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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독립군부터 '암살자(들)' 형사까지...유해진 연대기

영웅 대신 보통 사람, 60년 근현대사를 관통하다!

프로필 by 박현민 2026.09.25

1920년 만주 능선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칼을 휘두르던 독립군부터, 1940년대 경성에서 우리말 사전을 지켜낸 까막눈, 1974년 격동의 저격 정국 속에서 진실의 실마리를 좇던 형사, 1980년 광주에서 기꺼이 남을 위해 핸들을 잡았던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년 남영동의 서슬 퍼런 공포 속에서 비밀 서신을 품에 넣고 날랐던 교도관까지. 한국 근현대사 60여 년의 굵직한 분기점마다 배우 유해진이 있었다. 거창한 이념이나 대의를 앞세운 지도자가 아니라,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제 밥벌이에 충실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양심의 편에 섰던 '보통 사람'들의 초상이다.



<봉오동 전투>(2019), 1920년의 독립군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영화 <봉오동 전투> 캐릭터 포스터

영화 <봉오동 전투> 캐릭터 포스터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유해진이 연기한 만주 능선의 독립군 황해철은 처음부터 대의명분을 품은 투사가 아니었다. 한때 마적패로 거친 삶을 살았던 그는 나라 잃은 설움과 동생을 잃은 슬픔 앞에서 스스로 칼자루를 쥐고 무장 항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왜놈의 목을 단칼에 베어내는 그의 무력은 통쾌한 활극의 쾌감을 주지만, 칼날 아래 흐르는 감정은 거창한 구국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빼앗긴 자의 원초적인 분노에 가깝다. 유해진은 거친 흙먼지 묻은 얼굴과 투박한 몸짓만으로, 들풀 같은 사내가 역사의 단단한 주춧돌이 되는 순간을 설득해 낸다.



<말모이>(2019), 1940년대의 까막눈


영화 <말모이> 스틸

영화 <말모이> 스틸

일제강점기 말기 우리말 사용이 전면 금지된 서슬 퍼런 시절, 유해진은 글자 한 자 읽지 못하는 까막눈 김판수로 분한다. 아들의 월사금을 대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려다 실패한 그가 우연히 조선어학회의 심부름꾼으로 들어가면서, 전국의 우리말을 몰래 모으는 '말모이' 작전에 발을 들인다. 지식인도 엘리트도 아니었던 아버지가 '가갸거겨'를 깨쳐가며 사전 편찬이라는 민족적 과업의 한 축을 떠맡게 되는 여정은, 역사를 지탱하는 진짜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암살자(들)>(2026), 1974년의 형사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영화 <암살자(들)> 스틸

영화 <암살자(들)> 스틸

영화 <암살자(들)> 스틸

영화 <암살자(들)> 스틸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저격 사건. 유해진은 사건의 진상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서울 중부서 강력계 경감 철구를 연기한다. 저격 배후를 파헤치려는 진보적 언론인(박해일)이나 혈기 넘치는 신입 기자(이민호)가 관념과 명분을 대변한다면, 철구는 오직 현장의 핏자국과 탄피를 좇는 실무형 인물이다. 거대한 음모와 조작의 칼바람 속에서도 영웅적 결단을 외치기보다, 경찰로서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기 위해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이 우직함이 지금 추석 극장가 박스오피스 1위를 견인하는 힘이기도 하다.



<택시운전사>(2017), 1980년의 광주 토박이


영화 <택시 운전사> 포스터

영화 <택시 운전사> 포스터

영화 <택시 운전사> 포스터

영화 <택시 운전사> 포스터

영화 <택시 운전사> 스틸

영화 <택시 운전사> 스틸

1980년 5월 고립된 광주로 들어선 서울 택시기사 만섭(송강호)과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따뜻한 밥상으로 맞이한 이는 광주 토박이 택시기사 황태술이었다. 그는 혁명을 꿈꾸거나 투쟁을 선동하지 않는다. 다만 피 흘리는 이웃을 병원으로 나르고, 낯선 손님에게 기꺼이 기름을 나눠줄 뿐이다. "머시가 미안혀라, 나쁜 놈들은 따로 있구만"이라며 서울 기사의 죄책감을 털어내 주던 그의 구수한 사투리는, 광주 시민의 저항이 정치적 이념이 아닌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도리에서 출발했음을 웅변한다. 마지막 추격대를 막아서던 그의 택시는 관객의 가슴속에 가장 오래 남는 잔상이 됐다.



<1987>(2017), 1987년의 교도관


영화 <1987> 스틸

영화 <1987> 스틸

영화 <1987> 스틸

영화 <1987> 스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려던 1987년, 유해진은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한병용을 연기한다.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담장 안에서, 그는 인생 전체가 파멸할 위험을 무릅쓰고 수감 중인 민주화 인사들의 비밀 서신을 조카 연희(김태리)를 통해 바깥세상으로 전달한다. 혁명가도 정치인도 아닌, 두려움에 손을 떨면서도 끝내 외면하지 못했던 한 교도관의 작은 실천이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물꼬를 트는 기폭제가 된다.

영화 <택시 운전사> 스틸

영화 <택시 운전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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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근현대사를 관통한 유해진

다섯 편을 시대순으로 나란히 놓으면, 유해진이 반복해서 선택해 온 인물들의 공통분모가 뚜렷해진다. 이들은 역사의 무대 맨 앞에서 깃발을 흔드는 지휘관이 아니라, 각자의 생업 속에서 제 몫을 묵묵히 짊어진 보통 사람들이다. 만주 벌판의 칼잡이든, 경성의 까막눈이든, 70년대의 형사든, 광주의 택시기사든, 교도관이든. 유해진은 이들에게 과장 없는 생활감을 덧입히며, 역사를 움직인 진짜 동력이 소수의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는 다수의 양심이었음을 거듭 증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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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쇼박스·롯데엔터테인먼트·CJ 엔터테인먼트·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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