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남장'에서 '재벌 지키는 특전사'로…K-남장여자 서사의 진화
'커프'·'성균관'·'연모'를 지나 '나의 유죄인간'까지, 젠더 클리셰의 통쾌한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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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스틸
'남장여자'는 한국 드라마가 달콤하게 써먹어 온 오랜 치트키 중 하나다. 정체를 들킬까 조마조마한 서스펜스, 둘만의 닫힌 공간에서 피어나는 아찔한 착각과 금단의 텐션은 언제나 도파민을 보장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남장의 동기와 젠더 권력의 지형도는 완전히 재편됐다. 남성의 옷을 입되 남성의 시선에 포섭되지 않는 인물들의 계보. 오는 10월 19일 첫 방송을 앞둔 tvN 새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은 이 유서 깊은 계보의 도발적인 변곡점을 가리킨다.
생계형 알바생에서 왕좌까지, 과거의 남장 서사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포스터
초기 남장의 엔진은 절박한 '생존'이었다. 2007년 신드롬을 일으킨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소녀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꽃미남만 뽑는 카페에 위장 취업했다.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최한결(공유)의 고백은 낭만적이었지만, 서사의 종착역은 결국 재벌 2세가 그의 진짜 성별을 알고도 사랑을 택하는, 안전하게 봉합된 이성애 로맨스였다.
KBS2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스틸
사진 / 나무엑터스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포스터
무대를 조선으로 옮겨가며 남장은 비장미를 둘렀다. <성균관 스캔들>(2010)의 김윤희(박민영)와 <구르미 그린 달빛>(2016)의 홍라온(김유정)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원천 봉쇄된 금기의 벽을 뚫었고, <연모>(2021)의 이휘(박은빈)는 남성 권력의 정점인 용상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들의 등 뒤엔 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들키면 대역죄인"이라는 단칼의 공포 앞에서, 남장은 주체적 선택이라기보다 목숨을 건 처절한 발악에 가까웠다.
<나의 유죄인간>, 수단이 된 남장과 주체적 구원의 완성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포스터
웹소설 『여자인 걸 왜 모르지?』를 원작으로 한 <나의 유죄인간>은 이 오랜 그늘을 단숨에 걷어낸다. 살인 용의자로 몰린 안하무인 재벌 3세 윤이준(임시완)과 그를 잡기 위해 남장을 하고 수행비서로 잠입한 강재희(설인아)의 공조극이다. 육군특수전사령부 부사관 출신에 도합 9단의 무도 유단자인 강재희에게 남장은 숨어야 할 결핍이 아니라, 타깃을 사냥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꺼내 든 '작전용 기만술'일 뿐이다. 흥미로운 건 각색의 방향이다. 여주인공의 원맨쇼에 가까웠던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살인 용의자로 몰린 재벌 3세 쪽으로 무게추를 실었다. 누가 누구의 구원투수가 될지 제목에서부터 판을 깔아둔 셈이다.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스틸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스틸
구원의 방향키는 뒤집힌다. 남주가 비밀을 감싸 안아 여주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대신, 이번엔 덫에 걸린 재벌 3세를 특전사 출신 '남장 비서'가 물리적·심리적으로 철통 방어한다. 백마 탄 왕자의 자리를 꿰찬 슈트 차림의 경호원이 성벽 안의 유약한 도련님을 구출하는 통쾌한 전복이다. 여기에 "언제 여자인 걸 들킬까"라는 클래식한 심장 쫄깃함 위로 "누가 진짜 살인범인가?"라는 미스터리한 칼날이 맞물리며, 남장이라는 익숙한 장치는 로코와 스릴러를 팽팽하게 쥐고 흔드는 강력한 동력으로 격상된다.
남성의 권력을 흉내 내던 시대를 지나
K-드라마 속 남장여자는 남성의 권력을 흉내 내던 시대를 지나, 남성의 취약함을 끌어안고 판을 주도하는 위치로 단단히 이동했다. 남장을 벗어던지고 '진짜 여자'로 돌아가는 결말이 더는 해방의 징표가 되지 않는 시대. 각 잡힌 슈트를 입고 임시완의 방패를 자처한 설인아의 등장은, 대중문화의 가장 오래된 클리셰가 동시대의 전복적 쾌감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명징하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Credit
- 사진 / MBC·KBS·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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