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강력계 여성 형사, 박미옥의 이야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최초의 강력계 여성 형사, 박미옥의 이야기

그에게 형사의 일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상영 BY 한상영 2023.08.07
 
 
한쪽 표정을 계속 살피던데.  
경찰 생활을 몇 년 하다 형사가 되기 직전 구안와사를 앓았다. 1998년 신창원 수사를 마치고 나서 재발하더라. 사진을 찍으면 유독 티가 나는 것 같다. 큰 사건을 끝내고 나면 크게 아프곤 했다. 한번은 살인사건 범인을 잡고 집에 가는 길에 봉와직염에 걸린 적도 있다. 체력을 다 쓰는지 모를 정도로 우직하게 일하는 편이었다.
최근 출간한 수필집 〈형사 박미옥〉은 제목처럼 30여 년간 경찰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로서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만삭 의사 부인 살해사건, 신창원 탈옥사건, 유영철 연쇄살인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아온 당신의 오롯한 현장 경험이 담겨있다.
사건이 송치되면 끝이라 생각하려 했고, 소주 한잔 먹고 털어버리면서 살아왔다. 퇴직 후 아득히 지난 시간이라 여겼는데, 집필을 결심하고 5개월간 30여 년을 돌아보니 모든 게 또렷하게 기억이 나더라. 글을 쓰며 울기도 하고, 타인의 아픔을 또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 차마 쓰길 포기한 이야기도 있다. 내 안에 내상이 남아있었나 보다. 힘들 때마다 책으로 위안을 받아온 만큼, 내 이야기를 하고자 용기를 내게 되었다.
어떤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나?
형사의 일은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거나 가족에게 구구절절 말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삶과 죽음, 욕망과 슬픔이 버글거리는 현장에서 벗어나 마음을 다독여준 매개체가 책이다. 의자에 앉아 쓰레기통 비우는 심정으로 글을 읽는 거다. 형법이나 수사 관련 책 이외에 가장 자주 보던 책은 〈니체의 말〉이다. “정신의 태만이 신념을 만든다”는 말을 특히 새겨왔다. 아무리 옳은 듯 보이는 주장도 매일 몸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듯 조금씩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가 와닿았다.
책을 읽다 보니 가해자와 범죄자를 절대악으로 재단하던 생각이 흐려지더라. 도박범에게서 이웃집 아주머니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거나, 피해자와 합의한 스토킹 범죄자가 취업을 걱정하는 모습 등 죄와 벌 속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건 형사들만이 겪는 특수한 경험 중 하나일 거다.
첫 출동 현장이 여성 전용 사우나였다. 여성 형사가 없던 시절, 사우나는 도박꾼들이 경찰 눈을 피해 판을 벌이기 가장 좋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도박판 운영자들을 검거했다. 열아홉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순경 채용 시험을 치고, 강력계에 지원하면서 현장에서 예측할 수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고단수의 도박꾼 아줌마가 얼마나 나를 어린아이 취급했겠나. 뒷골목의 조폭들과 대면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일을 제대로, 잘하고 싶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대하는 정공법밖에 없었다. 나는 늘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은 사람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곳이므로. 피해자 앞에서 공감하고 눈물짓다가 막상 가해자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피해자가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진술의 이면을 상상하고, 팩트를 파악하고, 법률적으로 일의 순서를 정리하는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형사는 내 정답과 확신을 고집하며 안달복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함으로써 알지 못했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다그치면 마음이 닫히지만 질문하면 열린다”라는 주장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형사의 심문이 진술자와의 유대, 라포를 형성하기 위한 연기라고 여기기도 한다. 형사 박미옥에게 현장에서의 대화는 어떤 의미였나?
대화의 물꼬를 어떻게 틀지부터가 고민의 시작이다. 자연스레 그 사람의 삶에 쑥 들어가 얘기하자고 문을 두드려야 했다. 내가 내 식대로 판단하는 순간 대화는 그만큼만 이뤄진다. 피해자도 범인도 당연히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 설득도 진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혼자 고고하게 판단하려 들면,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누가 무얼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함과 진심이 최고의 무기인 이유다.
드라마 〈시그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히트〉부터 영화 〈조폭 마누라〉 〈감시자들〉까지 수많은 형사물의 모티프가 되어왔다. 내게도 형사라는 직업은 영화 〈살인의 추억〉 속 1980년대 고압적 형사의 이미지와 〈시그널〉 속 의로운 형사의 모습 사이 어딘가에 있다.
자문을 요청받을 때마다 감독들에게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다는 얘기를 한다. 검사가 총을 차고 현장 수사를 하거나,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연루자들이 유치장에 갇히는 장면처럼 현실과 괴리 있는 설정을 보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만 보고 최대한 돕고자 한다. 〈시그널〉은 특히 미제 사건 해결에 대한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 재현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과거가 떠오를 때 느낌이 복잡미묘하다. 〈시그널〉은 함께 근무했던 프로파일러 후배가 보조작가로 참여한 작품인데, 에피소드 중 ‘흐르는 눈물을 보고 사체가 옮겨졌다’고 판단한 장면이 있다. 우리 팀 막내의 수사로 밝혀진 사건인데, 법의학 증거에 의해서 눈물이 마르는 시간과 피가 마르는 시간을 대조해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다. 또, 배우의 연기를 보고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김소진 배우가 칼을 맞은 뒤 범인의 수갑을 채우기 직전, 바짝 마른 입을 다시는 장면에 무척 공감했다. 간혹 잘 만들어진 미행 신 등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즉각 경찰 채용 시험을 친 계기는 무엇인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꿈꿔왔다. 7남매 중 막내로 바닷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세상은 어떤 걸까’, ‘죽음은 무엇일까’처럼 조숙하고 철학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가족에게 신세를 지고 대학에 가는 것보단 바로 현장에 가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경찰이었다.
최초의 강력계 여성 형사였기에 감당해야 할 무게도 남달랐을 것 같다.
멸시나 차별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단지 ‘최초’라는 수식은 외부에서 정해준 말이니 개의치 않고 현재진행형인 일에만 몰두하려 했다. 초기엔 워낙 여성 형사 자체가 없었기에 미행 같은 위장 수사에 투입되다가, 점점 경력을 쌓을수록 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아동 혹은 친족 성폭행, 보육원 아동학대사건처럼 세분화된 사건들을 맡아갔고, 차곡차곡 사건을 맡다보니 어느 순간 성별로 구분 짓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살아남을까?”에서 “좀 하네, 그래도 언제까지 할지 두고보자”로, 그 다음엔 “저 친구에게 맡겨야 하나?”가 되고, 결국엔 “네가 이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가 된 거다.
스토킹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부터 수사해왔고,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불법 촬영이나 각종 온라인 범죄 등 범죄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절망감이 들진 않았나?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막연한 불안, 실체 없는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지만 모두가 감히 두려움에 직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어떤 소신 때문에 그런 마음 가짐을 갖게 된 게 아니라,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어 그렇게 됐다. 상담하다 보면 피해자가 두려워도 굳은 심지로 이야기할 때 형사도 믿고 피해자 편에서 수사를 하게 된다. 피해자가 무너지면 형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불안이 존재하기에 이를 막으려는 의무도 같이 생겨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재킷은 Neu_in. 셔츠는 Massimo Dutti. 팬츠는 Cos. 이어커프는 Prada. 아이웨어는 Highc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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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기를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인가?  
항상 현장이 두려웠다. 범인을 차에 태우고도 발을 달달 떤 적도 있다. 그렇지만 궁극에는 그 두려움에 직면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은 나를 키우고 인생을 배우는 수업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형사는 24시간 휴대폰을 켜놓고 연락을 받게 되는데, 어떨 때는 삶을 포기하려는 이와 통화를 나누기도 한다. 누군가의 절망의 순간에 내가 두려워할 순 없는 일이니까.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큰 사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강력 사건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로도 활동했다. 형사 17년 차인 2007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행동분석(프로파일링)팀장 겸 화재감식팀장을 맡았다. 지금은 방송에서 프로파일러를 흔히 볼 수 있는 시대지만, 당시 어떤 차이가 있었나?
이제 한국의 프로파일링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당시만 해도 1기, 2기 프로파일러들이 뽑힐 때였다. 프로파일링은 형사소송법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직접적 증거가 아닌 법의학에 바탕한 가설과 심리적 추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사건 해결을 위해선 프로파일러와 현장 수사본부의 긴밀한 연결이 중요했다. 학문의 영역과 두 발로 발품을 찾는 감각이 합해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팀장을 맡던 시기에는 현장감식반과 프로파일러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토론회를 자주 열었다. 어딜 가든 자기 시선과 경험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시선이 폭넓은 사람이 있는 법인데 그래도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더라. 아무리 뛰어난 프로파일러의 추론도 현장의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과학적 통계가 객관적 사실이 될 수 있도록 애쓰는 형사들의 노력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양천경찰서 최초의 마약수사팀장, 강남경찰서 여성 강력계장 등 당신이 일찍이 형사로서 많은 업적을 이룬 비결은 강직함 때문인 것 같다.
매뉴얼을 새롭게 만드는 일을 두려워하진 않았던 것 같다. 법은 불변의 영역이 아니라 연구하고 집행될 때 길이 열릴 수 있는 분야라는 걸 현장에서 배웠다. 형사의 업무는 수사권을 지키는 일과도 연관이 있다. 한번은 한 종교 단체에 헬기가 떨어진 사건이 발생했는데, 통상적으로는 항공조사위원회에서 처리를 하도록 수사를 넘겨주면 끝이 날 일이었다. 이때 집요하게 항공법을 살펴본 다음 사고 예방은 조사위원회에서 진행할지 몰라도 과실치사와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일은 형사의 일이라 주장할 수 있었다. 이후에 경비행기 사고 등이 발생할 때 선례에 따라 경찰의 영역이 커졌다.
성선설을 믿나?
선과 악, 어느 방향으로 보고 싶은지는 시선의 문제다. 본디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방향대로 살아간다. 그게 습관과 태도가 된다고 생각한다.
19살 미옥의 꿈은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형사를 퇴직한 지금, 박미옥의 꿈은 무엇인가?
전문가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변수를 맞닥뜨리며 살아왔다. 내 신분을 밝히는 순간, 사람들은 형사에 대한 편견이나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그럼에도 그토록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건 악을 쫓기 위한 정의감이 아니라,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이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해왔는지 세상에 펼쳐놓았으니, 인간 박미옥으로 어떤 좋은 질문을 남기고 갈지 고민해야할 것 같다. 제주에 내려와 집을 짓고 작은 책방을 가꾸고 있다. 앞으로의 일은 현장 밖의 사람들을 위안하는 일과 연관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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