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냉정과 열정 사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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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 냉정과 열정 사이

파워풀한 동시대 여성을 대변하는 대체불가의 아이콘. 강인함과 섬세함, 순수와 열정을 넘나드는 배우 송혜교가 일 년 만에 <바자> 카메라 앞에 섰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 너머의 그녀는 여전히 매혹적이고, 변함없이 아름답다.

BAZAAR BY BAZAAR 2022.02.25
 
며칠 뒤면 〈더 글로리〉 촬영을 시작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 작품이 세 가지 측면에서 궁금하더라고요. 첫 번째는 본인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뷔라는 점, 두 번째는 〈태양의 후예〉 이후 김은숙 작가와의 재회라는 점, 세 번째는 이 이야기가 인간의 가장 어둡고 우울한 이면을 그린다는 점 때문이에요. 
아주 예전에 뉴욕에서 〈페티쉬〉라는 스릴러 장르의 독립영화를 찍은 적이 있어요. 그때 빼고는 이렇게 확실한 장르물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 작품이 저의 첫 장르물이자 첫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죠. 다행히 아주 튼튼한 글을 써주시는 김은숙 작가님이 계시고 또 제가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안길호 감독님이 계셔서 큰 의지가 돼요.
송혜교의 복수극이라니, 그동안 본 적 없는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저도 궁금해요. 저는 지금까지 사랑 이야기를 주로 연기해왔잖아요. 작품의 색깔이나 캐릭터 모두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이다 보니 연기하면서 저의 새로운 표정이나 감정 같은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그 점이 기대되더라고요. 적응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요. 흥분도 되고 한편으로는 겁도 나고. 다음 주면 이런 상태로 첫 촬영에 들어가겠네요.(웃음)
 
벨트가 포함된 재킷은 4백만원대, 팬츠는 1백만원대 Fendi.

벨트가 포함된 재킷은 4백만원대, 팬츠는 1백만원대 Fendi.

지금도 첫 촬영을 앞두고 걱정을 하나요?
‘늘 해왔던 거니까 잘할 수 있어.’ 이런 마음으로 작품에 들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이제는 저도 연기 경력이 꽤 오래됐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긴장해요. 저만 늙는 게 아니라 캐릭터도 저와 같이 늙어가니까요. 캐릭터도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졌을 테고, 그 삶까지 오면서 희로애락이 있었겠죠. 그런 면을 제가 잘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외적인 면을 논외로 친다면, 사실 이십 대에 했던 연기를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조금은 쉽지 않을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이미 다 해본 경험들이니까요. 감정의 폭도 확실히 지금보다는 얕죠. 반면 지금 제가 연기해야 하는 나이 대의 인물들은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매 작품마다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 같아요.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항상 그런 질문을 안고 작품에 들어가요.
 
니트 크롭트 톱은 1백만원대, 플리츠 스커트는 1백만원대, ‘펜디 퍼스트’ 스몰 백은 4백만원대 모두 Fendi.

니트 크롭트 톱은 1백만원대, 플리츠 스커트는 1백만원대, ‘펜디 퍼스트’ 스몰 백은 4백만원대 모두 Fendi.

〈더 글로리〉가 본인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기에 어떤 기존의 작품들이 서비스되고 있는지 찾아보고 새삼 놀랐어요. 〈두근두근 내 인생〉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남자친구〉가 있더라고요. 조로증 아이를 둔 엄마, 맹인, 이혼녀를 연기한 건데 “사랑 이야기를 주로 해왔다”고 말했지만 그 안에서 참 다양한 도전을 하셨더군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내부에 있는 쪽이구나 그런 추측도 해보았고요.
예전에는 무조건 대본이었어요. 제가 읽을 때 대본이 술술 넘어가면 하는 거였죠. 여전히 대본이 크긴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중을 따지자면 그래요. 작품이라는 건 저 혼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연출가, 작가, 스태프까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호흡과 박자가 이제는 더 소중해요.
 
벨트가 포함된 코트는 6백만원대, 팬츠는 1백만원대 Fendi.

벨트가 포함된 코트는 6백만원대, 팬츠는 1백만원대 Fendi.

멜로를 잘 소화하는 데에 있어서 배우에게 어떤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많이 하긴 했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큰 동작 하나 없이 오로지 내면의 감정을 꺼내서 전달해야 하는 건데 이게 참 쉽지 않아요. 다만 한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그렇게 삶에서 배운 무언가가 제 연기에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멜로 장인’이잖아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이 해서 늘었나?(웃음)
 
재킷은 4백만원대 Fendi.

재킷은 4백만원대 Fendi.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라는 책에서 사라 베르나르의 챕터를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 있어요. 사라 베르나르는 그 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여성이잖아요. 오늘 화보의 콘셉트와 닮았달까요? 반면 그녀의 라이벌이었던 엘레오노라 두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사색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이고요. 둘 다 최고의 연기자였지만 기질은 전혀 달랐죠. 송혜교라는 배우는 어느 쪽에 가깝나요?
 중간이었는데 이제는 두세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아요. 조용한 장소에서 친한 친구들과 와인 한 잔 마시면서 드문드문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그 대화라는 것도 이야기하다가 침묵하다가 음악도 듣다가 다시 조금 이야기하다가…. 거의 그런 식이에요. 어렸을 때는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어울려 다니는 것을 즐겼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겠더라고요. 주변에 소중한 몇 명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요.
 
지속가능한 연기자를 꿈꾸는 신인들에겐 20년이 넘도록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당신만 한 롤모델이 또 없다더군요.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인간 송혜교로서 지금까지 참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편이에요. 남들이 뭐라 하든, 그때그때 제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면서 인생을 즐기고 살았어요. 그런데 배우 송혜교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때는 뭐랄까. ‘이번엔 로맨틱 코미디를 했으니까 다음에는 멜로를 해야겠다’ 같은 이상한 욕심을 부리면서 작품을 좀 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설사 장르나 캐릭터가 조금 겹치더라도 끊임없이 다양한 연출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보는 게 좋았을 텐데요. 만약 후배들이 제게 조언을 구한다면,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최대한 다양하게 작품을 경험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못했으니까요. 모든 작품이 다 성공할 수는 없어요. 반대로 어떤 작품이든 성공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재지 말걸. 겁내지 말걸. 더 어리고 예뻤을 때 많이 남겨놓을걸. 나이 들고 나니 조금 후회가 되더라고요.
 
니트 톱은 1백만원대 Fendi.

니트 톱은 1백만원대 Fendi.

만약 이십 대 때 작품을 덜 골랐다면 우리는 송혜교표 로맨틱코미디를 더 많이 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드네요. 그런 작품 하지 않은 지 오래됐죠? 
〈풀하우스〉 이후로 안 했으니까요. 그때가 스물네 살이었으니까 한참 됐네요. 절대 피해 다니는건 아니에요.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참 좋아하거든요. 작품을 많이 찾았는데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만나지 못했어요. 이제는 어렸을 때와는 다른 로맨틱코미디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꼭 다시 하고 싶어요.
 
셔츠는 2백만원대, 팬츠는 4백만원대 Fendi.

셔츠는 2백만원대, 팬츠는 4백만원대 Fendi.

한편으로는 놀랍고요.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자부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되겠어요?
당연히 인간에겐 저마다 슬픈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고 그렇잖아요. 모든 사람이 느끼는 그런 희로애락을 저도 잘 느끼고 즐겼던 것 같아서요. 그래서 시간을 잘 보내왔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제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인생 공부가 되었어요.
 
벨트가 포함된 재킷은 4백만원대, 팬츠는 1백만원대, ‘펜디 퍼스트’ 샌들 힐은 2백만원대 모두 Fendi.

벨트가 포함된 재킷은 4백만원대, 팬츠는 1백만원대, ‘펜디 퍼스트’ 샌들 힐은 2백만원대 모두 Fendi.

아까 말한 대로 연기자든 캐릭터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지점이 있잖아요. 사십 대가 되고 나서 본인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면이 있나요? 
의식적으로 달라지려고 노력한 부분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일 문제로 지인과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예전에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속엣말을 다 하고 난 뒤 저도 상처 입고 상대방도 상처 입히고 그랬죠. 이제는 대화를 하다가 상황이 나빠지겠다 싶으면 거기서 딱 멈춰요. 그러고 나서 하루나 이틀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요. 전에는 화해하기 전까지의 그 찝찝한 하루를 참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참아지더라고요. 그게 가장 달라졌어요. 그런데 달라지니까 참 좋네요. 제 감정을 제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 그런 힘이 생겼다는 게 말이에요.
 
니트 드레스는 가격 미정 Fendi.

니트 드레스는 가격 미정 Fendi.

누구에게 어떤 칭찬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한가요?
행복하다기보다… 저는 누가 칭찬을 하면 자리를 피하는 편이에요. 직업이 배우이다 보니까 그런 소리를 여기저기서 많이 듣잖아요. 들을 때마다 감사하지만 또 들을 때마다 쑥스러워요. 예를 들면 촬영을 하다가도 으레 “너무 예뻐요.” 하시면 ‘아하하’ 웃고 빨리 도망가요.
 
니트 드레스는 가격 미정, 손에 쥔 ‘펜디그라피’ 나노 백은 2백만원대 Fendi.

니트 드레스는 가격 미정, 손에 쥔 ‘펜디그라피’ 나노 백은 2백만원대 Fendi.

그래서 아까도 모니터를 보다가 웃으면서 스르륵 사라졌군요.(웃음) 
어떤 칭찬이든 사실은 다 좋아요. 잘한다, 좋다, 예쁘다 하는데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 말을 듣고 앞에서 “맞아요.” “네!” 이렇게 대꾸할 성격이 못 되다 보니까 도망가는 거예요.(웃음)
칭찬에 대해 질문한 이유가 있어요. 심리학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자기 삶에서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설명한다고 오은영 박사님이 어느 방송에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주변인들에게 이런 칭찬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 같네요. “넌 참 모나지가 않았어.” “둥글둥글하네.” “너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야.” 그러고 보니 다 성격에 관한 얘기네요.
 
케이프 드레스는 4백만원대, ‘펜디 퍼스트’ 샌들 힐은 2백만원대 Fendi.

케이프 드레스는 4백만원대, ‘펜디 퍼스트’ 샌들 힐은 2백만원대 Fendi.

그렇다면 본인은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긍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인 거죠. 확실히 사라보다는 두세에 가깝군요.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조용하게 그리고 현명하게요. 
맞아요. 그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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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진선, 손안나
    사진/ 김희준
    모델/ 송혜교
    스타일리스트/ 김현경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안성희
    네일리스트/ 최지숙
    세트 스타일링/ 한송이
    어시스턴트/ 김경후, 백세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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