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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왜 멈추지 않아야 하는가: 세월호 11주기를 추모하며

세월호 참사 10년,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기억의 말들.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4.15

그날의 영상과 목소리는 여전히 인터넷 어딘가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매년 4월이면 노란 리본을 꺼내고, 또 누군가는 “이제는 그만 잊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하지만 재난은 기억을 멈춘다고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재난을 반복하는가. 그 물음 앞에서 늘 말문이 막히는 이유는, 이 사회가 재난을 ‘사건’으로만 바라보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고는 발생하고, 수습되며, 뉴스는 종료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사이 진상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책임은 흐려진다. 그렇게 또다시 재난은 반복된다. ‘기억은 힘이 세지’라는 말은 단지 추모의 수사가 아니다. 구조적 무책임을 끊고, 다시는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며 태도다.

곧 다시 세월호 참사 11주기다. 진상 규명은 미완으로 남아 있고, 많은 이들은 여전히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 기억은 이대로 침전되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10년 전의 고통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10년 동안 만들어진 질문들, 말해지지 않은 진실들, 되풀이된 침묵들을 꺼내는 일이다. 소개하는 콘텐츠들은 그런 시도의 일부다.

논픽션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 홍성욱, 동아시아

사진/동아시아

사진/동아시아

과학기술학자이자 연구자인 홍성욱 교수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한국 사회의 주요 재난을 ‘기술재난’이라는 개념으로 재조명한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오송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 코로나19 팬데믹, 등….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사회재난' '기술재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재난보다 앞으로 사회재난, 기술재난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단순 인재나 자연재해로만 설명될 수 없는 이 재난들은 복잡한 기술 시스템과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하며, 결국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가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 것인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구조를 바꿔야 하는지 날카롭게 묻는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며 함께 살아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픽노블 『홀』 김홍모, 창비

사진/창비

사진/창비

4·16재단 공모 '모두의 왼손' 대상 수상작.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그래픽 노블이다. 주인공은 '세월호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다. 세월호의 도착지였던 제주에는 지금도 김동수씨 같은 생존자가 힘겹게 삶을 살아내고 있다. 모두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점철된 이들의 고통은 얼마나 깊을지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우리는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데 아저씨는 따뜻한 물에 있네요." 라는 환청을 들으며 괴로움에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폭발하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시위 현장에서 난동을 부려 유죄판결을 받기도 한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는 4월 16일이 되면 마라톤에 나가 41.6km를 달린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잠시라도 좋으니 기억을 잊고 싶은 이도 있는 것이다. 살아 남은 사실이 괴로워서, 미안해서, 무기력해져서. 그 마음들 역시 돌봐야 하지 않을까.

소설 『루카스』 이문영, 위즈덤하우스

사진/ 위즈덤하우스

사진/ 위즈덤하우스

2024년 출간된 소설은 세월호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시간을 다룬다. 제목은 사람을 살리는 자동 흉부 압박기를 뜻하며, <누가복음>을 썼으며 2천 년 전 신의 아들을 따라 순교했던 이방인을 뜻한다. 위픽 시리즈의 예쁜 표지와 달리, 책장을 펼치는 순간 눈물을 쏟게 되는 작품. 이문영 작가는 늘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문학 작품과 세상의 경계를 지운다. 사건 이후의 10년,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살아내고 또 어떤 사회를 마주하게 되는지를 유려한 언어들로 되짚는다. 세월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처음 참사를 마주하는 관점을 반영해 교육, 감정, 책임, 치유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감독 윤솔지, 2024

2025년 4월 2일 극장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호 구조실패와 침몰 원인을 조명해 보는 영화로, 외력 침몰설을 주장하는 다큐다. 지난 2024년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전주영화제 이후 배급에 난항을 겪다가 시민 모금으로 공동체 상영 후 2025년 4월 2일 다시 개봉했다. 개인의 상실이 아닌, 사회 구조의 총체적 실패를 조명하며, 실패의 반복을 막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묻는다. 영화 제목처럼 이익과 손실의 균형이 아닌, 모두 패배한 사건으로서의 참사를 상기시킨다. 상처난 마음들을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어떤 죽음들을 기억하려 한다. 2025년 4월 9일 기준 누적 관객수 1만명을 돌파했다.

영화 ‘너와 나’, 감독 조현철, 2022

너와 나 포스터 사진/ⓒ㈜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너와 나 포스터 사진/ⓒ㈜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너와 나 스틸컷. 사진/서울독립영화제

너와 나 스틸컷. 사진/서울독립영화제

너와 나 스틸컷. 사진/서울독립영화제

너와 나 스틸컷. 사진/서울독립영화제

너와 나 스틸컷. 사진/서울독립영화제

너와 나 스틸컷.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왠지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이번엔 꼭 절친한 친구 ‘하은’을 향한 마음을 고백해야 겠다고 결심한 ‘세미’가 등장한다. 귀엽고 발랄하고 또 속을 알 수 없는 두 여고생의 하루를 따라가며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다. ‘세월호’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지만, 경기 안산이 배경인 점 등을 통해 힌트를 줄 뿐이다. 결말을 알고 있는, 이 둘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와르르 무너진다. 배우 조현철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인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 아프지만 반짝이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고백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만이 남아,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세 가지 안부', 감독 김일란, 2024


참사 10년 동안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에 응답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있다. 2024년에 개봉한 옴니버스 형태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참사 당시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레이존’,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흔적’, 단원고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이브97’ 라는 세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여전히 세월호 영화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명료한 대답에 가깝다. 여전히 그날 일을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에 온전히 떠나 보낼 수 없으며, 같은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는 말을 대신한다. 특히 언론인들은 참사 당시의 상황을 반성하고 성찰하며 언론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 없이 되묻는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4월 14일 오전 10시부터 작품을 한달간 공개하기로 했다고.

기억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재난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그 사회가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는지, 어떤 윤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단순한 추모나 감상이 아니라,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결국 기억은 정지된 감정이 아니라, 지금과 미래를 바꾸기 위한 정치적, 집단적 실천이어야 한다. 재난을 잊지 않기 위한 도구이자,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돌아보는 돌봄의 태도이기도 하다.


Credit

  • 사진/서울독립영화제
  • 필름영
  • 그린나래미디어
  • 동아시아
  • 위즈덤하우스
  •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