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쇼핑몰'에서의 그 킬러, 금해나와의 인터뷰
중국인 소민혜가 아니라 배우 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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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S CHAIR 금해나
이제 스스로 탐구할 배짱이 생겼다는 금해나는 어떤 상황에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는 황폐하지 않은 단단한 지반 위에서 보는 이에게도 건강한 에너지를 전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드레스는 Loewe. 이어커프는 Swarovski.
하퍼스 바자 <바자> 24주년 기념호 이후 두 번째 인터뷰예요. 벌써 5년 전 일이네요. 그사이 이름을 바꾸었어요.
금해나 맞아요. <킬러들의 쇼핑몰> 촬영할 때만 해도 김해나였는데, 크레디트에는 금해나로 올라가 있어요. 이름이 단조롭기도 하고 동명이인도 많아서 바꿨는데, 확실히 더 잘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활동명을 바꾸니 일상의 나와 구분이 되는 느낌도 들어서 좋아요.
하퍼스 바자 새로운 이름으로 선보인 <킬러들의 쇼핑몰>이 커리어의 확실한 분기점이 되었어요. 이 작품으로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상도 받고 수상 소감도 화제가 되었죠.
금해나 화제가 되었나요? 상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저 얼떨떨했죠. 수상 소감은 준비를 아예 안 했다면 거짓말인데, 사실 그건 힘들 때 나를 견디게 했던 솔직한 마음에 가까워요.
하퍼스 바자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이죠?
금해나 <킬러들의 쇼핑몰>을 준비하며 액션 스쿨에서 정말 힘들게 훈련했거든요. 근 4개월 동안 그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도의 운동을 했어요. 기초 체력부터 다져야 되니 언덕길을 뛰고 줄넘기를 하고. 마치 수련을 하는 도인처럼 단순한 동작을 두세 시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는데,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드니까 그럴 때 의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했어요. ‘내가 뭣 때문에 이걸 버텨야 할까?’ 자문하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어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가족, 동료 배우, 감독님과 스태프분들…. 그 사람들 때문에라도 마음을 다잡게 됐고, 그때 켜켜이 쌓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수상 소감으로 나온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킬러들의 쇼핑몰>은 배우 금해나에게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었죠? 한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도 생각날 작품”이라고 표현했어요. ‘소민혜’라는 인물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금해나 사실 오디션을 볼 때만 해도 그렇게 큰 역할인지 몰랐어요. 전체 대본을 받고 오디션을 본 건 아니었으니까. 받은 분량을 보니 중국어, 액션 등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고, 운명처럼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퍼스 바자 그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죠?
금해나 다른 작품 때문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정작 그 작품은 코로나 때문에 무산됐어요. 그래도 재미가 붙은 상태라 계속 배우던 참이었는데 불현듯 중국어가 필요한 역할을 만난 거죠. 액션도 나름 오래 준비해왔는데, 제가 나이가 좀 있다 보니 마지막 액션의 기회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하퍼스 바자 액션은 개인적으로 연마하고 있던 건가요?
금해나 운동하는 걸 워낙 좋아해요.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에 아크로바틱 동아리도 했어요. 실은 독립영화 작업에서 액션 연기를 많이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작품들이 세상에 못 나왔어요.
하퍼스 바자 역시 헛된 시간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액션 연기를 치열하게 경험했을 텐데 어땠나요?
금해나 연기할 때 몸의 움직임이나 손짓, 눈짓 등 신체 언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액션 연기는 본격적으로 몸을 쓰는 것이고, 결국 상대와의 상호작용 안에서 빚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연기할 때 통상적으로 필요한 점이 극대화돼서 인식되는 장르예요. 액션 연기를 할 때는 상대 배우의 호흡을 더 기민하게 느끼고, 미묘한 타이밍까지 맞추게 돼요.
하퍼스 바자 거기서 희열이 오는 거군요.
금해나 맞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위험하다 보니 오롯이 집중해야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액션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는 느낌을 받아요. ‘액션’과 ‘컷’ 사이의 동작들이 보는 이들에게는 굉장히 빠르게 전달되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그 모든 동작이 하나하나 분절되어 인식된다고 할까요.
하퍼스 바자 ‘소민혜’는 배우가 연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역할인 것 같아요. 보통 몸을 많이 쓰는 경우에는 대사가 적게 마련인데, 언어적인 챌린지도 있는 데다가 복합적인 감정선도 품은 인물이잖아요. 배우에게 도전적인 요소가 많아요.
금해나 찍으면서도 앞으로 내가 한 작품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걸 보여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했어요.

톱, 팬츠, 펌프스는 모두 Ferragamo.
하퍼스 바자 정지안 역의 김혜준 배우와의 호흡도 돋보였는데, 이후 실제로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죠?
금해나 현장에서 가장 많은 장면을 함께한 배우이기도 하고, 제가 지켜야 되는 캐릭터라서 애정이 간 것도 있어요. 저는 사람과 친해질 때 그리 애쓰지 않는 편이거든요. 자연스러운 계기가 생기면 그때 친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혜준과는 상당히 빨리 친해졌던 것 같아요. 희한하게 정말 잘 통해요. 그날 그날 먹고 싶은 음식 메뉴까지 잘 맞는 사이 있잖아요. 혜준은 저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배우라 현장에서 도움받는 점이 참 많았어요. 고마운 친구예요. 배울 점도 많고요.
하퍼스 바자 어떤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나요?
금해나 현장에서 혜준을 지켜보면서 주연을 맡은 배우의 태도란 저렇구나, 하고 감탄했어요. 카메라가 돌아갈 때 자기 걸 하고 있는데도 묘하게 그 장면 안에 속한 다른 인물들을 돋보이게 하는 힘이 있고, 카메라 바깥에서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혜준이 현장에 오면 스태프들의 표정부터 밝아져요.
하퍼스 바자 본인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금해나 FM 스타일.(웃음) 저는 진지한 편이어서 현장에서 장난치거나 풀어지는 걸 잘 못해요. 게다가 상업 작품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게 처음이라 할 것도 많았고, 현장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도 많았고요. 그래서 쉴 때조차 대기실에 못 있겠더라고요. 불안해서 줄곧 카메라 옆에 있었어요.
하퍼스 바자 본인의 촬영분이 아닐 때도요?
금해나 네. 다른 인물들을 어떻게 찍는지 봐야 제 액션에 대해서도 더 잘 알 것 같아서 그냥 계속 현장에 붙어 있었어요.
하퍼스 바자 성실한 배우네요. 개인적으로 느끼는 금해나는 인간적으로나 배우로서나 믿음직하고 의젓해 보이는 사람이에요. 힘들거나 곤란한 상황에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할까요.
금해나 가족 안에서의 제 스탠스도 그런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수상 소감에서 오빠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잖아요. 어떤 사이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금해나 저에겐 오빠가 아빠보다 더 아빠 같아요. 다섯 살 차이인데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셔서 어릴 때부터 항상 둘이 있었고, 오빠가 마치 아빠처럼 저를 훈육했어요. 집안 형편이 조금 어려워져서 연기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다잡아줬고요. 내가 너에게 들인 돈이 얼만데 연기로 갚아라, 우리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되지 않겠니? 츤데레예요.
하퍼스 바자 수상 소감에 대한 오빠의 반응은 어땠나요?
금해나 자느라 안 봤다고 하더라구요. 레드 카펫 보다가 지겨워서 잤다고. 그런데 자기 회사 사람들한테는 은근히 자랑을 했더라고요.(웃음)
하퍼스 바자 5년 전 <어벤져스>의 스칼렛 요한슨처럼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걸 기억해요? 꿈꾸는 바를 이뤘네요.
금해나 오, 제가 그런 얘길 했나요? 신기해요.
하퍼스 바자 원하던 기회가 찾아왔고 그것을 잘해냈는데, 일에 대해서는 요즘 어떤 자세를 갖고 있나요?
금해나 이 작품을 통해 걱정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엔 현장에서 ‘이렇게 해봐도 될까? 그냥 하지 말까?’ 망설이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 뭐, 별로면 말을 해주시겠지’ 하는 담대함이 생겼어요. 배우로서 의견을 내는 게 눈치볼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앞서 혜준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한 건 이런 측면도 있어요. 그 친구가 상호작용을 정말 잘하거든요. 전 사람과의 대화가 늘 어렵다고 느껴왔는데, 혜준 덕분에 제 의견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한때 이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내 생각만큼 잘 안 풀린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려 했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금해나 담대해졌다는 건 이런 면도 포함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상황이 힘들어도 적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일이 없을 때도 조급해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사나 기웃거리지 않고 내 시간을 알차게 쓰는 여유가 생겼어요. 작년에 저에게는 정말 좋은 일과 안 좋은 일들이 함께 찾아왔거든요. 오히려 잘 됐다 싶은 게 좋은 일 앞에서도 마음이 크게 들뜨지 않았고, 진짜 중요한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드레스는 Son Jung Won. 목걸이는 Portrait Report.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금해나 학창 시절에 한 분이 제 연기를 보고 이렇게 얘기해주셨어요. 네가 이 역할을 왜 맡았는지 알겠다. 너에겐 순수한 마음이 있다. 그걸 절대 잃어선 안 돼. 그것을 잃어버리면 넌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야. 그 말이 가슴에 쿡 박혀서 ‘내게서 봤다는 그 순수함이 뭐지?’ 줄곧 생각했어요. 나름의 결론으로는 그건 성실함인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어릴 때부터 예술에 심취해 있던 사람인가요?
금해나 가족 중 예술 분야에 관련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어릴 때 혼자 비디오 보기를 즐겼고, 음악 듣는 걸 진짜 좋아했어요. 그러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 영역에 발을 담그게 됐는데, 그때 그간 억눌린 욕구가 밖으로 분출된 것 같아요. 어릴 때 저는 참 예민한 아이였는데, 엄마 아빠는 전혀 그런 기질이 아니니까 저의 예민함을 그저 유난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으로 치부해버렸던 것 같아요. 아무도 몰라주던 저의 기질 때문에 혼자 힘들기도 했는데, 연기하면서 이를 해소하게 되니 점차 편안해졌어요.
하퍼스 바자 실은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사람이었던 거죠. 요즘 일상은 어떤가요?
금해나 일주일의 루틴이 정해져 있어요. 외국어도 배우고, 그중 3일은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브런치를 시작했답니다.
하퍼스 바자 거기에 어떤 글을 쓰나요?
금해나 실은 시인이 꿈이었어요. 예전부터 필름 사진을 찍어왔는데 사진을 골라서 한 장 올리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시를 써요.
하퍼스 바자 시라니, 역시 감각적인 사람이군요. 그리고 요즘 연기 수업도 하고 있잖아요.
금해나 연출하는 친구가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 해서 클래스를 열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연기 습관과 표현을 보게 됐는데, 바라보는 입장이 제 연기에도 많은 도움이 돼요.
하퍼스 바자 본인이 지향하는 연기의 형식이 있다면요?
금해나 저는 감정을 풀어헤쳐놓는 방식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절제’가 중요한 키워드예요. 감정을 전부 보여주지 않고 조금 숨겨놓는 것이죠. 어느 정도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지론이 있어요.
하퍼스 바자 어떤 매체이든 간에요?
금해나 네. 배우가 감정을 다 쏟아버리면 물론 그걸 보는 맛도 있겠지만, 그게 관객들을 멀어지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봐요. 가령 10 중에서 8만 보여주는 방식이 관객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진 다수의 개인을 더 공감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관객을 믿는 거네요.
금해나 네, 맞아요. 그게 달라진 점이기도 해요. 예전에는 관객 평가가 두려워서 연기적으로 완벽하려는 강박을 느꼈다면, 지금은 너무 꽉 짜서 계산하지 않고 관객과 더 주고받고 싶어요. 지금까지 저는 거의 독립영화나 연극을 했잖아요. 그때는 예술적 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묵직한 욕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때론 괴롭기도 했고요. 이번에 드라마를 해보니 제작 기간이 긴 영화에 비해 좀 더 시의적인 동시대성이 있고, 관객과 함께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유한한 내 삶이 작품이 함께 흘러가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평가 앞에서 크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때 그때 평가를 받고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게 영화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때는 그게 소모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하퍼스 바자 배우가 된 후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나요?
금해나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연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커요. 연기를 한다는 건 한 인간을 표현한다는 뜻이잖아요. 배우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잘 컨트롤 해야 되는 사람인데, 일상에서 내 감정조차 컨트롤하지 못할 때면 스스로 경계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안주하지 않는 사람, 누구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요.
Credit
- 프리랜서 에디터/김현민
- 사진/ 김영준
- 헤어/ 한지선
- 메이크업/ 홍현정
- 스타일리스트/ 김경선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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