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우리가 몰랐던 의류수거함의 속사정

규격별 종량제 봉투 더미, 신고되지 않은 대형 폐기물,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문. 의류수거함 옆에서 예외 없이 포착되는 불편한 풍경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8.11
이 기획은 올해 <바자> 4월호에 게재된 ‘도시의 쓰레기’ 기사를 준비할 때 시작됐다. 이틀간 매일 2만 보씩 걸으며 서울 곳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쓰레기를 담아야 했던 그때, 유독 추웠던 날씨만큼이나 선명히 남아 있는 장면이 몇 있다. 쪼그려 앉아야 보이는 화단 깊은 곳의 각종 생활 쓰레기와 어딜 가나 지겹도록 널부러져 있는 담배꽁초, 한남동의 어느 떠들썩한 팝업스토어 뒷골목에 방치된 일회용 컵 더미 같은 것들. 의류수거함 주변의 광경은 특히나 기묘했다. 어느 동네든 의류수거함 주위에는 사이즈별 쓰레기 종량제 봉투와 신고 딱지가 보이지 않는 대형 폐기물들이 세트처럼 함께였는데, 그 옆에는 쓰레기 무단투기를 경고하는 현수막도 자주 보였다. 의류수거함이 놓인 곳은 거의 예외 없이 좁은 골목길 담벼락과 전봇대 사이, CCTV도 드문 곳 위주라는 점도 의아했다. 도시의 쓰레기를 쫓을수록 의류수거함이 눈에 밟혔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약 10여 년 전만 해도 길가의 의류수거함은 대부분 불법 설치된 것이었다. 관리 주체를 파악하기조차 힘들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고. 지금은 용산구, 종로구, 서초구 등 상당수의 지자체에서 이러한 수거함을 철거하고 재정비한 덕에 불법 수거함은 대부분 정리된 상태란다. 물론 들리는 것과 보이는 건 좀 다르다. 여전히 유동인구가 적은 주택가 골목길을 지날 땐 낡아 부식된 의류수거함을 쉽게 목격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의류수거함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것일까. 그 전에, 의류수거함은 여전히 필요한 물건일까? 취재를 위해 서초구 청소행정과에서 그간의 변화를 지켜봐온 이상현 주무관(가명)을 만나 물었다. 서초구는 2016년부터 자체 의류수거함인 ‘옷체통’을 만들었다. 관할 구역 내 불법 수거함은 완전히 없앴고, 노후된 수거함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인터뷰를 요청한 6개의 지역구 중 고민 없이 선뜻 응해준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하퍼스 바자 어느 동네든 인적 드문 주택가 골목을 걷다 보면 방치된 듯한 의류수거함을 발견하곤 한다. 허가 없이 불법으로 설치한 의류수거함은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지만 유지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이상현(가명) 의류수거함은 불특정 다수의 주민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면도로(차도와 보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좁은 도로)에 설치해야 한다. 벽면과 전봇대 사이에 놓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량과의 접촉 사고도 많을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 철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눈이나 비, 특히 겨울철 제설용 염화칼슘에 취약해 부식으로 인한 노후화도 심한 편이다. 서초구에서는 작년부터 설치한 지 5년 이상 지나 훼손된 수거함을 매년 최소 10개씩은 수리하고 있다.
하퍼스 바자 사실 그보다 큰 문제는 수거함 안팎의 쓰레기 아닌가. 버려 마땅한 옷이나 일반 쓰레기가 들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의류수거함 주변으로는 열에 아홉 각종 대형 폐기물, 종량제 봉투 더미가 함께인 경우가 많더라.
이상현(가명) 의류수거함 안에서 발견되는 물건의 종류는 상상 이상이다. 재활용이 불가한 상태의 의류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인형, 반려견 배설물 봉투, 일반 생활 쓰레기도 수두룩하다. 수거함 근처에는 장판, 매트, 대형 폐기물처럼 수거함 안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 버려진 경우가 많다. 사실 쓰레기 무단투기의 경우 아무리 단속을 한들 현실적으로 투기자를 특정해서 찾아내긴 어렵다. 결국 수거함 운영자와 구청이 무단투기 쓰레기를 철저히 수거하고 주변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하퍼스 바자 약 10년 전만 해도 전혀 관리되지 않았던 불법 의류수거함을 90퍼센트 가까이 정리하기까지, 서초구는 어떤 노력을 해왔나?
이상현(가명) 다른 지역의 상황도 비슷했겠지만 서초구의 의류수거함은 수십 년간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무허가로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 미관을 해칠뿐더러 차량 통행과 보행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안전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무허가 의류수거함을 정리하고 보다 적극적인 관리를 시작한 이유다. 2016년 서초구 관내에 설치된 4백30여 개의 무허가 불법 의류수거함의 실태를 조사했고, 이듬해 대부분 철거했다. 그 덕에 현재 서초구에 불법으로 운영 중인 의류수거함은 없다.
하퍼스 바자 그렇게 만든 서초구의 의류수거함 ‘옷체통’을 비롯해 영등포구의 ‘영의정(영등포구 의류 정거장)’, 수원시의 ‘이리옷너라’ 등 각 지역구는 재치 있는 네이밍과 함께 수거함을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으로는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이상현(가명) 디자인이 깔끔해지니 미관상으로도 좋을뿐더러 수거함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관리 주체가 명시되어 있으니 최소한의 기능은 하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일부 지역구에서는 광고물 부착으로 인한 오염과 훼손을 막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칠하는 경우도 있다. 수거함 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다. 옷체통은 직원 공모로 당선된 이름인데, 무엇보다 주민들이 쉽게 기억하고 찾길 바랐다. 배출과 수거에 편리한 높이에다 눈에 잘 띄라고 컬러도 노란색으로 골랐다.
하퍼스 바자 관할 구청은 공개입찰 방식으로 의류수거함의 수거 주체를 선정한다. 의류 재활용이나 판매와 같은 수거 이후의 과정에서는 구청과 운영 단체의 역할이 어떻게 나뉘는가?
이상현(가명) 구청은 의류수거함 이동을 비롯해 기타 수반되는 민원을 처리하는 일이 메인이다. 나머지 과정, 즉 의류를 수거하고,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수거한 의류로 발생한 수익금을 관리하는 등의 모든 업무는 선정된 관리 업체에서 알아서 진행한다. 물론 우리가 ‘주 3회 이상 의류 수거’처럼 최소한의 가이드를 주긴 한다.
하퍼스 바자 의류수거함 운영 업체는 수거한 의류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구청에 사용료나 허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인 건가?
이상현(가명) 민간 업체에 위탁해 관리하기도 하지만 도로 점용료나 사용료를 받는 지자체도 있다. 서초구는 전자에 해당한다. 운영 단체가 수익금의 일부를 서초구 관내의 복지사업이나 관련 단체에 기부하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퍼스 바자 상대적으로 수거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니 수거함에 모인 옷이 제대로 재활용되고 있는지 의심하는 시선도 많다. 의류수거함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갖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상현(가명) 앞서 말한 것처럼 수거된 옷을 판매하거나 재활용하는 단계는 오롯이 관리 업체의 몫이라 그 현황을 소상히 말해줄 순 없지만, 옷을 해외로 수출하거나 부녀회나 바자회 등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의류 폐기물 관점에서 보면 의류수거함은 꼭 필요한 시스템이다. 정책이나 제도를 오용하는 경우는 비단 의류수거함 운영에서만 발생하는 사례는 아니다. 회의적인 시선 대신 의류수거함의 설치와 운영으로 발생하는 편익과 그 이면의 부작용에 대해 더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최근 5~6년 사이 의류수거함 재정비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면 이제는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할 때다. 느리더라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퍼스 바자 그 다음 단계, 즉 정비를 마친 의류수거함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상현(가명) 의류수거함을 홍보하거나 정비하는 것처럼 행정기관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으나, 어쩔 수 없이 가장 필요한 건 주민들의 협조다. 재사용이 가능한 품목을 넣는 곳이라는 걸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적에 맞게 사용만 해도 의류의 선순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의류수거함, 제대로 이용하기
1 의류수거함에서 수거 가능한 품목은 다음과 같다. 헌 옷, 신발, 모자, 가방, 이불(솜이불은 제외), 가정용 카펫, 커튼, 담요 등. 당연하게도 모든 물건은 투입구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2 이 외의 장판이나 옥매트 등 대형 폐기물은 신고 후 발급받은 스티커를 붙여 버리거나 종량제 봉투에 넣어 쓰레기로 분리해 배출한다.
3 아파트 단지 내의 수거 품목은 각 아파트마다 다를 수 있다. 이불과 큰 인형, 침구류처럼 종류에 따라 크기나 부피가 천차만별인, 애매한 품목은 대형 폐기물로 버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신발이라도 장화, 슬리퍼, 운동화 등 종류에 따라 수거가 가능한 품목과 그렇지 않은 품목이 나뉘니 꼼꼼히 파악해 버릴 것.
4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겠지만, 아무런 경각심도 느끼지 못했을 내용. 의류수거함 옆 쓰레기 무단투기 시 100만원 이하, 불법광고물 부착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Credit

  • 사진/ 하태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