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작 〈운디네〉가 깊은 물속으로 차츰 가라앉아 자신의 근원조차 상실하는 사랑의 속성을 말했다면 신작 〈어파이어〉는 자기 자신에 갇혀 있던 어느 오만한 예술가의 마음을 순식간에 전소시킨 불꽃 같은 욕망과 그 후의 폐허를 담았다. 성공한 젊은 작가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발트해를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나디야(파울러 베어)에 매료된다. 뜨겁고 건조한 숲속 별장에 모인 이들은 산불이라는 뜻밖의 자연재해를 맞이하고 그 안에 고립된 채 시기, 질투, 욕망, 분노 같은 뜨거운 감정의 불길에 휩싸인다. 마침내 반쯤 타고 남은 건 후회에 젖은 미성숙한 한 남자, 실은 자기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자 작가 자신이다. 전작보다 가볍고 그만큼 더 신선하다. 당신이 꼽는 페촐트의 최고작이 무엇이든 그의 영화 중 가장 유머러스한 작품임은 분명할 것. 제37회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