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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씨 아저씨' 최대훈, 인생 화보 찍다

'백상'서 못 다한 수상소감부터 패션에 대한 남다른 애정까지!

프로필 by 손안나 2025.05.27

The Scenes


‘학씨 아저씨’로 배우 인생에서 결정적 장면을 만난 최대훈. 삶은 계속되고, 드라마도 계속된다.


재킷은 Cos.


트렌치코트, 셔츠, 팬츠는 모두 Fendi.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벨트는 모두 Dolce & Gabbana. 목걸이는 Tom Wood.


수트 세트업, 셔츠, 코트, 타이, 슈즈는 모두 Bottega Veneta. 안경은 Gucci.


레더 재킷은 Ferragamo. 스트라이프 셔츠, 타이, 레더 장갑은 모두 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팬츠는 Ports1961.



하퍼스 바자 먼저 백상예술대상 남자조연상을 축하한다. 한번쯤은 상상해본 장면인가?

최대훈 전혀. 징크스가 있다. 예를 들어 촬영장에서 진행이 원활할 때, “오늘 일찍 끝나겠는데?” 이 말을 뱉는 순간 갑자기 촬영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종교가 있는데, 그래서 기도할 때도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신이시죠? 그럼 제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네요. 그냥 노력한 만큼 결과를 주세요. 그래야 제가 보완하고 메울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백상은 자리부터 분위기가 묘한 거다. 나를 맨 앞줄에 앉힐 리가 없는데? 여긴 내 자리가 아닌데? 지난번 백상 때는 객석에서 턱시도 버클도 살짝 풀어놓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봤는데 왜 내 뒤에 송혜교 씨가 앉아 있는 건가.(웃음) 아닐 거야, 말도 안 돼. 속으로 계속 부정했다.

하퍼스 바자 2002년 데뷔한 23년 차 연기자인 당신에게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결정적 작품일 테다.

최대훈 대학교 이후로 별명을 처음 가져봤다. 나이 들고 나니까 별명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됐다. 별명으로 불린다는 건 사랑받고 있단 뜻이다. 누가 “학씨” 하며 날 흉내내려고 하면 더 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내 인생작이 아닐 수 있겠나. 봄 중에서도 너무 찬란한 봄을 만났다.

하퍼스 바자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현장에서 못다 한 말을 추가한다면?

최대훈 내 연기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행복해하고, 기쁨을 느끼고. 그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위로받고 행복하고 기쁨을 느낀다. 도리어 되돌려 받는다는 표현이 핵심이었는데. 머릿속이 하얘져서 그 말을 빼먹었더라. 부루마블 게임에 통행 우대권 있지 않나. 요즘은 살면서 몇 장 없는 우대권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하퍼스 바자 평생의 행운을 몰아 쓴 느낌이란 건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믿는 편인지?

최대훈 나는 붕어빵도 꼬리부터 먹는다. 달콤한 팥을 마지막에 맛보려고. 좀 부정적이랄까. 주로 ‘잘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대신 거기서 낙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안을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평생 까불거리는 역할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상식에서 나비 넥타이를 매는 순간을 만났다. 상을 바라고 연기하는 배우가 어디 있겠냐만 확인의 기점은 될 것 같다. ‘할 수 있어, 괜찮은가봐.’ 이렇게 좋은 날들을 망쳐버릴까 봐 신줏단지 모시듯 지금의 순간을 간직하고 침착해지려고 한다. 연기가 내 업이니까. 가늘고 길게 연기할 생각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재미있게 살아왔는데 괜히 트로피를 들어올리니까 사람들이 ‘이제 또 뭘 할 수 있는데?’ 하고 지켜볼 것만 같아서 부담이 되더라. 그래서 다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나대지 마, 뭐가 달라졌다고. 아무것도 바뀐 거 없어.’ 앞으로 분명 재미없는 작품도 만날 거고, 사이가 안 좋은 배우들도 있을 거다. 어느 때는 일이 끊기겠지. 그래서 상 받고 친한 친구들에게 장난으로 너스레 한번 떨어봤다. (‘학씨 아저씨’ 톤으로) “가만히 있는데 상을 주고 그래?”(웃음).

하퍼스 바자 나도 부정적인 사고가 꼭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말한 대로, 삶의 능선에서 균형 감각을 부여하니까. 그런데 한 가지, 기쁨의 순간을 백 퍼센트 만끽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가 쌓이더라.

최대훈 노력은 하고 있다. 만끽하려고. 박해준 선배의 조언이 컸다. 한번 전화가 와서 “너 요새 이것저것 연락 오지? 이건 했어? 저건 했어? 다 해” 하시더라. <부부의 세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선배가 딱 나처럼 굴었는데 그게 후회된다고도 하셨다. 수상하고 선배에게 문자로 딱 한 마디 왔다. ‘만세’. 어찌나 울컥하던지. 아무튼 옛날에는 누가 칭찬하면 “아유 아니에요” 했는데 지금은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신난다. 더 잘할게요” 그런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고 어깨도 살짝 펴지는 것 같다. 말의 힘을 믿게 됐다.

하퍼스 바자 “배우가 현장에 왔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죠. 어느 현장에 가든 똑같아요. 뒤에 가서 욕을 할지언정”이라고 말한 적 있다. 오늘 촬영은 어땠나? 쑥쓰러워하면서도 할 거 다 하셨다.

최대훈 연극영화과 다니던 시절에도 상에 대한 욕심은 없었는데 정작 화보는 찍어보고 싶었다. 옛날엔 옷을 되게 좋아했다. 하루에 다섯 시간씩 윈도 쇼핑하고 그랬다. 여자 옷이나 할아버지 옷도 즐겨 입었다. 새하얗게 탈색도 하고 2대 8로 가르마를 타서 쫙 붙이고 다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그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리고, 치장하고, 시선을 분산시키고.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어도 액세서리는 나여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쇼핑을 자주 안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젠 감각도 떨어지고…. 아까 말했듯, <바자> 화보를 찍는 게 꿈이었다는 말은 진심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네.

하퍼스 바자 오늘 화보의 목표는 <연인>의 양가휘를 닮은 그 ‘뺨’을 보여주는 거였다. “제 얼굴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드라마라는 매체에 적합하지 않은 배우라고 스스로 선을 그은 것 같아요.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라고 말한 적 있다. 이제는 의구심이 해소되었나?

최대훈 거울 보면서 ‘왜 이렇게 넙데데할까’ 자문하곤 했는데 감사하다. 확실히 요즘은 응원을 받는 만큼 스스로를 사랑해줘야겠다 싶다. 괜찮은…가봐. 물론 중간에 말줄임표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동안 내 몸을 너무 막 굴렸던 것 같다. 사람들이 멍 자국을 안쓰럽게 봐도 “왜? 난 재밌어”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배우라는 수식어를 쓴 지도 얼마 안 됐다. 말해봤자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쓰면 안 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무슨 일 하는지 물어보면 “그냥 아무 일 해요” 했다.

하퍼스 바자 일생을 연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면서 배우라는 지칭을 애써 외면한 건 위악 아닌가?

최대훈 어쩌면 그만큼 ‘배우’라는 그 호칭을 간절하게 듣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안녕하세요, 최대훈입니다”라고 이름 석 자를 대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배우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따라오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퍼스 바자 배우를 기다림의 직업이라고들 한다. 그간의 시간이 힘들었나?

최대훈 그게 고생인가? 그 정도 고생도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나? 기다리긴. 이건 그냥 평생 해야 하는 일인데. 세상이 모르고 관계자들이 모를 뿐이지 연기를 계속해왔다. <폭싹 속았수다>가 끝나고 5개월 쉰 게 내 연기 인생에서 가장 오래 멈춘 시간이었다. 흔히 잡생각을 하면 “네가 덜 바쁘구나” 하지 않나. 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딱히 투덜거릴 새가 없었달까. 부모님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고, 누나들은 알아서 잘 살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고. 그간 너무 별일 없이 연기만 하며 살았다. 운이 좋았다.

하퍼스 바자 그럼에도 연기는 예술의 영역이니까. 지난해 권해효 선생님과 인터뷰하면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었다. 연기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예술에 존재하는 허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연기는 영원히 자기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라고.

최대훈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위치를 거의 밑바닥으로 설정했던 것 같다. 멀리 보면 더 힘들어지지 않나. 그저 눈앞의 목표를 하나씩 달성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집요하다는 평가도 자주 들었다. “형, 이런 건 집에서 다 계산을 하고 오는 거예요?” 같은 질문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대충 할 수 없을 뿐이다. 나의 업이니까.

하퍼스 바자 지금 배우 최대훈은 만선인가?

최대훈 만선 맞다. 아내는 종종 나보고 자존감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감사하지 않아? 일을 하고 있잖아! 다만 <폭싹 속았수다>를 기점으로 확장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됐다. 이제까지는 나와 작업해본 분들이 다음에 또, 그 다음에 또 불러주신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작업을 염려하고 경계했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아까 언젠가 덴젤 워싱턴하고 만나보고 싶다고 한 농담에는 아주 약간의 진담도 섞인 것이다.(웃음)

하퍼스 바자 어디 인생에 우대권이 한 장뿐이겠나?

최대훈 배우도 일종의 상품이고 쓰여지다 보면 언젠가는 바닥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걸 겁내지 않고 점프해보려 한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아니지만, 한번 떨어지더라도 뛰어보긴 해야 하지 않겠나. 이왕 하늘이 밀어주시는데, 신세 한번 지고 싶다.

셔츠, 커머밴드는 Jaybaek Couture. 반지는 Versace.

셔츠는 Jaybaek Couture. 반지는 Versace.

Credit

  • 사진/신선혜
  • 헤어/ 안미연
  • 메이크업/ 이아영
  • 스타일리스트/ 김지원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