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홍콩의 황금기를 기록한 사진가의 전시가 열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홍콩 문화 황금기를 누빈 샘 웡(Sam Wong)의 첫 전시에는 시대와 시대를 잇는 영원함이 깃든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4.09.03
그림자 아래 장국영이 생각에 잠긴 듯 멈춰 있다. 작가가 오랜 시간 간직해온 미공개 사진으로 이번 전시 포스터에도 쓰였다.

그림자 아래 장국영이 생각에 잠긴 듯 멈춰 있다. 작가가 오랜 시간 간직해온 미공개 사진으로 이번 전시 포스터에도 쓰였다.

익숙한 얼굴의 낯선 표정. 홍콩을 뒤흔든 스타들이 샘 웡의 렌즈 앞에 묘연한 얼굴로 섰다. 인물의 고유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저 꾸준하고 즐겁게 카메라 앞의 피사체와 함께 움직이며 대화하던 사진가는 대중문화의 변천사를 포착한 기록자로 거듭났다. 작가는 40여 년간 작업해온 사진 아카이브를 뒤져 유실되거나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을 전시 «It’s about time»에 내어놓았다. 홍콩 경제·문화의 발전부터 필름 시대의 낭만까지 모두 담긴 이번 전시는 관람객을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의 홍콩 문화와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하퍼스 바자 이번 전시를 통해 ‘시간과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요. 제목을 «It’s about time»으로 결정했습니다.
샘 웡 상업사진가로 활동해오면서 전시는 막연히 미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오랜 친구 벤이 제 아카이브를 보고 반드시 새로운 세대에게 공유해야 한다고 저를 설득했어요. 제 초기작을 촬영한 지 반세기가 흘렀고, 그 시절의 작품 속에는 홍콩 문화의 황금기가 담겨 있으니까요. 우리는 유튜브뮤직, 아이튠즈, 스포티파이 등 음악 플랫폼이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패션 트렌드는 1980~90년대와 닮아 있고요.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시 발매됐던 실제 음반과 원본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저의 첫 번째 전시이기에 ‘때가 됐다’는 중의적인 제목을 붙였어요. 공동 큐레이터 캐리의 아이디어였고 듣자마자 단숨에 동의했습니다.

곽부성의 <Desire> 앨범 사진. 아티스트의 탄탄한 몸을 부각시키기 위해 긴팔 티셔츠를 찢어 연출했다.

곽부성의 <Desire> 앨범 사진. 아티스트의 탄탄한 몸을 부각시키기 위해 긴팔 티셔츠를 찢어 연출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장만옥. 손에는 긴 담뱃대를 들고 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장만옥. 손에는 긴 담뱃대를 들고 있다.

하퍼스 바자 40년간 작업한 사진 아카이브를 2년간 천천히 정리해 전시를 공개했습니다.
샘 웡 1996년 홍콩의 갈레이 빌딩 화재를 알고 있나요? 홍콩 역사에 남은 끔찍한 사고였죠. 그때 당시 폴리그램 레코드사가 10층에 있었습니다. 불길 속으로 수많은 것이 사라졌어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아티스트의 앨범 역시 유실됐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스튜디오 레노베이션을 결정하면서 제 과거의 시간을 발굴하는 기분이었어요. 어떤 장면은 기억 속에 있었고, 또 어떤 장면은 제 기억에서조차 사라졌습니다. 아카이브 속에서 당시 레코드사에 제출했던 사진의 네거티브 필름을 찾게 됐어요. 제가 신중하게 정리해두지 않는다면 이조차도 사라지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하퍼스 바자 장만옥, 진백강, 매염방 등 홍콩 문화를 이끈 수많은 스타와 함께 일했습니다. 대중에게 굉장히 익숙한 인물이지만, 작가님 사진 속에는 미묘하게 다른 진실한 모습이 포착되어 있어요.
샘 웡 사진을 계획할 때 모든 부분을 치밀하게 디자인하지 않고 약간의 공간을 남겨두는 편입니다. 먼저 촬영할 때 아티스트와 제가 함께 있는 게 편안하다고 느낄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가져요. 최대한 지시하지 않고 지켜보고 관찰하기 위해 애쓰죠. 인물 스스로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도록요. 결국 사진가와 아티스트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그들이 가진 고유함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콘트라스트가 돋보이는 진혜림의 사진은 몽환적인 느낌을 위해 필름 현상 과정에서 크로스 프로세싱 과정을 거쳤다.

콘트라스트가 돋보이는 진혜림의 사진은 몽환적인 느낌을 위해 필름 현상 과정에서 크로스 프로세싱 과정을 거쳤다.

백강의 <Dream Man> 앨범 사진은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에 그의 집 주변 맥도날드가 있는 거리에서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평소 진백강의 밝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백강의 <Dream Man> 앨범 사진은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에 그의 집 주변 맥도날드가 있는 거리에서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평소 진백강의 밝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하퍼스 바자 미공개됐던 장국영 사진이 담긴 전시 포스터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샘 웡 장국영과는 <Profile>부터 그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Final Encounter>까지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번에 전시 포스터로 사용한 사진은 그와 처음 촬영했던 사진이었어요. 선택되지 않아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30년 넘게 제 아카이브에 남아 있었고, 이 사진을 항상 좋아해왔기에 전시를 통해 공개하면서 포스터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퍼스 바자 <패왕별희> 때 그의 모습도 담아냈죠.
샘 웡 <시티> 매거진 커버 촬영이었어요. 장국영은 <패왕별희>의 두지로 변신하기 위해 장장 3시간 동안 헤어, 메이크업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현장에는 정확한 포즈를 위해 오페라 전문 코치가 상주했어요. 디테일이 많은 포즈였고, 체력 소모가 굉장히 많이 되는 작업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훌륭하게 끝난 건 모두 그 덕분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현장에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면서 사진 작업을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요.
샘 웡 안전지대와 줄리아 포드햄의 노래가 흘러나왔던 1980~90년대 제 촬영장엔 음악과 다정한 수다, 웃음이 가득했어요. 테스트 촬영은 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했는데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었어요. 결과물에 따라 나아갈 방향이 달라졌거든요. 우린 폴라로이드 공정을 기다리는 동안 스튜디오에서 신나게 드럼을 치곤 했어요. 제 작업실 한구석에는 늘 드럼이 있었어요. 더 큰 스튜디오로 이사한 후에는 더 큰 드럼을 들일 정도였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퍼스 바자 이번 전시는 홍콩의 문화 황금기인 1980~90년대를 잘 포착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제, 문화, 예술이 동시에 번창했던 당시 홍콩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샘 웡 1970년대의 홍콩은 다소 촌스러웠고, 1980년대는 크게 발전했고, 1990년대엔 꽃송이가 만개하듯 모든 것들이 피어났어요. 80년대 중반 가장 유명했던 바 ‘핫 가십’에서 사람들과 자주 모였고, 주말이면 모두가 차려입고 앤드류 불(Andrew Bull)이 운영하던 디스코 ‘캔톤’으로 향했죠. 당시 패셔너블하고 핫한 사람들은 모두 거기 있었어요. 새벽 2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을 때쯤 우리는 아침까지 문을 여는 또 다른 디스코 ‘할리우드 이스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0대부터 30대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어울렸습니다. 그땐 저도 어렸고, 싱글이었어요.(웃음)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에 뛰어들면서 이런 생활 역시 지겹게 느껴졌지만요.

하퍼스 바자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와 홍콩에서 상업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거죠?
샘 웡 1980년대 초 홍콩은 미국 서부 초기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모두가 개척자였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났어요. 일자리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더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일했던 시절이에요. 광고 사진으로 경력을 시작해 자연스럽게 음반 업계와 연결되면서 앨범 아트워크를 많이 작업하게 됐어요. 촬영이 끝나면 암실로 달려가 콜라주를 하거나 필름 질감을 테스트하곤 했습니다. 실험적인 여정을 통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장면이 탄생할 때 가장 신났어요.
하퍼스 바자 후배 창작자들에게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샘 웡 상업 사진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생각해야 하는 동시에 사진가가 원하는 바를 담아내야 해요. 언제든 내 아이디어를 거절당할 수 있고, 그것에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상업 사진은 클라이언트의 시각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작업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든 나만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 플랜 B를 가지고 있느냐죠.
하퍼스 바자 오랜 시간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0년 전과 오늘의 홍콩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생각하나요?
샘 웡 디지털 시대가 열리고, 소셜미디어가 탄생했어요. 우리가 일해왔던 방식은 물론 살아가는 방식까지 철저하게 변했고요. 어떤 면에서 우리는 빠른 속도와 편리함만을 좇고 있어요. 많은 것들이 일회용처럼 버려지고 있고, 사람들은 참을성을 잃고 있어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의 뿌리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초혜
  • 사진/ Courtesy of Sam Wong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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