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헤윰, 색면이 춤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배헤윰, 색면이 춤춘다

배헤윰은 프리즈 서울 솔로쇼에서 ‘잠금 해제’와 ‘스코어링’이라는 감각에 기반한 색면 추상회화 여러 점을 선보였다. 야심찬 그의 작업이 실은 세상과 삶을 향해 작가가 던지는 신실한 질문임을 발견한다. 예술가의 순수한 물음이 경쾌한 색으로 춤을 추듯 나에게 와닿았다.

손안나 BY 손안나 2022.10.08
프리즈 서울 ‘포커스 아시아’에서 선보인 당신의 솔로쇼는 회화에 대한 지난 4년간의 연구가 담긴 총체적 결과물이었다.
나는 이 시대에 회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고찰하고 진지하게 그 의미를 탐구해온 사람이다. ‘회화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회화를 통해 생각의 흐름이나 진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는 나의 오랜 궁금증이었다. 최근에 이 질문이 ‘잠금해제’와 ‘스코어링’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수렴했다. 
 
Hejum Bä, 〈Score Pool II〉, 2022, Oil on canvas, 162.2x227.3x4.5cm.

Hejum Bä, 〈Score Pool II〉, 2022, Oil on canvas, 162.2x227.3x4.5cm.

‘잠금해제’는 우리가 매일 모바일 기기에서 만나는 단어다. 기기의 잠금 상태를 해제하고 알고리즘의 세상에 접속하는 일상이 추상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나?
나는 회화를 육안으로 보는 게 너무나도 절실한 행위라고 믿는다. 어딘가로 직접 가서 작품을 독대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고 있달까.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도 피카소 같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에 대한 감흥을 공유하고자 하는 공감대가 있지 않았나. 앞으로는 그런 경험이 더욱 희귀해질 것이다. 예전처럼 국외로 이동하기 어려워졌고 많은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회화를 육안으로 보고 대면하는 상황이 당연하지 않아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다시 말해 회화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침잠하는 감각적 경험이 다른 차원에 진입하고 몰입하려는 우리의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잠금해제를 하고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잠금해제를 통한 미디어적 전환은 특히 동시대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익숙한 감각이지 않나. 이를테면 내가 살던 독일만 해도 기기에 대한 친밀도가 한국과 양상이 다르다. 디지털과 회화는 서로 배척하고 대치하는 갈등적인 관계가 아니다. 디지털의 발전이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보니 오히려 회화가 가진 한계점이 흥미롭다.
‘스코어링’은 게임이나 스포츠의 점수 체계를 의미하지만 회화로서 가치가 발생하는 예술적 순간을 은유한다.
나는 ‘스코어’를 ‘의미’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스코어링’은 ‘의미를 따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예를 들면 대화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위해선 의미를 찾아야 하고 따라가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미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건 추상회화에선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추상회화는 언뜻 소통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로스코의 회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추상회화 양식을 통해 화가로서 내가 어떤 의미를 ‘따낼’ 수 있을까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궁금했다. ‘스코어링’ 그러니까 ‘의미를 따내는 일’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어떤 양상인지. 내가 별로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작업을 통해서 묻고 싶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당신의 삶의 의미는 어디서 오는가? 
 
Hejum Bä, 〈Unlockee II〉, 2022, Oil on canvas, 145.5x162.2x4cm.

Hejum Bä, 〈Unlockee II〉, 2022, Oil on canvas, 145.5x162.2x4cm.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자신만의 ‘스코어링’을 감각한 적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에 호기심을 느낀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체득한 노하우, 매뉴얼. 그들이 왜 자신의 일에 매여 사는지 알고 싶고 대화하고 싶다.
질문의 실마리를 찾았나?
이번 프리즈에서 들었던 “힘이 있다” “단단하다”는 평이 인상 깊었다. 내 작업에 색이 많은데 이것을 단순히 화려하다거나 장식적으로 보지 않고 ‘저 색이 힘이 있다’라고 느낀다는 건 굉장히 성숙한 시각이다. 액면 너머의 무언가를 자체적으로 느끼고 “계속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결국에는 내가 궁금했던 ‘작업을 통한 암묵적인 소통이 가능할까?’라는 가설이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고 믿는다.
  
Hejum Bä, 〈Yet Labelled Symptom〉, 2022, Oil on canvas, 130.3x89.5x4cm.

Hejum Bä, 〈Yet Labelled Symptom〉, 2022, Oil on canvas, 130.3x89.5x4cm.

당신에게 예술은 문맹의 상태를 상정하는 장이다. 당신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지식, 상식, 철학 체계와는 다른 회화만의 모호함, 미스터리에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미지의 장이 회화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평평한 캔버스가 엄정하고 진실하다고 느낀다. 그 상태를 유지해야만 할 것 같은 팽팽함, 쉽게 말해 ‘얄짤없는’ 상태에서도 작가는 백지 앞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또한 회화는 가상의 이미지다. 주전자 하나를 그리더라도 대상과 나는 거리감을 가지며 현존하지만 현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결국 ‘잠금해제’와도 이어지는 개념인데 내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면 4차원의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4차원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거기에 몰입하고 환상의 세계를 상상해냈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관계성이 회화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 
 
Hejum Bä, 〈Launch〉, 2022, Oil on canvas, 128.5x227.3x3cm.

Hejum Bä, 〈Launch〉, 2022, Oil on canvas, 128.5x227.3x3cm.

당신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운동성은 의외의 색이 만나서 느껴지는 시너지이기도 하다. 어떤 기준으로 색을 고르나? 치밀하게 계산해서 배합하나? 혹은 우연에 맡겨 무작위로 짚나?
어떤 철칙에 따라 움직인다기보다 관계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바둑을 둘 때도 주변 돌들의 위치를 고려하여 수를 두고 그렇게 세력이 만들어지고 집을 짓지 않나. 나도 그렇다. 나는 맥락이라는 말이 중요한 사람이고 살아가며 무엇이 어떤 맥락에 놓이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하려고 애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색이든 조형이든 나의 작업은 관계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선배 작가님이 해준 코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원색에 가까운 여러 색이 한 화면에 있는데도 그게 어떤 갈등으로 보이거나 부딪혀서 눈이 아프지 않고 고유한 균형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지점을 지향한다.  뜨거우리만치 갈등적이지 않고 약간은 서늘하고 공기가 통할 것 같은 색의 조합. 
 
Hejum Bä, 〈Resolute Tracker〉, 2022, Oil on canvas, 162.2x145.5x3cm.

Hejum Bä, 〈Resolute Tracker〉, 2022, Oil on canvas, 162.2x145.5x3cm.

색면 추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로스코나 말레비치 같은 엄중한 작업을 떠올린다. 반면 당신의 작업은 춤을 추듯 경쾌하고 진지하되 무겁지 않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진지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자랐다. 하지만 진지하다고 우울한 건 아니다. 조용하지만 무게를 잡는 편도 아니다. 미술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거기에 자기의 성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진지하고 조용한 아이였지만 그림을 보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밝은 내면을 마주하곤 한다. 나의 그림에서 보이는 단단한 경쾌함을 앞으로도 잘 키워나가고 싶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선보인 첫 개인전 «Circle to Oval»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구상회화를 작업했다. 회화 안에서 크든 작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그동안 당신의 세계관이 어떻게 발전해왔다고 생각하나?
초반엔 드로잉이 나의 미디엄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루비아다방 때만 해도 그림에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구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이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독해가 쉬웠다. 색도 지금에 비하면 모노톤에 가까웠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던지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어떤 분들은 그때 작업이 본인에게 더 다가왔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그때 작업과 요즘 작업의 강한 대비에 놀라기도 한다. 나는 그리는 사람이고 다양한 양식과 다양한 관점에서 회화를 창작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크다. 새로운 재료를 쓰든 새로운 구성을 시도하든 실천에 있어서 망칠까봐 두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오히려 어떤 나사가 빠졌을 때 기계 작동이 멈추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게 흥미롭달까.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한 것처럼 직업인들의 전문성과 매뉴얼, 세상이 돌아가는 생리에 관심을 갖는 것일 테다.
요즘 당신의 화두는?
‘작업을 끊임없이 할 수 있을까?’라는 것. 나이가 들거나 생활이 달라져도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루이즈 부르주아처럼. 작가적 커리어나 작업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풍요로웠는가. 예술을 한다고 자신을 갉아먹지 않고 건강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작업을 지켜나갈 수 있는가. 나에겐 중요한 질문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자주 하는 얘기다. 예술계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지 않나. 살아가며 나름대로의 적응과 노하우를 잘 쌓아서 예민함이 독이 되지 않는 그런 사례로 남고 싶다. 아주 예민하거나 사회적이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평정심을 잘 유지하며 작업하고 싶다. 세상을 등지지 않고 사회에서 나의 역할을 수행하고 발언하고 존재감을 발휘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달까. 그렇기에 지금의 인터뷰도 마음을 다해 임하는 것일 테다.
프리즈 서울이라는 축제가 막을 내렸고, 당신의 야심찬 솔로쇼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텅 빈 작업실에서 무엇을 해나갈 예정인가?
회화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싶다. 회화는 언제나 나의 구심점이니까.
   
Hejum Bä, 〈Target Chill〉, 2022, Oil on canvas, 227.3x181.8x4cm.

Hejum Bä, 〈Target Chill〉, 2022, Oil on canvas, 227.3x181.8x4cm.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회화란 이미지와 사유를 연결하는 2차원 너머의 또 다른 세계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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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손안나
    사진/ 맹민화(인물), 휘슬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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