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바자전에서 신작을 선보이는 이형구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인체와 우주를 이루는 물질에 대해 고찰한 신작〈키리키리마우나〉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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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은 작가 이형구에게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인체와 우주를 이루는 물질에 대해 고찰한 신작 <키리키리마우나>를 완성했다.
≪바자전: UNDER/STAND≫에서 전작들과 확연히 다른, 유일무이한 신작을 공개한다. 수십 년간 몸에 대해 탐구해온 당신의 예술적 상상력이 다른 곳으로 나아간 건가?
인체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건, 넓게는 자연, 더 넓게는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작 <Chemical> 시리즈를 포함해 내 작업을 말할 때 “인체는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화학적으로 보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천문학적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결국 ‘사람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다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어오다가, 모든 것의 기원인 우주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대다수의 작업은 ‘누적된 일상’에서 비롯된다. 몇 해째 광물이나 운석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최근 치과 치료를 받다가 어금니에 세라믹과 합금을 씌우는 과정에서 문득 이런 물질의 작은 단위가 결국 우리를 이루는 원소와 동일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 이어져나갔다. 기본 원소 또한 저 먼 태양계 밖에서 생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까지 해보며. 태양계 바깥을 떠도는 운석이나 물질을 ‘성간 천체’, 영어로는 ‘인터스텔라 오브젝트’라 칭하는데 거기에 매료되어 작업을 만들고 있다.
대상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며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온 당신에게, 이번 전시 주제인 ‘이해’라는 키워드는 어떤 의미를 갖나?
내게 ‘이해’는 몸으로 경험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난 세상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 사람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을 내 자신으로 삼은 것이기에 인체를 대상으로 작업해온 것이다. 타인과 사회, 결국 우리 모두에 대한 이해가 내가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방금 반짝이는 조각이 거친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전시장과 대조적인 모습을 상상해봤다. 이번 신작은 각도에 따라 관객이 각기 다른 색 조합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빛을 반사시키는 반사체를 따로 설치하는데, 공간의 조도에 따라 색다른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바라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며 ‘수석’에 대해 떠올리기도 했다. 수석이 자연의 경치를 축소해놓은 ‘축경’이라면, 내 작업 또한 우주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싶다. 자연 대신 우주와 나를 물아일체시킨다는 태도 또한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며 저 먼 어딘가를 상상해보고 결국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온 걸 거야,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작품이 오묘한 분위기와 에너지를 풍겼으면 좋겠다.

작업을 하며 뼈, 안구, 장기 같은 모양을 다룰 때와는 다른 경험이었을 듯하다.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건 어땠나? “엉뚱한 실험을 거쳐 생산되는 결과물들이 예측을 벗어나게 될 때의 희열감을 즐긴다”고 말한 적 있는데, 그런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
자주 쓰지 않던 색을 맘껏 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 현실에서 보는 색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쪽 면의 색 조합은 인스타그램에서 본 이탈리아 어느 해변가의 금빛 바다 풍경을 묘사한 거다. 빛에 반사될수록 아름다운 것들을 연상하며 금박을 입히고 있다. 마치 세이렌 신화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히바로> 같다. 치명적일 만큼 아름다워서 벗어날 수 없는.(웃음) 보통 새벽 4~5시쯤 작업실로 출근하는데 작업이 잘 풀릴 때는 혼자 도취한 채 상상하던 걸 막 구현하다가 안 풀릴 때는 하루 종일 칠한 걸 다시 흰색으로 덮기도 하고. 아직 완성된 모습을 짐작할 수가 없다. 예측불가능한 순간이 설치 당일에 나타나기를.
외계어 같기도 한 제목 ‘키리키리마우나’는 어떻게 지은 이름인가?
서치하다 보니, 2017년 발견된, 괴상하게 생긴 성간 천체 하나를 알게 됐다. 천체의 별칭이 하와이 원주민어로 되어 있길래 찾아보니, 처음 관찰한 관측소의 위치 때문이었다. 재미있어 보여서 챗GPT에게 이번 작품의 외형적인 특징을 이야기하고 이 작품을 성간 천체로 가정했을 때 어떤 이름을 지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몇 가지 제안을 하더라. 그중에서 어감이 제일 좋고 마음에 드는 게 이 단어였다. 하와이 원주민 어로 ‘반짝이는 산’이라는 뜻이다.
처음 작품을 봤을 땐 <Chemical> 시리즈의 연장선이거나 장기 같다는 인상도 들었다.
얼마 전 이 작업을 처음 본 친구도 작품이 뼈와 뼈 사이의 연골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해석의 여지는 관객에게 있으니, 무엇이든 상관없다.(웃음)
골격이나 근육을 현미경처럼 확대하는 등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수행되는 작업 방식도 작품의 주요한 특징이다. 당신에게 ‘괴짜 과학자’ 같은 수식이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 호기심에 따른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고 실험을 한 다음 작업물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따른다. 이게 마치 과학자들의 방법론과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비편향적이고 객관적인 시선과 나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작가만큼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나. 관객들이 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학적으로 보이도록 세팅한 것일 뿐이다.
신체를 분류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라본 작품 중 <Face Trace>를 특히 좋아한다. 성형, 관상학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메타포와 이목구비 샘플을 재조합하는 발상이 직관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얼굴은 인체 중 시각을 통해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인데, 뼈나 장기를 대상으로 작업할 때와 접근법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12가지 인종의 두개골 샘플을 모아 12개의 각기 다른 인생을 담은 작업이다. 인간은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물이고, 현대사회에서 아름다움에 관심 없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거다. 얼굴과 몸은 결국 가장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매개체이지 않나. 뼈와 장기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할 때만 변화하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다. 그에 대한 담론을 한번쯤 이야기하고 싶었다. 앞서 ‘누적된 일상’을 언급했듯, 이 작업 또한 아주 어린 시절 본 화장품 CF에서 “화장으로 관상을 바꾸자”는 카피를 접한 이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다. 내 작품들은 모두 이렇게 연결된다.

당신의 작품을 말할 때 자주 '유머'라는 코드가 수반된다. 바젤 자연사박물관에서 만화 주인공인 동물의 골격을 형상화한 <카니스 라트란스 아니마투스(Canis Latrans Animatus)>를 선보였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 것 같다. 당신의 삶에, 작업에 유머는 어떤 의미인가?
예일대학교에 다닐 무렵 <The Objectuals> 시리즈의 가장 초기작을 사진으로 선보였을 때다. 나는 알루미늄 포일을 잇몸에 끼워 피가 나는 걸 감수하면서도 진지하게 작업에 임했는데, 막상 보는 이들이 빵 터진 걸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한 평론가가 내 작업에는 ‘유머러스함’과 ‘스푸키함’이 공존한다고 했는데, 공감했다. 웃으며 보기 시작했는데 계속 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작업. 유쾌해 보이는 건 작가로서 내 캐릭터가 반영된 걸 거다. 작가는 작업할 때 혼자서 무게를 감내하면 되지, 그걸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성격이 그렇다.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더 무겁게 말하는 건 싫다.
근래 떠오른 과학기술 중 당신의 작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은 무엇인가?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인공지능을 사용해 작업하고 있고, 기술을 통해 얻는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한다. 그만의 감각이 있겠지만, 나는 손으로, 물리적인 시간을 들여 작업하는 게 좋다. 이렇게 작업하지 않으면 결코 모를, 순수한 노동에서 오는 그 무언가가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CG를 쓸 수 있는데 안 쓰는 것처럼. 누군가는 무식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웃음)
예술가로서 잃고 싶지 않은, 당신만의 순수한 열망 혹은 판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시대가 지나도 맥락을 계속 대입할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작업을 언젠가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지배적이다. 조형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구조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수반되어야 하고. 보일 듯 안 보이는 섬세함, 러시아 음악에서 느낄 법한 비장함을 느낄 수 있는 미감도 중요하다. 정말 좋은 작업을 만드는 것이 지금의 꿈이다.
※ ≪바자전: UNDER/STAND≫는 8월 23일부터 9월 14일까지 프로세스 이태원에서 열린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자연광이 든 작업실에서 ‘반짝이는 산’을 몇 시간이고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Credit
- 사진/ 김형상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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