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파리에서 열린 2024 S/S 미우미우 쇼에서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가방! 구두, 볼캡, 브리프, 데님 등 다양한 아이템을 닥치는 대로 욱여넣은 듯한 토트백을 옆구리에 낀 채 캣워크를 거니는 모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친숙하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친숙함을 느낀 이유는 가방 속에 별의별 물건을 가득 넣고 다니는 주위의 몇몇 인물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 주변인에게 ‘보부상’으로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가방 속에 어떤 돌발상황에도 대처할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는 것.(물론 그 아이템을 찾는 데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모습을 길거리가 아닌 트렌드의 각축장인 패션위크에서, 그것도 요즘 가장 핫하다는 미우미우 쇼에서 목도했기 때문이리라. 그보다 앞서 열린 보테가 베네타 쇼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니트 보디수트 혹은 위빙 톱에 브리프를 매치한 모델들이 돌돌 말린 신문과 여벌의 셔츠, 데님이 삐죽 나와있는 메가 사이즈의 가죽 위빙 백을 들고 등장했다. 한편 발렌시아가에서는 가방의 속이 아닌, 겉을 장식한 스타일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클래식한 자물쇠부터 키링, 체인 장식, 네임태그, 각종 열쇠 등 다양한 소품이 주렁주렁 매달린 낡고 큼직한 가방들이 뎀나 특유의 크고 각진 어깨의 룩들과 완벽하게 어우러졌음은 물론이다.
Bottega Veneta 2024 S/S
패션위크가 막을 내린 뒤 국내 소셜네트워크에는 이들 룩 사진에 ‘보부상-코어(core)’라는 단어가 해시태그되었다. 본디 보부상(褓負商)은 과거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자 역할을 했던 상인을 일컫는 말. 오늘날에는 수납력이 좋은 가방을 즐겨 들며, 다양한 생필품을 넣고 다니는 이들을 가리키는 애칭이 되었다. 이 보부상이라는 단어에 지극히 평범한 옷이나 소품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을 뜻하는 놈코어(normcore)가 결합돼 ‘보부상-코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게 된 것. 굳이 풀이해본다면 ‘짐 많은 이들의 세련된 일상복’쯤 되지 않을까. 이 보부상-코어의 아이콘으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난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이다. 라탄 바스켓을 가방으로 주로 들고 다녔던 그녀는 언제나 그 속을 많은 물건들로 꽉꽉 채워 다녔다. 출산 후 아이와 함께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스켓 안의 각종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고, 그녀 옆에 앉아있었던 에르메스의 최고 경영자 장-루이 뒤마가 비행기 안에 비치된 멀미용 봉투에 버킨 백의 초안이 된 스케치를 그려 보여주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후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본뜬 버킨 백을 발로 밟고 손으로 구겨 길을 들인 뒤 넘치도록 많은 물건을 넣어 다녔다. 또한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킨 백을 장식하곤 했는데 여행지에서 산 장식품, 묵주, 열쇠, 스티커, 더 나아가 에르메스 시계까지 가방에 매달곤 했다. 다양한 소품들로 장식된 그 가방이나 많은 짐으로 불룩해진 버킨 백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미우미우, 발렌시아가의 컬렉션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 휴대폰을 꾸미는 ‘폰꾸’, 방을 꾸미는 ‘방꾸’에 이어 가방(bag)을 꾸미는 ‘백꾸’가 요즘 젠지들의 새로운 취미로 떠오른 만큼 제인 버킨의 백꾸 스타일이 재조명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
Balenciaga 2024 S/S
이러한 흐름에 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가방이 스타일링의 포인트나 마침표가 아닌,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우리 시대의 복잡성을 반영해야 해요. 이 컬렉션은 동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적 정의이자 탐구입니다.” 2024 S/S 컬렉션의 쇼노트에 적힌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보부상 백 스타일링은 착용자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반영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때문에 보부상-코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함께 매치한 의상 역시 드레스업한 룩보다는 에센셜 피스에 충실한 베이식한 룩이 알맞다. 단, 편안함 속에 약간의 긴장감은 필수. 짧은 하의로 각선미를 드러내거나, 비비드한 컬러로 포인트를 주고, 선글라스나 볼드한 주얼리를 적절하게 활용한 미우미우 컬렉션을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시즌엔 새로운 잇 백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옷장 속에 잠들어 있는 가방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주요할 것이다. 가방 속을 가득 채우거나, 가방 밖을 잔뜩 꾸미거나. 매일 함께하는 가방에 당신만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