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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문화유산이 된 베를린 테크노

베를린의 테크노가 유네스코의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프로필 by 고영진 2024.05.13
베를린엔 딱 한 번 다녀왔다. 2013년 겨울이었다. “베르크하인(Berghain)에 줄이 지금 어느 정도야?” 당시에도 지금도 베를린을 대표하는 클럽, 베르크하인에 미리 가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빠르면 두 시간?” 포기했다. 꼭 궂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갈 곳은 충분히 많았으니까. 그날 밤엔 교회에 갔다. 여기가 클럽이라고?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로로 긴 진짜 교회 의자가 보였다. ‘홀리’한 밤의 시작이었다.
천장이 높은 댄스 플로어에서, 딱딱한 테크노 클럽보다 풍성한 교회의 울림으로 음악을 들었다. 마테차의 카페인 덕인지, 애초에 사람을 모으고 찬양하기 위해 디자인된 공간의 위력 때문인지, 디제이의 압도적 실력 때문인지 아침이 올 때까지 앞만 보고 몸을 흔들었다. 여기는 교회가 맞구나. 댄스음악 애호가들이 왜 과거 시카고, 뉴욕 등지의 전설적인 클럽을 ‘교회’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음악 아래 모두가 평등했고, 그 공간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해방감 가득한 독립적 세계였다.
“여기는 구동독 탄약고 지역이었대.” 다음 날, 어둑어둑한 거리를 한참 걸어 들어가자 병영 형태의 넓고 평평한 지대가 나타났다. 개별적 건물은 각각의 클럽, 혹은 바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나의 장르로 묶이지만 그 안에 수많은 세부 특성을 가진 테크노처럼, 여러 클럽에선 각기 다른 음악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아까 북한 친구 왔다 갔는데, 너는 남한에서 왔니?” BTS와 <오징어 게임>의 시대가 열리기 전, 수없이 마주한 질문이었지만 어쩐지 그곳에서는 그 말이 다소 다르게 들렸다.
“통일된 후에 평양에서 레이브 열리면 진짜 멋질 것 같지 않아?” 댄스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현재 클럽 베르크하인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원래 동독의 화력발전소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수많은 파티가 버려지거나 기능을 상실한 동베를린의 건물에서 열렸다. 동독 지역에 살던 젊은이들도 (더 과격한 음악과 함께) 화답했다. 당연히 ‘두 번째 사랑의 여름’ 당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불법 레이브가 주류였지만, 급격한 정치적 변혁에 대처하는 데 전력을 다하던 독일 정부는 이런 도시의 문화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베를린의 젊은 세대는 아주 자유롭고 자신 있게, 자기만의 신을 만들어나갔다. 레이브에 이어 다양한 테크노 클럽이 생기고, 이미 70년대 크라프트베르크와 크라우트록의 시대부터 전자음악이라면 그 누구보다 잘하던 독일의 아티스트들은 댄스 플로어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테크노는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했지만, 독일의 음악적 역사와 정치적 상황은 테크노가 새로운 본거지를 찾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테크노는 여러모로 해당 장르가 뿌리를 내리기 적절한 환경을 갖춘 도시, 베를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디트로이트 테크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로 90년대부터 이름을 떨친 트레조어, 베를린 테크노 클럽의 대명사와도 같은 베르크하인, 당대 언더그라운드 댄스음악의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는 클럽 데어 비저네어와 호페토세 등 매력적인 베뉴는 물론, 이런 클럽 문화를 둘러싼 레코드 가게 및 음악 레이블, 다양한 관련 이벤트와 공간 등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베를린 이주를 결정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유네스코가 베를린 테크노를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를 “등재된 무형 문화유산 중 가장 젊은 전통”이라 평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본 베를린의 클럽 신에는 큰 도움이 되는 소식일 것이다. 긴 시간만큼이나 자생력을 충분히 갖춘 듯했으나, 지속가능성과 보존은 그와 다른 차원의 문제인 데다 여전히 클럽과 댄스 음악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콘텐츠는 아니니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더욱 자연 발생적이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형성되어 무형 문화유산으로서의 확고한 매력을 갖추게 되었겠지만.
“여기는 주말 지하철이 24시간이야.” 새벽 5시면 해장국을 먹으러 가고, 주말이면 평일보다 지하철 운행 시간이 짧아지는 나라에서 온 나는 월요일까지 내내 벌어지는 논스톱 파티와 마치 그런 흥미로운 주말을 묵묵히 지원하듯 운행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낯설 뿐이었다.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해 낮밤 구분이 거의 불가능한 날씨 또한 클럽에서 테크노와 함께 밤을, 아니 온 주말을 보내기에 완벽히 잘 어울린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교회의 신성함도, 병영의 서늘함도, 새벽 지하철 승객들의 유쾌함도. 올해는 다시 베를린에 가보려 한다.

Credit

  • 글/ 유지성(<하입비스트 코리아> 편집장)
  • 사진/ Getty Images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