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나무와 흙, 소목장과 도예가가 빚은 풍경

예올과 샤넬이 선정한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소목장 조복래와 도자공예가 백경원의 작업을 마주하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6.09.24

바라보면, 풍경이 된다


샤넬과 예올이 한국의 공예를 조명하는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 5년째 이어지는 이 협업의 주인공으로, 소목장 조복래와 도자공예가 백경원이 선정되었다. 겸재 정선이 관념 속 산수 대신 금강산과 인왕산을 몸소 마주하고 그려냈듯, 오늘날 재료를 다시 바라보는 이들의 자세도 그 시선과 닿아 있다.


아트위크를 맞이하는 시기, 북촌에서는 호젓하게 도자와 목공예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재단법인 예올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동시대에 맞는 전통을 만들어가는 비영리 재단이다. 샤넬 역시 2002년부터 ‘공방 컬렉션(Métiers d’Art)’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컬렉션의 근간을 지탱해온 장인들을 꾸준히 조명해왔다. 샤넬과 예올의 협업은 2022년 처음 시작해, 전통 공예 장인과 현대 공예가를 조명하는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찾아가며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장인정신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오늘의 삶 안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티 없이 자연과 재료를 대하는 태도. 전시 제목에 담긴 ‘진소(眞素)’는 장식을 덜어낼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재료 고유의 성질이 드러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이 관념 속 산수 대신 실제 금강산과 인왕산을 직접 바라보고 그려낸 진경산수화처럼, 두 공예인도 관념을 걷어내고 재료 본연의 실체를 담대히 탐구하며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다. 나무와 흙 앞에 오래 서서 본래 재료의 결을 살피는 일, 이번 전시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진주에서 ‘취목공방’을 운영하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기능보유자,조복래 장인은 수십 년 전 “보이지 않는 곳이 보이는 곳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던 스승의 가르침을 지금도 새기고 있다. 원재료를 고르는 순간부터 마지막 마감까지, 모든 공정에 그 태도가 배어 있다. 소목장은 집 안의 세간을 만드는 장인이다. 부엌 찬장, 소반 같은 가구는 물론 벼루 집, 대나무 발, 나막신 같은 살림살이를 나무로 만든다. 쇠못 없이 세밀하게 이음새로 짜맞춘 구조를 따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는 것이 숙련된 장인의 기술이다. 소목장 문화가 흥한 조선시대 중후반에는 장인이 양반 집에 두세 달 기거하며 필요한 기물을 만들었고, 지금도 공예박물관에서 그 시대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당대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좋은 나무를 구하러 평생 전국을 누비고 다닌 조복래 장인은 나무의 결을 만져온 투박한 손으로 우리나라 느티나무로 만든 용목 액자 앞에 서서 설명했다.

“느티나무라고 다 똑같지 않아요. 이런 놈도 있고 요런 놈도 있죠. ‘용목’은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느티나무에서 나오는 무늬인데, 모양이 이렇게 잔잔하게 아름다운 나무는 다른 나라에는 없어요. 족히 150년에서 300년, 많게는 800년 된 나무에서만 나오는데, 최고의 목재예요. 나뭇결의 방향대로 길게 쪼개어서, 나무를 켜면 용목의 고운 무늬가 나와요. 몇 해가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무늬가 새로이 생기기도 하죠.” 고유한 무늬를 살린 용목으로 만든 병풍과 액자는 한 폭의 회화보다 깊이 있는 매력을 지녔다. 현대적인 기능을 더한 ‘이층찬탁’, 차 도구를 담을 수 있는 ‘오단합’, 단정한 전통 서안에 영향받은 책상이 생활 공간처럼 연출된 전시장을 차분히 메운다.

한편 도예를 전공한 백경원 작가는 물레나 틀이 아니라 손으로 흙을 직접 한 층씩 쌓아 올리는 기법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재료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기보다 손의 감각과 흙이 반응하는 결을 따라가는 방식에 가깝다. 층층이 쌓아 올린 흙에는 그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지고, 기물과 오브제는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전에는 먼저 조합된 형태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장치를 더하는 편이었어요. 이번에 새롭게 해본 기법은 ‘샤모트 상감 기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검은색 흙을 부숴서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요. 그 모래처럼 만들어진 알갱이를 하얀 백자 점토판에 뿌리고, 쓱쓱 문질러서 박히게 해요. 그러면 랜덤으로 우연한 무늬가 생기는데, 그 무늬로 불을 한번 떼봤더니 산수화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기서 시작해서 이 무늬에 어울리는 조형을 찾는 쪽으로 작업 순서가 진행됐어요.” 삼각뿔을 연이어 이어 붙인 오브제가 산세처럼 보인다. 따개비의 군집에 영향받은 오브제는 물론 벽을 붙여 풍경화처럼 보이는 작업도 시도했다. 점토판에 박힌 흙 알갱이와 넓게 남은 여백이 어우러져 한국적인 여백의 미를 자아낸다.

이번 전시 공간은 문인이 책을 읽고 차를 나누며 사물을 완상하던 방을 오늘의 방식으로 되살린다. 나무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결로 남기고, 흙을 흩뿌린 알갱이 하나하나가 우연히 모여 산수를 이룬다. 조복래와 백경원, 세대를 넘나드는 두 공예가가 우직하게 재료 앞에 머문 시간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 «진소(眞素)공예 : 진경의 눈, 조형의 손»은 10월 16일까지 재단법인 예올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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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Chanel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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