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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가 문예지를 창간했다

영상도, 설치도, 사운드도 아니다. 8명의 필자가 참여한 문학 잡지 ‘Gozo’의 면면.

프로필 by 고영진 2026.04.30

진짜를 겨냥한 가짜의 이야기


오천석, 김나희, 황휘로 구성된 사운드·비디오 프로덕션 ‘업체eobchae’가 출간한 비정기 문예지 <Gozo>가 첫선을 보였다. ‘제3차 대전을 예비하는 교범’을 표방하는 창간호를 두고 업체eobchae와 나눈 일문일답.


사운드와 비주얼 작업을 선보이는 프로덕션 업체eobchae가 별안간 문예지를 내놨다. 내가 아는 이들은 그럴듯한 가짜 세계를 만들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구조를 냉정하게 직시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잘하는 팀이다. 이를테면 가짜 관광 웹사이트를 만들어 소비로만 점철된 도시의 기능에 의문을 품게 하는 식이다. 지금껏 이 모든 작업의 무대는 주로 웹이나 비디오, 설치, 사운드였기에 이들을 ‘문학’과 연결 지어본 적은 없었으며, ‘잡지’는 더더욱 그랬다.

창간호 <Gozo 01>은 전쟁을 다룬다. 분명 어딘가에서는 현실이지만, 어제와 다름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겐 그저 허구 같기만 한 일. 한국 상황을 두 번째 전간기로 규정한, 무섭도록 정교한 가짜 세계를 통해 업체eobchae는 어떤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모든 이야기는 왜 문학 잡지에 쓰여야 했을까?

제3차 대전을 예비하는 교범, <Gozo 01>의 출발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파병하며 생긴 한반도 역학의 변화가 시작이었다. 목숨들이 꾸물거리다 무감히 죽어나가는 광경을 추적하다 북한이 돈바스 지역에 정예 포병 부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천공항에 국적 불명의 드론이 날아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국면의 귀환.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상승, 악화’라는 뜻을 지닌 고조(高調)가 창간호의 주제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지금 한쪽에서는 활화가, 또 한쪽에서는 활황이 관측된다. 위기가 불거질 때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도 ‘고조’된다고 하지 않는가. 위태로운 상승감을 잘 발라낸 단어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두 번째 전간기로 규정한, 이토록 무거운 세계관을 풀어내는 장이 왜 꼭 ‘문예지’여야 했나? 오늘날의 인지전(Cognitive Warfare,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조작하고 왜곡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쟁)은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지반 자체를 녹여버린다. 적절한 수량의 네트워크 노드(node)를 구비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맹랑한 이야기라도 현실에 침투시킬 수 있다. 그러니 ‘실상은 이렇다’며 허위 의식을 폭로하는 전략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한히 증식하는 허구에는 여러 방향으로 확장된 이야기로 맞서는 수밖에. 그래서 영상감독 멜트미러, 양자물리학자 최상국, 시인 배시은, 비주얼 크리에이터 윤이람, 작가 영이, 현호정과 함께한 잡지가 되었다.

웹 플랫폼이 아닌 물성을 지닌 책으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종이가 장기 보관에 유리하니까. <Gozo>는 수장고의 역할을 해야 하기에 보존성이 중요하다.

참여 작가 선정의 기준은? 첫째, 한국이 두 번째 전간기에 들어섰다는 주장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둘째,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만화경처럼 사방으로 반사할 수 있는 사람. 셋째, 문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연연하지 않고, 말이나 글 없이도 생생하게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 넷째, 전쟁이 난다면 지금 죽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 다섯째, <Gozo>의 의제를 다루면서도 시사와 유행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시야를 넓혀줄 사람.

오천석, 김나희, 황휘 각자가 고른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석은?오천석 업체eobchae와 오래 작업해온 정소영 디자이너의 에디토리얼 디자인. 여권보다 겨우 큰 판형에서 가독성과 정체성을 모두 고수하는 보법을 보여주었다. 김나희 비주얼 디렉터 윤이람의 텍스트. 원래 스타일리스트로 알고 있었고, 운문을 쓴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그 두 가지 영역이 어떻게 만날지 궁금했다. 그 물음표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들은 느낌. 황휘 양자물리학자 최상국 교수와의 인터뷰를 담은 ‘최상국 인터뷰’. 픽션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현실을 다루는 유일한 글인데,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과학적 사실들을 읽고 있으면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든다. 독자들이 책을 휙휙 넘기다가 이 재밌는 이야기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울고 있는 자살 드론이라든지, 초전도체가 된 우리 집 같은 귀여운 일러스트도 그려넣었다.

지금 당신들이 진짜 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은? 전쟁. 아군이든 적군이든, 모두가 제 의지에 반하여 동원되는 상태.

비정기 문예지 <Gozo>의 다음 호의 힌트를 준다면? 만화도 다룰 생각이다. 단, 때가 돼서 나와야 하는 억지에 구애받지 않을 테다!

Credit

  • 사진/ 업체eobchae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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