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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Tour를 발매한 마이큐와 나눈 대화

현실에 발을 붙이고, 비현실적인 그림과 노래를 만들며, 초현실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

프로필 by BAZAAR 2023.12.24
 
셔츠, 오버올은 Gucci. 목걸이는 마이큐 소장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오버올은 Gucci. 목걸이는 마이큐 소장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년 만에 정규 앨범 <Tour>를 발매했다. 매해 여러 장의 앨범을 부지런히 내다 오랜만에 발표한 앨범인데, 트랙 리스트를 듣다 미묘한 변화를 발견했다. 이전에는 주로 먼 미래의 꿈이나 과거에 대해 노래했다면 이번 앨범은 시점이 현재로 옮겨진 듯한 인상이다.
사실 더 이상 음악을 통해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늘 꿈을 향해가는 얘기를 해왔는데 어느 순간 “언제까지 난 꿈을 꾸는 거지?” 생각이 들더라. 싱어송라이터로서 내 음악은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7월부터 매일 작업실에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얘기하고 싶은 주제가 생겼나?
2년 전과 지금, 내 삶의 방식이 극단적일 정도로 바뀌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앨범 작업을 마칠 즈음 깨달은 점이 나는 항상 ‘언젠가 꿈을 이룬 그날이 올 거야’라는 어떤 확신 속에서 창작을 해왔는데 이젠 ‘그날이 오지 않아도 괜찮아, 오지 않을 수 있어, 이 순간을 누리자’라고 인정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거다. 이번 앨범은 여정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미지의 세계라기보단 현실에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에 가깝다. 꿈만 꾸던 소년은 이제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싶다. (웃음)
아이의 시각에서 본 세상(‘Mike’s Speech’)이나 삶을 전시회에 비유한 곡(‘전시회’)처럼 곡에서 요즘 일상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냐는 친구들의 반응도 있었는데,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내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거였으면 앨범을 낼 필요도 못 느꼈을 거다. 누군가 듣고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 정도로 삶의 방식이 변하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나?
내 연약함과 단점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 단지 나이가 든다고, 경험이나 지식을 쌓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매일 다듬어지고 비로소 내 약점들을 인정하게 되면서 여유롭고 유해지고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힘들고 어려워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방금 그 말과 비슷한 말을 양육자들에게서 종종 들은 적 있다.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고 하지 않나. 그 말이 정확한 것 같다. 불쑥 내가 자라오며 가장 싫었던 점이 튀어나온다. 사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젠 아버지를 이해하고 너무 좋은 사람이란 걸 알지만 자랄 때는 힘들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내게서 보일 때 ‘나 참 별로구나’ 한다.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은 어떻게 견뎌내나?
감정 코칭 프로그램 수업을 받고 있다. 머리로 안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니까, 실습을 요하고 내 과거를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톱, 쇼츠는 Etro. 이너 셔츠, 타이, 슈즈는 모두 Maison Margiela. 안경은 마이큐 소장품.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 쇼츠는 Etro. 이너 셔츠, 타이, 슈즈는 모두 Maison Margiela. 안경은 마이큐 소장품.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다시 앨범 얘기로 돌아가면, 총 15개의 곡이 수록된 앨범에서 트랙을 배치할 때 어떤 점에 집중했나? 마지막 곡 ‘Tour’가 멀어진 이들과 언젠가 재회하자는 내용이어서 의도가 있을 것 같았다.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졌어도/언제 다시 마음이 맞닿으면/안아주고 수고했다고 말해줘/그때 우리 미숙했다고 웃으며/ 몸과 마음 건강히 또 만나자” 이 가사가 특히 좋았다.
14곡의 트랙을 완성하고 보니 끝이 안 나는 느낌이었다. 2005년 데뷔 당시 만들어둔 곡들을 다시 들어봤다. 말도 안 되게 손, 발가락이 간지러운 노래들이 많더라. 그 중 하나가 ‘Tour’의 멜로디였는데, 듣다가 내 안에 어떤 울컥함이 생기더라. 한때 가까웠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져 못 보는 사람도, 스쳐 지나간 인연도 누구나 한둘은 있지 않나. 마지막 순간에 모두 한 무대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상상을 하며 원초적인 감정으로 쓴 가사다. 자연스러운 피날레처럼 장식하고 싶었다.
사실 마이큐라는 사람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지독한 사랑지상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 곡 ‘너의 온기’ 이외에는 비교적 사랑 노래가 드물다.
사랑 노래 참 많이 했다. 사랑만큼 위대한 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못 믿겠지만 사실 난 공연 때 사랑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다. (웃음) 밴드 세션 멤버들의 “그 노래 빼면 안 되죠” 같은 말 때문에 부르고 나면 더 내밀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긴 했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일과 사랑, 삶의 밸런스라고 해야 하나, 요즘 좋아 보인다.
베스트 프렌즈가 있고, 아이들이라는 좋은 친구들이 있고. 감사한 일이 참 많다.
베스트 프렌즈, 인연을 알아보는 법이 있나?
어떤 순간을 계속 그리면 그 모양은 겨울에 눈송이 조각이 모두 다르듯 다른 모양이라도 분명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말을 믿는다.
당신은 그때를 바로 알았던 거겠지?
우리 심장은 안다. 순간적으로 머리로는 확신하지 못할 수 있어도 내 안에 몰아붙이는 감정. 과학인 거다. 못 속인다.
 
톱, 팬츠는 Erl by G.Street. 슬라이드는 Loewe.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 팬츠는 Erl by G.Street. 슬라이드는 Loewe.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3년 전 페인터로서 첫 개인전을 열 당시 얘길 나누었을 땐 조금 지친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첫 전시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나 두 번째 개인전 «Emo»를 열 때 동명의 앨범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엔 음악 작업만 했다.
맞다, 번아웃이 심했다. 내가 음악을 왜 하고 있지 싶고, 오래 묵은 답답함과 간절함이 뒤섞여있던 때였다. 아주 작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피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상어 떼처럼 어두운 감정을 부르던 시기. 난 항상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어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야만 견딜 수 있었다. 물감이 마르길 기다리면서 음악을 다시 하는 에너지가 좋았고, 그 티키타카의 결과물이었다.
꾸준히 작업하면서 첫 작업실도 생겼다. 가까이서 경험한 미술계는 어떻던가?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땐 발 디딜 틈 없이 캔버스로 빼곡했다. 호수가 큰 작업은 하지 못했는데 점점 더 큰 작업이 하고 싶어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작업실에 가서 ‘9 to 5’를 고수한다. 회화를 만난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었고,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정답 없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었다. 사실 일종의 배신감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온 마음을 다해 음악을 해도 피드백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던 때가 있었다. 물론 내 욕심이 많았을 수 있겠지만. 처음 전시를 했을 때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러 와주고, 각자 해석을 더해 공감해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그 감정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전시를 몇 차례 열며 젠더나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마음껏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이건 너무 좋다”라고 솔직하게 건네는 말들이 그저 흥미롭게 느껴지고 재미있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
예를 들어 난 사랑을 표현하면서 그렸는데, 그림을 보고 아픔을 느끼거나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화에 있어 내가 굳이 의도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았다. 그저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완성해주는 것이라고. 무엇이 되었든 최대한의 감정을 느끼고 가길 바랄 뿐이다.
주로 색면추상 작업을 하다가, 최근 SNS에 공개한 작업들은 곡선 형태가 엿보이더라.
그때는 비워내는 과정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애써 채우려고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채워내고, 비워내며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심리적으로나 테크닉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 내 안에 어떤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데, 벽을 세우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리고 싶은 느낌을 따라가고 싶다. 다시 반복하다 보면 이 시간이 어디로 이끌겠지.
늘 차분해 보이는 마이큐가 작업 이외에 예민해지고 엄격해질 땐 언제인가?
나만의 루틴이나 패턴이 의미 없이 깨지는 걸 싫어한다. 아침엔 동네 커피숍에서 1시간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6시 반쯤 일어나 작업실로 출발하기 전까지 생각을 정리한다.
메모장에 종종 단어들을 기록한다고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인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면서, 취약한 부분부터 내 가장 멋진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었고 타인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아까 말했듯 인정이 부재한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었고. 음악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스스로 경쟁자를 만들기도 하면서 자신을 힘들게 굴던 시기도 있었는데 너무 많은 실패와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에 되려 단단해질 수 있었다. 이젠 아니다. 지금은 그냥 내 갈 길을 간다.  
 

Credit

  • 에디터/ 안서경
  • 사진/ 채대한
  • 헤어/ 최은영
  • 메이크업/ 최수일
  •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 어시스턴트/ 허지수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