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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밍타이거 이수호가 'UP!을 만들기까지

구교환이 등장해 화제를 모은 그 뮤직비디오의 제작 비하인드.

프로필 by 안서경 2024.02.21
컨베이어벨트 위, 밀려드는 물건에 바코드를 찍고 또 찍는 남자.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짜증 날 땐 그저 뒷짐 진 채 가운뎃손가락을 세운다. 미래적 세계관으로 그득한 케이팝 뮤직비디오에 피로해지던 찰나 찾아본 바밍타이거의 첫 정규 앨범 11번째 트랙 ‘UP!’의 뮤직비디오. 피식 실소가 터지다 씁쓸해졌고 마지막 장면에선 살짝 마음이 따뜻해졌다. 영상을 본 순간 독립영화 속 구교환 특유의 찌질한 연기가 낯익은 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겠다고 확신했다. 휴지조각처럼 낡고 지친, 현대인의 애달픈 초상을 담은 스파이크 존스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한다면 더욱이.
뮤직비디오를 만든 이수호는 지난 몇 년 동안 바밍타이거의 영상뿐만 아니라 보링스튜디오를 이끄는 감독으로서 다양한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데뷔 초, 시각적으로 불쾌할 법한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뒤섞은 연출 스타일로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던 이수호의 영상이 변화한 걸까. ‘UP!’ 뮤직비디오는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더하고 서정적인 필터를 덧댄 것 같았다. 구상 단계에서 이수호는 리더 산얀과 이야기를 나누다 어렴풋한 이미지 하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정체되어 꽉 막혀 있던 것’이 한 번에 뚫리는 이미지를 생각했어요. 산얀이 먼저 마트라는 공간에서 물건이 밀려오는 모습이 어떠냐 말했고, 거기서 시작됐어요.” 규모가 큰 대형마트를 찾아야 하기에 가장 걱정되었던 로케이션 문제는 광명 이케아 측의 협조로 순조롭게 해결되었다고. 단, 이케아는 연중무휴여서 꼬박 이틀 새벽을 지새우며 촬영을 마쳤다. 3분 45초의 음원이 5분 26초의 뮤직비디오가 된 이유. 직장 동료에게 끈덕지게 전 여자친구 얘기를 하는 대화 신은 애드리브 없이 철저히 대본대로 구현된 것. “모순적이고 찌질한 주인공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그 신은 결정적이었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맨 앞에 배치하려 했는데, 리듬감이 처진 채 시작하는 것 같아 중간에 넣게 됐어요.”
짧은 영상을 보고 나서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었던 건 감독이 세심히 설계한 연출 덕이다. “엔딩으로 갈수록 상승하는 듯한 수직적인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때문에 영상 초반에는 카메라 구도를 최대한 프레임에 갇힌 듯 수평적인 구도로 연출하고자 의도했어요. 기타 연주가 고조되면서 물건 더미로 쌓인 산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선 일부러 장면과 박자를 조금 엇나가게 편집했고요. 그게 에너지적으로 맞다고 판단했죠.” 빠르게 교차편집되는 과거 사진들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멀티버스 신을 참고한 것. 현실 고증한 듯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날 위한 것처럼 하더니 결국 너가 우선인 사람이었어”, “내 쓰레기 같은 결정이 후회돼”. 이별을 암시하는 편지는 주인공의 전 여친 역할을 한 이소현 조감독이 실제로 쓴, 촌철살인의 편지라고.
이수호는 이번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처음 영상을 만들던 마음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독자적 뮤지션으로서 정규 앨범을 내기도 한 그는 음악과 무빙 이미지, 영화라는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 듯 보인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좋은 동료들과 ‘재밌는 작업을 위한 작업’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솔직한 말에 “Life is so bittersweet, It’s hard sometimes, yeah, yeah,yeah” 마지막 가사가 포개어진다.

Credit

  • 사진/ ⓒ 바밍타이거,보링스튜디오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