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로에베, 마린세르, 발렌티노, 질샌더에서 책을 만든다면?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팬데믹이 전 세계를 집어삼켜도 패션의 멋과 낭만은 영원할 것. 여기, 그 방증이 될 패션 하우스의 새로운 책들을 소개한다.

BYBAZAAR2021.09.04
 
〈아크네 페이퍼〉의 감각적인 책 커버.

〈아크네 페이퍼〉의 감각적인 책 커버.

 
마린 세르의 비전을 느낄 수 있는 〈CORE〉 북의 ‘레더’ 챕터와 패키징.
 
얼마 전 아크네 스튜디오에서 〈아크네 페이퍼(Acne Paper)〉의 재출간 소식을 알렸다. 2005년에 시작해 2014년까지, 일 년에 두 차례 발간되었던 이 책은 패션은 물론이거니와 사진, 건축, 예술, 문학, 저널리즘을 폭넓게 다루며 패션 인사이더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아크네 페이퍼〉가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또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환상적인 결과물을 완성해낼지 알고 있었더라면 감히 시작조차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을 이토록 그리워할지 알았더라면 절대 중단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요니 요한슨이 말했다. 총 5백68페이지 달하는 2021년의 〈아크네 페이퍼〉는 그간의 아카이브를 집대성해 만든 ‘아크네식’ 아트워크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책에는 사라 모워의 에세이부터 어빙 펜, 파울로 로베르시와 같은 전설적인 사진가, 비비안 사센, 솔브 선즈보와 같은 동시대 사진가들의 작품, 그리고 킴 존스, 데이비드 린치를 비롯한 다채로운 인물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범상치 않은 책 커버와 오프닝 포트폴리오 역시 자화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크리스토퍼 스미스의 작품.
 
돌이켜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러한 브랜드 북을 종종 접할 수 있었다. 오랜 전통을 지닌 패션 하우스라면 모두가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책들을 선보이곤 했으니 말이다. 그 자체로 예술작품과 다름없는 이 책들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각광받아 ‘티 테이블 북(Tea-table Book)’이라 불리기도 했다. 책을 선보이는 것은 곧 브랜드의 자신감과도 직결되는 것이었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풍부한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디자인과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 차별화된 헤리티지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비용과 품이 들기 때문.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전자책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대다수의 패션 하우스가 부러 책을 만들지 않는 추세다. 대신 디지털 세상에서 점차 어려지는 그들의 잠재 고객들과 소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1993 F/W 캣워크에 오른 크리스티 털링턴과 케이트 모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1993 F/W 캣워크에 오른 크리스티 털링턴과 케이트 모스.

 
〈아크네 페이퍼〉에 담긴 배우 나이마 위프스트랜드 1958년에 게오르크 오드너가 촬영했다.

〈아크네 페이퍼〉에 담긴 배우 나이마 위프스트랜드 1958년에 게오르크 오드너가 촬영했다.

 
발렌티노 고유의 레드 컬러를 입은 엘사 마짐보와의 협업 알파벳 북.

발렌티노 고유의 레드 컬러를 입은 엘사 마짐보와의 협업 알파벳 북.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고 종이를 어루만지며 사진과 글을 눈에 담는 행위, 그것이 주는 낭만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에 패션 북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 바로 디자이너의 비전과 새로운 협업을 소개하는 장으로 책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인데, 앞서 소개한 아크네 스튜디오를 비롯, 올해 마린 세르와 질 샌더, 발렌티노가 선보인 책이 그 대표적인 예다. 
먼저 지난 3월 ‘CORE’라 명명한 새로운 F/W 컬렉션을 선보인 마린 세르는 두 개의 다큐멘터리와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비전을 명징하게 드러낸 바 있다. 책 속에는 컬렉션에 사용된 지속가능한 소재와 제작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추구하는 친환경 미래주의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가능하다. 
 
한편 7월에 공개된 질 샌더의 포토 북 〈친숙함(Familiarity)〉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루시 & 루크 마이어의 손에서 탄생한 두 번째 책으로 사진가 안데르스 에드룀, 올리비에 커번, 크리스 로즈, 마리오 소렌티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각 사진가들의 집과 정원에서 포착한 친근하고도 사적인 사진들을 소개했는데, 책 속에 담긴 평온한 광경은 보는 이에게 휴식 그 이상의 힐링을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발렌티노에서는 작가이자 배우, 코미디언인 19세 소녀 엘사 마짐보와의 협업을 통해 책 〈아이와 어른을 위한 알파벳(The Alphabet for Kids & Adults)〉을 공개했다. 어른과 아이 각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알파벳 책으로, 작가의 풍자와 통찰력, 발렌티노의 특유의 모티프와 컬러 팔레트가 어우러진 신선한 결과물이 돋보인다.
 
〈C.P. Company 971-021〉 책 속 이미지. 브랜드의 2019 프리즘 재킷으로 스타일링한 사진가 조나선 테그베우의 모습.

〈C.P. Company 971-021〉 책 속 이미지. 브랜드의 2019 프리즘 재킷으로 스타일링한 사진가 조나선 테그베우의 모습.

 
친근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사진들로 채워진 질 샌더의 포토북 〈Familiarity〉.

친근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사진들로 채워진 질 샌더의 포토북 〈Familiarity〉.

 
루이 비통 출판사에서 지난 4월에 출간한 트래블 북.

루이 비통 출판사에서 지난 4월에 출간한 트래블 북.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소개하는 신간들도 보다 콤팩트한 사이즈, 다채로운 소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C.P. 컴퍼니가 출간한 브랜드 최초의 서적 〈C.P. Company 971-021〉은 책 제목처럼 1971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브랜드의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창립자부터 브랜드 수집가에 이르는 50인의 인물들이 자신이 직접 스타일링한 룩을 입고, 닐 베드포드의 카메라 앞에 선 모습들이 흥미롭게 다가올 것. 
 
시티 가이드 및 트래블 북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루이 비통 출판사에서도 새로운 책을 발표했다. 〈특별한 여정(Extraordinary Voyages)〉이라는 4백여 페이지 분량의 도서로 일반적인 여행 서적이 아닌, 19세기 기차부터 원양 정기선, 여객선, 항공기, 스키, 오토바이, 아폴로 우주선 등을 타고 세계를 가로지르는 흥미진진한 여정들을 소개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80번째 생일에 맞춰 발간한 〈Vivienne Westwood Catwalk〉 북 역시 40년간 이어진 디자이너의 역대 패션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아이코닉한 타탄체크 커버가 단연 눈길을 사로잡으며 한정판은 핑크색 마감과 북마크 끈, 타탄 케이스로 소장가치를 높였다.
 
확인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별함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진심을 정중하고도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은 디자이너들의 패션 북은 정보 전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음이 분명하다.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운 요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절대적 미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방법. 어디서도 본적 없는 신선한 비주얼을 마주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방법.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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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진선
  • 사진/ 각 브랜드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