고 협업하는 존재로 본다면, 기술이 빠르게 변할수록 예술가의 자리는 오히려 넓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함께 볼 만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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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허쉬만 리슨》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 2026년 10월 21일~2027년 2월 21일

」
사진/ SEMA

사진/ SEMA

린 허쉬만 리슨의 60여 년 작업을 폭넓게 조망하는 개인전이 10월 1일 막을 올린다. 뉴욕 뉴 뮤지엄과 독일 ZKM 미술관 등에서 주요 개인전을 열어왔지만 아시아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올해 기관 의제를 ‘창작’으로, 전시 의제를 ‘기술’로 정했고, 이 전시를 그 의제에 가장 걸맞은 전시로 꼽았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공존을 둘러싼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나누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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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페스티벌 2026 《아이·휴먼(I·Human)》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6년 10월 23일~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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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CC+프로그램가이드북 47호(10-12월)

사진/ ACC+프로그램가이드북 47호(10-12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예술과 첨단 기술의 융복합 축제. ACT 페스티벌은 전시, 공연, 대담의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전시는 약 2,000㎡ 규모의 공간에서 작품 12점으로 펼쳐진다. 올해 주제는 ‘아이·휴먼’으로, 물리적 실체를 가진 인공지능을 뜻하는 피지컬 AI 기반의 로보틱스 작품과 몰입형 확장 현실, 시각예술과 사운드 아트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기술’이 ‘욕망(결핍, 생산)’과 결합해 만들어내는 다층적 사회현상을 예술로 제시하며 ‘인간’의 의미를 다시 묻는 예술·기술 축제가 될 것이다. 1964년 백남준 작가가 발표한 최초의 로봇 K-456을 시작으로, 2026년을 살아가는 한국 작가들이 제작한 피지컬 AI 기반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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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RAIM: ROBOT CITY>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 2026년 8월 28일~12월 5일

」
사진/ 서울문화포털

사진/ 서울문화포털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의 건축물 외벽 전체를 활용한 미디어파사드 전시.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 도시를 테마로, 건물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화면처럼 활용한다. 린 허쉬만 리슨이 화면 속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질문했다면, 여기서는 로봇과 AI가 실제 공간과 도시 안으로 들어온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를 보다 가볍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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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라이프위크 2026, 코엑스 / 2026년 10월 6~8일

」
사진/ 코엑스

사진/ 코엑스

‘AI로 그리는 미래도시의 일상’을 주제로 열리는 AI·로봇·스마트시티 전시. 피지컬 AI와 로봇, 스마트 모빌리티 등 첨단 기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미술 전시라기보다 AI가 실제 생활과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리슨의 작품에서 시작한 ‘기술과 인간은 어떻게 공존할까’라는 질문을 현실의 도시로 확장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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