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는 본래 액상의 지방 형태로 모공 밖으로 원활하게 빠져나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공 속에서 딱딱해진 상태가 되면 정상적인 피지의 흐름을 막고 피부 트러블을 일으킨다. 그런 피지를 리퀴드 상태로 유지한다? 넓은 모공, 더러운 블랙헤드, 좁쌀여드름, 화농성 트러블까지. 많은 피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흥미진진한 얘기다. 지금껏 없던 신개념이라 궁금해진다. 새로운 피부 관리 방법의 등장일까? 단순한 마케팅일까?
“피지에 존재하는 지방 성분인 스쿠알렌은 공기와 만나면 산화되고 그 상태로 계속 쌓이면 단단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블랙헤드로 변해 모공을 넓히고 도드라지죠. 피지가 굳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이라니 나쁘지 않네요.” 보스피부과 전문의 김홍석은 피지의 조성을 부드럽게 바꾸는 방식이 제품에 적용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제품에 덧붙은 설명처럼 피지를 원래의 액상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피지를 녹이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아직 부족하다고 덧붙인다. 에코유어스킨 에스테티션 진산호도 같은 의견. “피지가 딱딱해지기 전에 관리한다는 개념은 좋지만 피지를 액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pH 밸런스, 유·수분 밸런스 등 많은 요소들이 딱 맞아떨어져야 하고 날씨와 온도 등 외부 환경도 신경 써야 하죠. 모공 안에서 원래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표면에 가까워지면 굳을 확률이 커요.”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피지를 액상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지를 부드럽게 만들어 배출을 돕고 모공이 넓어지는 불상사는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품들엔 어떤 성분이 들어 있을까? 시중에 잘 알려진 몇 가지 제품의 성분들을 따져보니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바로 산과 지질. “제가 만약 피지 녹이는 제품을 만든다고 하면 살리실산, AHA, BHA 중에 한 가지는 꼭 넣을 거예요. 유분과 친화력이 좋아 물리적인 자극 없이 피지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르테 바이 혜정 에스테티션 박혜정의 대답. 실제 피지를 녹인다는 제품에는 살리실산 유도체인 LHA, 피부 표피에만 작용해 민감성 피부에게 추천하는 PHA 등이 함유되어 있다. 산 성분이 든 제품을 사용하면 모공에 쌓인 각질도 녹일 수 있어 트러블 예방에 효과적이다. 각질 제거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대부분의 성분은 피지를 녹인다. 다만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이상 반응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제품에는 자극을 줄이는 위치하젤추출물, 병풀추출물, 카렌듈라 등 진정 성분과 히알루론산 같은 보습 성분이 추가로 함유되어 있었다.
피부 지질이나 피지의 구성 성분을 함유한 제품도 눈에 띈다. 이런 성분은 피지와 자연스럽게 섞이며 단단한 피지를 부드럽게 만든다. 피부 본연의 성분인 스쿠알렌, 피토스테롤, 베타글루칸과 피지 구성 성분인 지방산, 콜레스테롤, 트리글리세라이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사 지질 성분을 함유한 제품은 무너진 유·수분 밸런스를 맞추고 단단한 피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피지는 35~36℃에서 리퀴드 타입으로 존재하므로 제품을 바르고 손으로 여러 번 롤링하면 체온이 더해져 효과적이다. 주의할 점은 제품 양을 너무 과하게 사용하면 모공을 막아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에스테틱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제품을 바르고 마사지로 피지를 충분히 녹인 다음 흡수시키지 않고 닦아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피부에 지질과 유사한 성분을 바르면 우리 피부는 피지가 적당히 분비되었다고 착각해 피지 생성을 줄인다. 과분비되는 피지 조절도 가능하다는 얘기. 그럼 어떤 제품이 더 효과적일까?
명쾌한 답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본인의 피부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마다 피부 민감도와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처방도 달라진다. 피지가 크고 딱딱하게 굳어 모공을 꽉 막고 있다면 산 성분을 함유한 제품을 바르는 방법이 효과적. 좁쌀여드름처럼 넓은 부위에 퍼져 있는 상태라면 피부 지질 유사 성분이 든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한 두 번 바르는 것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으니 꾸준하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광고에 혹해서 무조건 제품을 구입하기보다 현재 내 피부 상태에 맞는 제품을 선택할 것.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사용하면서 내게 맞는 정답지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피부 관리도 공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