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목정욱, 신선혜, 제임스 해리스가 말하는 사진 철학
바자전 관람객들이 직접 보내온 물음표에 세 작가가 내놓은 사진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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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갈 때 보이는 것을 담은 신선혜의 개인 작업들. 짧은 휴가를 위해 경로를 거듭해 고른 목적지에서 그의 사진은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의 발로가 된다.

«바자전: Holi-Day, 세 개의 렌즈» 신선혜 섹션 전경.
전시장 속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인상을 받았다. 테라스에 쏟아지는 햇살의 색온도가 체리와 배가 놓인 테이블로 이어지고, 파란색 장바구니와 플라스틱 컵의 물성과 컬러가 연결된다. _(정희윤, 29세)
하나의 색으로 치우치게 되는 건 피했다. 매거진의 레이아웃을 생각하듯, 프레임과 공간 안에서 아름다운 조합을 찾다 보니 리듬감이 만들어졌다.
고유한 정물 사진 스타일이 있다. 정물화나 사물을 담은 사진에 대한 애착이 있나? _(YB(가명), 20대)
매체를 즐겨 보기보다는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물건들을 신경 써서 살피곤 한다. 주관적으로 귀여움을 느끼는 사물을 주로 찍게 된다. 밥 해먹으려고 둔 식재료들을 눕혀도 봤다가 여러 개를 세워보기도 하고. 형태가 큰 것보다 딱 내 손 안에 쥐어질 수 있는 크기의 사물들이 재미있다. 물건을 포장하고 남은 고무줄, 누군가 버린 깨진 화병 조각 같은 걸 지나치지 못하는 게 병이다.(웃음)
스튜디오가 아닌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변하게 되나? _(유은진, 31세)
여행자는 아이처럼 호기심을 갖고 모든 걸 보게 되지 않나. 바쁜 일상을 벗어나 긴장이 풀어지지만, 또 한편으론 낯설고 색다른 환경 때문에 긴장이 되기도 하는 양가적인 상태가 재미있다. 화장실 표지판, 쓰레기통의 소재, 과일의 색감 같은 것들도 새롭게 보게 된다.

Shin Sunhye, <Untitled>, 2023.
«바자전»에서 볼 수 있는 장소는 이탈리아 해안가다. 자신만의 목적지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_(이주용, 26세)
주로 자연과 가까운 소도시를 좋아한다. 구글맵을 켜고 이름도 잘 모르지만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으려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카시스는 한 번 가봤으니 그 주변 도시 중 엇비슷한 크기의 점을 클릭해 무작위로 가는 거다. 해안가 인근으로 잡으면 바다는 갈 수 있겠지 싶어 몇 시간 걸어가기도 하고. 한번은 국도로 걷다가 인적도 없는 길에 빠져 숙소로 돌아오지 못할 뻔한 적도 있다.(웃음) 파리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는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발견한 곳들은 불편함은 있어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아쉬운 만큼 좋은 기억이 많이 남는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어떤 컷은 즉흥성이 반영되어 있고 몇몇은 아름답게 세팅되어 있다.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게 되나? _(HYE(가명), 27세)
아주 즉흥적인 순간에 찍는 재미가 배가된다. 아침 일찍 눈을 떠 내려간 호텔 연회장에서 청소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기도 하고. 전시에서 선보인 모카포트에 꽂힌 꽃 사진도 일부러 꽂은 게 아니라 에어비앤비 숙소 아래층 남자아이가 놓아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화병은 없고, 저렇게 꽃이 싱싱한 걸 보니 여자친구를 주려고 따온 것 같은데. 그런 로맨틱한 정서나 순간이 좋았는데, 귀여워하는 마음이 사진에도 담긴 것 같다. 찍은 사진을 보면 그날 그 장소에서 느꼈던 공기나 냄새 같은 개인적인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날 때가 있다.
당신의 사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Memory.

«바자전: Holi-Day, 세 개의 렌즈» 신선혜 섹션 전경.
제임스 해리스 (James Harris)
영국 포토그래퍼 제임스 해리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현상을 포착하며 명상적 이미지를 창출한다. 종종 나뭇잎과 나무는 그에게 완벽한 피사체가 된다.

James Harris, <Gangwon-Do Red Leaf>, 2016.
당신의 사진은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듯 초현실적인 신비로움이 돋보인다. ‘마법 같은’ 순간을 어떻게 발견하고 포착하는가? _(민수아, 26세)
때로는 우연히 마주할 때도 있지만, 종종 그러한 순간을 발로 뛰며 찾아 나선다. 일반적으로 빛, 사물, 인물, 건축, 자연(주로 나뭇잎과 나무)이 시적인 조화를 이룰 때까지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나의 작업 과정은 매우 명상적이고 관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프레임 안의 모든 디테일을 관찰하는 데 몰두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장면을 포착할 수 없다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해서 시도한다.
현장에서 봤을 때 <Nanzen-Ji Kyoto>(2011)는 사원의 바닥이 보는 방향에 따라서 빛의 색깔이 달라지는 듯하다. 의도한 건가? _(정희윤, 29세)
교토 난젠지사원에 방문했을 때 황혼의 푸른빛, 그리고 강렬한 가로등 빛이 나뭇잎에 반사되어 사원 바닥의 석판 위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청록색이 펼쳐져 있었다. 나뭇잎은 무작위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복잡한 패턴을 두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몇 시간 동안 머물면서 필름카메라로 다양한 노출로 세팅하며 촬영했다. 빛과 시간을 이용해 회화적인 조합을 만들어낸 셈이다. 마치 유화 물감을 섞듯 말이다. 색감이 사진의 질감을 더욱 강조시키고 깊이를 더한다고 믿는다. 어렸을 때부터 추상 유화와 세밀하게 묘사된 명화에 매료되었다. 앙리 마티스의 초대형 콜라주<달팽이>를 비롯해 애드 라인하르트,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 같은 뉴욕 추상표현주의 대작을 즐겨 봤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고대 벽 태피스트리같이 공간의 임팩트에 기여하는 예술작품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를 늘 소망한다.

James Harris, <London Fields Yellow Leaf>, 2016.
<London Fields Yellow Leaf>(2016), <Gangwon-Do Red Leaf>(2016) 등 당신의 작품들은 종종 나뭇잎이 피사체가 된다. 나뭇잎은 당신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영감의 원천인가? _(이윤제, 32세)
그 누구나 나무와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나. 끝없이 펼쳐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내리쬐는 나무 아래 누워 있던 기억처럼. 나는 이러한 보편성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나뭇잎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조각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단풍잎은 한국, 캐나다, 북미, 영국, 일본에서 색감, 모양 등이 다 다르더라. 이런 점이 흥미로웠다. 말했듯, 나는 카메라를 사용해 자연의 '수학적인’ 패턴을 포착하는 것을 즐긴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의 요소들을 변형하여 자연 그대로는 존재할 수 없는 시각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 촬영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_(NAM(가명), 29세)
강원도는 여러모로 사진가인 나에게 천국이었다.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온 산이 불처럼 타오르는 노란 나무와 깊고 진한 선홍색으로 뒤덮여있었다. 시각적으로 무척 아름다웠다. 또한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 않나. 이처럼 나는 '제대로 된' 작품을 위해선 내가 거주하고 있는 영국 런던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런던 블룸즈버리에서 가로등 불빛에 의해 강렬하게 빛나는 노란색 잎으로 이루어진 나무 캐노피를 마주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London Fields Yellow Leaf>(2016)이다. 어떤 장소에서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과 교차점을 탐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신의 사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Meditative.

«바자전: Holi-Day, 세 개의 렌즈» 제임스 해리스 섹션 전경. (왼쪽부터) <Seljalandsfoss> (2023), <Boisbuchet Green Leaf>(2015), <Nanzen-Ji, Kyoto>(2011).
목정욱
에너지. 목정욱이 사진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시각이 아닌 관념에 가깝다. 그가 포착한 아이슬란드 풍경은 심연처럼 깊고, 장엄하지만 쓸쓸한 정서가 배어있다.

Mok JungWook, <On the Road>, 2018.
2018년 촬영한 아이슬란드 풍광을 처음 공개했다. 그곳을 방문한 이유는 작업을 위해서인가? 사진가는 오로지 사진을 위한 여행을 자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_(브스즈, 30대)
여행지에서 사진을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모드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카메라는 일종의 안테나 같아서 손에 쥐고 있으면 신호를 주고받는 상태가 되는데, 그 상태에서 한 발짝 뒤로 가고 싶어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사진만을 위한 여행은 단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미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이었는데, 이후 여행은 더 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사진이 무척 회화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가장 애착이 가거나 마음에 드는 컷을 꼽아본다면? _(민수아, 26세)
아이슬란드가 내게 보여준 얼굴은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온통 그레이였다. 아이슬란드 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풍경이 그 날씨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낮게 뜬 구름들, 검은 모래,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 사이로 흘러가는 도로들. 나에게 주어진 풍경 안에 놓여져 있다 보니 그런 사진이 나온 것 같다. 폭포를 좋아해 폭포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찍는데, 이 작업에서도 그랬다. 이유를 명확히 알긴 어렵지만, 폭포가 지닌 에너지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폭포 사진을 가까이서 보면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의도한 것인가? _(하라, 21세)
모든 사물이 그러하지만 폭포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가 무척 다르다. 굉음과 함께 떨어지며 부숴진 물의 입자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워지고 추상적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색, 구도, 형태 등 당신이 프레임 안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미적 영역은 무엇인가? _(안승우, 31세)
빛과 에너지.
사진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다는 말을 한다. 인생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갖다붙이지 않아도 경험, 태도로 갈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사진 안에서 믿는 것은 무엇인가? _(MIN (가명), 30대)
사진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매일 카메라를 손에 쥐고 시간을 보내니 내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일까, 싶은 순박한 고민이다. 여전히 답을 내릴 순 없지만 그저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영역의 것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어리숙한 생각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카메라를 쥔 사람의 정서나 생각들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피사체의 표면이 아니라 갖고 있는 에너지를 담는다는 생각으로 이어가고 있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_(Keem (가명), 25세)
사진뿐만 아니라 좋은 작업은, 그 작업 앞에 마주 서는 순간 그 작품이 원래 속한 시간과 공간이나 또는 표현하고 싶었던 세계로 이동시키는 게이트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beyond image’ 라는 말은 그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하루에도 문득 아득한 영원성을 품게 만드는 것.
상업 사진을 찍을 때와 개인 작업을 할 때, 사진가로서 어떤 차이가 있나? _(김의겸, 39세)
커머셜한 작가로서는 최대한 클라이언트나 기획자의 의도와 니즈를 맞추되 적절한 변형을 시도하는 게 마땅한 태도일 것이다. 좀 더 어릴 때는 그게 잘 안 되어서 내 주장을 강하게 하기도 했지만.(웃음) 점점 결과에 대한 책임을 막중하게 느낀다. 반면 개인 작업을 할 땐 정말 머릿속을 무의 상태로 비우고 찍는다. 이미지를 만드는 게 업이지만 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사진을 볼 때 제일 첫 번째 관객은 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자기가 찍은 걸 반복해서 보기에 프레시한 시각을 갖기 어렵다. 항상 가장 프레시한 눈으로 이미지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당신의 사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Silence.

«바자전: Holi-Day, 세 개의 렌즈» 목정욱 섹션 전경.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낯선 장소에서 사진가의 시선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백세리는 프리랜스 에디터다.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방문할 때면 우연한 만남을 염두에 둬 질문 한두 가지를 미리 품고 가는 편이다.
Credit
- 글/ 안서경(신선혜,목정욱),백세리(제임스 해리스)
- 사진/ 각 사진가,오준섭(전시 공간)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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