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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드 빌팽과 강명희 작가의 두터운 우정
도미니크 드 빌팽과 강명희 작가의 두터운 우정은 전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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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드 빌팽과 강명희 작가의 두터운 우정은 전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La Haie de Hibiscus Blancs>, 2019, Oil on canvas, 162x130cm.
갤러리 빌팽의 전시가 열리는 성수동의 키르 서울은 독특한 장소입니다. 밝은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 강명희 작가의 그림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빌팽 갤러리 빌팽의 큐레이터인 아들 아서가 이곳을 보고 전통적인 갤러리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서 많이 끌렸습니다. 강명희 작가의 작품에는 이중성이 있는데, 그 이중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키르 서울의 전시장은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인터뷰하는 이곳은 전통적인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하얀색 벽이 있는 공간입니다. 강명희의 <중국해> <시리아>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자연의 투명함, 연약함과 부서지기 쉬움 혹은 바다의 힘 같은 것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반면 옆 동의 공간에서는 세계의 현실 자체를 보여줍니다. 세계의 폭력성이라 할 수 있죠. 날것 그대로의 노출 콘크리트가 보여주는 힘과 작가의 강한 힘, 두 힘이 경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역설과 모순 같은 것을 강명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강명희 작가의 작품은 우리 인류가 위기와 재난과 전쟁을 겪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자연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자연과 하나되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찾고 있습니다.
갤러리 빌팽의 한국 첫 전시로 강명희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빌팽 강명희 작가는 1986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연 동양 작가였고, 1989년 여성 화가로는 처음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베이징에서도 큰 전시를 여러 번 열었죠. 첫 전시로 강명희 작가를 선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여성 작가, 특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 회고전을 이끌었습니다. 그 세대의 여성 작가 혹은 작가 자체로도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쿠사마 야요이와 함께 동양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아트 시장과 한 번도 타협을 한 적이 없습니다. 고비사막이나 파타고니아빙하에 이르기까지, 태초의 기원을 찾아 세계 곳곳을 끊임없이 모험해왔습니다.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그림에 온전히 사로잡혀 살아왔죠. 어린 시절부터 평생 그림에 몰두해오다가 76세가 된 지금, 작가의 고국에서 회고전으로 작품에 담긴 조화와 다양성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전통과 세계의 복잡성 같은 문제가 강명희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Mur du Voisin>, 2023, Oil on canvas, 85x56cm.
빌팽 씨가 생각하는 강명희 작품 세계의 매력이나 독특함은 무엇인가요?
빌팽 강명희 작가의 작품에는 야망이 있습니다. 그건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려는 야망이죠. 세상을 예민하고 약한 눈으로 보고 드러내려는 시도입니다. 관람객이 자기 스스로를 찾고, 자연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를 좀 더 크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두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강명희 빌팽이 파리 전시회의 카탈로그를 본 후 나를 관심 있어 했죠. 물론 나도 빌팽의 시를 보고 관심이 있었어요. 시 소재로 구름, 먼지 등이 나오는데 특히 인간이 갖고 있는 겁에 대한 긴 시가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 길고 적나라한 시가 좋아서 2005년에 베이징에서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었어요. 빌팽은 그 제안에 대한 답을 시로 보내줬습니다. ‘망자의 무덤’이라는 시였는데 일곱 페이지를 넘을 정도로 길었지만 좋았어요. 그는 그림을 보고 시를 쓰고, 난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베이징에서 함께 시화전(詩와畵, po`eme et peinture)을 했습니다. 중국미술관(NAMOC)에 큰 사이즈의 작품을 걸었고 중국어로 번역된 빌팽의 시가 전시되었죠. 중국의 주요 시인들과 미술관 관장들이 모두 방문한 행사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관계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왜 함께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빌팽과의 이런 동행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빌팽 40년간 친분을 쌓아왔습니다. 파리의 아티스트 그룹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죠. 예술을 통한 대화를 계속 지속해왔고 이를 통해 강명희 작가의 작품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그의 열정에 압도되었습니다. 강명희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치 다른 세기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1960년대 파리나 뉴욕에서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던 시기 말입니다. 예술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시기, 음악가가 조각가와 같이 작업하고, 화가와 작가와 건축가가 모두 같이 일했던 시기.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사라져가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여러 아티스트의 비전을 통해서 서로 다른 경험과 연구를 교류하면서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지금 홍콩에 있는 빌팽 갤러리와 아트 앤 컬처 파운데이션이라는 재단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일입니다.

<Cerisier, Touraine>, 2003-21, Oil on canvas, 145x114cm.
오랜 시간에 걸쳐 전 세계를 탐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명희 계기는 좀 이상하다고 할 수 있어요. 1970년대에 파리로 이주해 정착한 후 파리나 유럽의 작품들을 직접 보니까 충격이 무척 심했죠. 거기에 빠져서 한참 지내다가 20년쯤 지나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보지 않았던 동양 쪽으로 갑자기 눈을 돌리게 되었어요. 내 자신이 뭔가 반쯤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냥 대책 없이 몽골 대사관에 방문해 가고 싶다고 했죠. 몽골 사람들이 착하고 친절해서 그림 그리러 왔다고 하니까 많이 도와줬죠. 1994년에 시작해 여름마다 여러 번 방문했어요. 지인에게 세종과학기지 얘기를 들은 후 남극을 보러 간 적도 있어요. 대책 없이 안데스산맥을 보러 가기도 하고. 당시에는 서양과 동양의 화두는 물론이고 내 근본도 알고 싶어했습니다. 남미에 가니까 원주민들의 말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못 그렸던 강을 그리기 위해 또 가기도 했고요. 가던 곳을 계속 가다가 혼자 인도를 방문해 시장에서 소 그림을 그렸답니다. 그런 곳에 다녀오면 세상을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으로 자신감이 충만하죠. 그러니 일반적인 화폭은 눈에 안 차요. 사막을 담으려면 더 커야 해서 7미터 작품이 나왔어요. 여행을 다녀오면서 작품의 사이즈가 금세 커졌습니다. 큰 작품은 몰입해야 하니까 작업이 굉장히 다르죠. 제주에서 한라산 천백고지를 그린 것이 최근 그림입니다.
최근 제주도를 그린 작품을 보니 화사함과 동시에 어딘가 소박함이 느껴집니다.
강명희 맞죠. 사는 게 그러니까. 매일 버스 타고 나가서 걸어 다니며 풀꽃을 뜯어서 그날의 꽃을 갖다 놓습니다. 화실 안에 놓은 풀꽃은 시들기 마련이죠. 화실에 3년째 꽂아둔 꽃이 있어요. 꽃을 가면 놔두면 서서히 소멸해서 없어집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고 그냥 두면 다른 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죠. 어떤 때는 안료나 염료로 만들어 쓰기도 해요. 나한테는 그런 과정이 새롭습니다. 과일도 그렇고, 부패하거나 벌레가 생기지만 매일 어떤 식으로든 놀라면서 아름답게 보여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아름다움에 매일 놀라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하루가 지루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워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의 색»이라는 전시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립니다. 꽃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강명희 전시 제목은 전적으로 빌팽의 솜씨입니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물, 구름 등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바위를 그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늘 그런 식의 숙제가 있죠. 꽃과 흙을 그린다고 해도 그 안에는 역사가 담겨 있기 마련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포착하고 느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내가 완성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계속 그리죠. 그렇다고 그림을 무조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설렁설렁 설렐 때 붓을 듭니다. 나에겐 오직 붓만이 있기 때문에 자연을 그리는 겁니다. 사물을 보면서 그 사물의 역사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돌을 그리게 되면 돌이 나한테 하는 질문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물들, 돌과 물이 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질문을 해요. 그 물음이 너무나 커서 제가 답하기에는 사람으로서 한계가 있답니다.(웃음) 그걸 못하겠다고 포기할 순 있지만 그러기에는 76세까지 너무 많이 왔네요. 숙제를 하다 보면 하루가 짧아요. 늘 내일 하루만 더 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개인적인 리듬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 혹은 72시간을 산다고 생각해요. 옆에 같이 있는 사람도 잘 모르겠지만 난 오늘과 내일, 내일모레를 생각하고 뭘 할지 계획하면서 살아가요. 자연스럽게 내가 못다 한 것들이 떠오르고 그것을 생각하면 몸이 저절로 따라가게 됩니다.
끝으로 빌팽 갤러리의 비전이나 향후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빌팽 사실 갤러리는 아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길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아내는 것은 빌팽 갤러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인류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드는 작가, 즉 강명희, 자오우키, 안젤름 키퍼처럼 훌륭한 작가들을 선보이고 같은 비전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한국에서 독립적인 개체로서 일을 하기보다는 갤러리나 뮤지엄, 공공기관이나 예술문화재단 등과 협업을 통해 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강명희 작가님과 빌팽 갤러리와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강명희 우린 오랫동안 쭉 같이 해왔어요. 우리가 지닌 특권이 그림과 시 같은 메디움을 갖고 있다는 점이죠. 이런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서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굉장히 든든하게 생각해요. 다른 걸 설명하면 사족이고 우리의 관계는 든든합니다. 그래서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빌팽 작가님의 말에 100퍼센트 동의합니다.(웃음)
※ 전시 «시간의 색»은 11월 21일까지 키르 서울에서 진행된다.
전종혁은 영화와 미술에 대해 글을 쓰는 프리랜스 에디터다. 언제나 예술가들의 열정과 영감을 훔쳐보는 일에 매료된다.
Credit
- 글/ 전종혁
- 사진/ 하태민, ⓒ 갤러리 빌팽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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