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녀는 왜 괴로울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차녀는 왜 괴로울까?

이제 막 마이크가 쥐어진 ‘K-차녀’의 세계.

BAZAAR BY BAZAAR 2022.08.11
 
집안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1980년대 초반에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첫째 언니와는 10살 차이. 부모님은 40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나를 낳았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아들로 오인당해 우연히 세상에 나온 딸이다. 이런 사정은 너무 흔해서 놀랄 만한 것도 아니다. 친구들끼리 서로의 포지션을 확인할 때 대동단결을 이루는 위치는 ‘K-장녀’였다. 경상도 출신 부모님 혹은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거나 귀한 남동생이 있다면 완벽했다. 우리 집 큰언니는 장녀이지만 막내 남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K-장녀’의 특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역시 개인 차이군, 하다가도 오히려 차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림처럼 그린 듯한 캐릭터가 나왔다. 둘째 언니는 자식을 대학에 보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둘째의 서운함을 토로한다. 집에 남자 자식이 있든 없는 차녀의 넋과 한에는 공통 정서가 있었다. 서러움.
〈차녀 힙합〉의 저자 이진송은 자칭 전국둘째연합 회장이다. 3녀 1남 중 둘째이며 연년생 언니를 둔 막내로 살다 끝내 여동생과 남동생을 둔 둘째가 되었다. 자라는 동안 “내 성격이 이상한 걸까? 우리 집이 유별난 걸까?” 사소하다 못해 치사하게 느껴지는 서러움의 근원이 과연 차녀라는 위치 때문인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힙합 전사처럼 마이크를 쥐고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왜 자신의 돌 사진만 없는지, 항상 새 물건은 첫째와 막내 차지인지. 항상 우선순위가 아니거나 덜 중요한 취급을 받았던 순간을 복기한다.
이 모든 것이 저자의 개인적인 넋두리라면 ‘K-차녀’라는 장르는 성립되지 않는다. 호랑이 띠 여자는 기가 세다는 민속 신앙부터 정부의 인구 조절 정책, 초음파 기계의 도입으로 성별을 가늠하게 되면서 행해진 여아 낙태 등 사회 현상과 맞물린 차녀의 시간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다 자란 지금, 가정이라는 정치적 장소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인정을 갈구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끝을 맺는다. 다 읽고 난 후 나는 작은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집으로 책 한 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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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 문학동네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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