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D.P.〉 시즌 2가 공개된다. 2년 만이다. 최종 편집까지 마무리하고 대중의 반응을 기다리는 지금의 마음 상태는 어떤가?
긴장되는 건 매한가지지만 시즌 2라서 더하다. 〈D.P.〉의 배우, 스태프, 플랫폼 모두 그 사이 각자 다른 종류의 성취와 성과를 일궈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2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이 분야도 참 냉혹하지 않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전보다 더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사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부담과 열정이 공존하는 신기한 현장이었다.
말한 대로 배우와 주요 스태프, 플랫폼까지 전작과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매우 드문 일인데. 총지휘하는 감독에겐 일종의 자부심 아닌가.
나 때문이라기보단 시즌 1을 통해 모두가 즐거움과 성취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때를 기다려주고 기꺼이 시간을 맞춰 주면서까지 이 이야기의 매듭을 잘 짓고 싶어했다. 특히 안준호 역할의 배우 정해인 씨가 시즌 2가 나오는 데 있어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게 과정이지 않나. 정해인 씨가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애정을 갖고 반드시 이 팀으로 다시 뭉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서 나 역시 많이 배웠다.
지난 2년간 〈D.P.〉에 출연한 배우들을 여럿 인터뷰하면서 궁금했다. 다들 〈D.P.〉 얘기만 나오면 눈빛을 반짝이며 진심 어린 애정을 표하더라. 다른 현장과 무엇이 달랐던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배우도 수많은 작품 중에서 굳이 이 작품을 고르는, 일종의 투자를 한 셈 아닌가. 그렇게 배우들을 설득하고 소위 ‘꼬셔서’ 데리고 왔으면 이 작품을 찍는 몇 달만큼은 그들이 제일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끔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일정 속에서도 이 배우가 이 장면을 이 회차에 촬영하는 게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걸까? 그 점을 현장에서 굉장히 신경 쓴다. 고맙게도 프로덕션에서 잘 조율해줬다. 최소한 다른 작품에서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준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이번 현장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고 특수 효과가 나고 말도 안 되는 종류의 동력을 써서 만든 거대한 장면도 좋지만 나는 ‘어? 이 배우가 이 표정을 하네, 이 얼굴을 하네’를 발견하는 순간을 더 좋아한다. 시즌 2의 마지막회에도 그런 종류의 얼굴들이 나온다.
시즌 1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안준호가 터덜터덜 연병장으로 걸어가면서 극이 마무리된다. 시즌 2는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인가?
바로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설정상의 날짜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감정선도 그대로 연결된다.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안준호란 인물이 어떻게 성장해나가는가가 나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 작품엔 매력적인 인물이 참 많고, 주·조연부터 단역까지 가릴 것 없이 모두 자신의 인장을 남겨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준호의 성장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그러므로 보는 이들도 안준호의 뒷모습을 계속 따라가주었으면 좋겠다.
한동안 단순히 1편이 성공했기 때문에 2편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가 왜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나?
영화는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즌 1을 그렇게 끝맺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시즌 1에서 던진 질문에 대해서 시즌 2가 당연히 어떤 답을 제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조금 더 다양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이 남아있다면, 그 질문이 유의미하다면 시즌 2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즌 1이 던진 질문이 “우리도 방관자이지 않았을까?”였다면 시즌 2는 무엇인가?
“우리도 방관자이지 않았을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질문을 이어가고 싶었다. “방관자였을 수도 있는데 그럼 그걸로 끝인가?”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2019년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요”라는 〈뺑반〉의 대사를 가지고 긴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차이나 타운〉 〈뺑반〉 〈D.P.〉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닮아있다.
나도 같은 결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감독, 연출가, 작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종류의 화두를 꺼낼 순 없다. 나 역시 영화나 드라마 작업 방식에 모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고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믿나? 그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묻는 사람들, 때론 답답하기도 하고 왜 사서 일을 만들지 싶기도 한 사람들. 그런데 결국 그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변한다고 믿는다. 〈D.P.〉를 쓰면서 안준호 역시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시즌 1 포스터에서 안준호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의미다. 무엇보다 나는 그런 안준호가 타자화, 대상화되지 않기를 바랐다. 작품을 보는 이들이 ‘에이, 저런 사람이 어디 있어’가 아니라 ‘누구나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안준호가 대단한 정의감에 사로잡힌 인물은 아니지 않나.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십대 청년이라서 그의 질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법을 배우면 늘 나오는 얘기가 있지 않나. 무릇 주인공은 강력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만드는 인물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를 구할 거야, 무언가를 이뤄낼 거야 같은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자신의 일상이 잘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최소한의 것들, 납득이 안 되는 무언가에 대해 질문던지는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도 내면에 아무 데미지가 없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때론 좋아하는 누군가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정반대편에 설 때도 있다. 목표가 같더라도 입장이 달라서 부딪히기도 한다. 스펙터클이나 서스펜스 같은 장르적 재미도 좋지만 결국은 그 관계성에 대한 얘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르나 그림은 거들 뿐이다.
〈D.P.〉의 배경인 2014년은 군대 내 폭력 문제가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때다. 육군 제28사단에서 후임병을 구타해 숨지게 한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제22사단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가 무장 탈영한 임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이후 군 인권 문제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23년인 지금 이 작품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나?
지금도 사건 사고는 늘 벌어진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캠페인이나 르포는 아니니까. 경각심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그저 계속 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니까. 또, 객관적인 지표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진 구석이 있다면 그건 안준호 같은 인물들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사람에 대한 믿음. 물론 그러려면 믿을 만한 사람을 잘 알아보는 눈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자긍심. 사실 어떤 작업을 끝내고 그 성취를 마주하는 순간은 매우 짧다. 인터뷰나 영화제, 무대 인사…. 대부분의 시간은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혼자 글을 쓴다. 그러다가 촬영장에 가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요는, 어떤 성취만 바라고 이 일을 하면 너무 힘들다는 얘기다. 결과가 어떻든 업의 일부로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엇보다 혼자든 누군가와 같이 작업할 때든 긍정적인 의미의 자긍심과 성실하고자 애쓰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D.P.〉에선 군대 내 폭력을, 〈약한 영웅〉에선 학교 내 폭력을 다뤘다. 궁극적으론 둘 다 한국 사회의 남성 중심 조직에서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말하는 작품들이다. 혹자들은 이를 일컬어 한준희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스타일이라고 칭하기엔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다만 그런 결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남성 조직이나 한국 사회라기보다는 시스템 안에서의 개인을 들여다보는 것 말이다. 앞서 말했듯 안준호라는 인물을 만들었던 이유도 그렇고. 이 일을 하면서 좋은 건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재미를 느낄 뿐이다. 나는 그저 재미있는 영화를 재미 삼아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D.P.〉는 디피가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 회씩 다루면서 동시에 메인 플롯이 전체 회차를 관통하는, 그야말로 연속극에 적합한 이야기다. 반대로 극장용 영화에 적합한 이야기도 따로 있는 법이다. 극장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나?
말한 대로 영화를 늘린다고 시리즈가 되는 게 아니고 시리즈를 압축한다고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을 컴컴한 극장에 가둬 놓고서 2시간 동안 강제로 보게 하는 데 적합한 방식의 이야기는 분명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극장이 어려운 시기이지 않나. 데이비드 핀처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대답하더라. “나도 너무 영화를 만들고 싶긴 한데, 어차피 사람들은 〈세븐〉도 비디오로 더 많이 봤어”라고. 그 말을 듣고 아, 핀처 같은 사람도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더라.
유언비어 같긴 한데 말년의 이마무라 쇼헤이가 〈우나기〉를 찍는 동안 몸이 너무 힘들어서 거의 앉아서 “액션” 하고 다시 주무시고 그러면 옆에서 놀라서 깨우고 그랬다던데 그게 참 멋있더라. 대가가 노인이 되어서도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다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