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현대 사진의 대가, 사울 레이터가 서울을 찾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이자 거리 사진의 대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 40여 년간 홀로 간직해오던 시선의 기록을 서울에서 조우하다.

BYBAZAAR2021.12.06

SAUL

LEITER 

Caps, c. 1960.

Caps, c. 1960.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추앙받는 로버트 프랭크, 다이앤 아버스, 윌리엄 클라인 등에 비해 사울 레이터는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2013년 11월, 90세를 일기로 작고한 레이터는 독신 생활을 단촐하게 유지하며 생의 대부분을 사진에 헌신했지만, 생전에 그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소개된 바는 거의 없었다. 그는 80세가 훌쩍 넘은 2000년대 중반에야 재발견되기 시작했고, 사망한 후 비로소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는 작가다. 오늘날 사울 레이터를 수식하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은 ‘컬러 사진의 선구자’ 혹은 ‘거리 사진의 대가’ 같은 말이다. 1950년대 뉴욕의 일상 풍경을 회화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그의 사진들은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하고 토드 헤인즈가 연출한 영화 〈캐롤〉에 지대한 시각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위 부터) Self-portrait, c. 1946. / Canopy, 1958. / Driver, 1950s.

(위 부터) Self-portrait, c. 1946. / Canopy, 1958. / Driver, 1950s.

1923년 피츠버그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울 레이터는 23세가 되던 해에 신학교를 자퇴한 후 화가의 꿈을 안고 무작정 뉴욕행 버스를 탔다.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그리고 당시를 휩쓸던 일본식 미니멀리즘에 크게 영향을 받은 레이터는 그림에도 꽤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주변의 예술가 친구들을 감탄케 했던 것은 그가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나가 즉흥적으로 찍어온 맨해튼 거리의 풍경 사진이었다. 〈라이프〉지는 경력이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이 무명 신인의 사진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게재했고, 에드워드 스타이컨은 〈언제나 젊은 이방인들(Always the Young Strangers)〉이라는 기획으로 그의 작품들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걸기도 했다. 잭슨 폴록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베티 파슨스 갤러리 역시 초청의 서신을 보냈지만, 세속적 성공에 무관심했던 레이터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책 사이에서 그 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 -사울 레이터
Red Umbrella. c. 1958.

Red Umbrella. c. 1958.

Untitled, 1950s.

Untitled, 1950s.

Untitled, 1950s.

Untitled, 1950s.

레이터는 예술계의 변방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저 좋아서 사진을 찍을 뿐이었던 레이터에게 품위 있는 생계의 길을 마련해준 것은 다름 아닌 〈하퍼스 바 자〉였다.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를 이은 젊은 아트 디렉터 헨리 울프(Henry Wolf)에 의해 전격 고용된 사울 레이터는 약 30년간 패션계에 몸담았다. 제품 정보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잡지 고유의 상업적 특성 속에서도 레이터는 자신만의 시각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의 앵글 속에서 패션 모델은 종종 난반사되는 유리창 뒤에 서 있거나, 반쯤 가려져 있거나, 여러 개의 거울에 분절되어 드러나곤 한다. 종종 유통 기한이 지난 컬러 필름을 의도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진의 색채가 왜곡되거나 한 귀퉁이가 바래 있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물은 폐기해야 할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었지만, 〈바자〉는 오히려 그 결함(?)을 시대와 유행을 초월하는 힘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예술 사진가들이 돈벌이를 위해 패션을 찍는 것을 다소 부끄럽게 생각했던 풍조가 있었지만, 레이터는 패션 사진을 개인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봤다. 그의 패션 화보는 완벽하게 재단되고 연출된 것이 아니라 매우 빠르게 스치는 순간들의 우연한 포착에 가까웠다.
 
(위 부터) Harper’s Bazaar, c. 1960. / Carmen Dell'Orefice, Harper’s Bazaar(fashion), 1959. / Harper’s Bazaar, February 1959.

(위 부터) Harper’s Bazaar, c. 1960. / Carmen Dell'Orefice, Harper’s Bazaar(fashion), 1959. / Harper’s Bazaar, February 1959.

레이터는 동료들처럼 통렬한 사회 고발이나 메시지 전달을 위해 사진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며,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삶 속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에서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다만 그가 포착하는 아름다움이란 유명인의 얼굴도, 압도적인 풍경도, 휘황찬란한 물건도 아닌 사소하고 소박한 것이어서, 빗방울 맺힌 창밖 풍경이나, 택시를 타려는 여성의 구두나, 공사장 한쪽에 쌓인 건축 폐기물도 마땅히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레이터의 사진이 지금에 와서야 새롭게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무심히 스치는 일상 속에 편재해 있는 아름다움을 돌아보게 한다. 말없이 뒤로 다가와 가벼운 숨결로 귀를 간지럽히듯, 그의 사진은 불현듯 우리 마음 안에 미소와 눈물, 따뜻함과 쓸쓸함이 뒤섞인 조용한 파동을 만들어낸다.
 
바깥에 공개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숨어 있는 것들도 있어요. 숨어 있는 것들이 인생이나 현실에서 더 많은 영향을 주죠. 그렇지 않나요? -사울 레이터
 
(위 부터) Carol Brown, Harper’s Bazaar, c. 1959. / Harper’s Bazaar(fashion), Carol Brown, c. 1965. / Harper’s Bazaar Cover, 1959. / Untitled, undated.

(위 부터) Carol Brown, Harper’s Bazaar, c. 1959. / Harper’s Bazaar(fashion), Carol Brown, c. 1965. / Harper’s Bazaar Cover, 1959. / Untitled, undated.



※ 2021년 12월, 사울 레이터 사진전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가 전시 공간 피크닉에서 개최된다. 1940년대부터 60여 년에 걸쳐 그가 찍은 뉴욕의 풍경 사진과 더불어 여동생, 연인, 자화상 등 다양한 인물 사진과 회화작품 등이 폭넓게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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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조유리(피크닉 이사)
  • 에디터/ 황인애
  • 사진/ Saul Leiter Foundation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