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니키 리는 아티스트다

맛있는 음식이 좋은 것처럼 아름다운 걸 취하는 게 당연한 탐미주의자. 갖춰진 것과 흐트러진 것 사이를 오가며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사는 니키 리.

BYBAZAAR2021.08.02

I'M

NIKKI

 
니키 리는 ‘줄리아나 걸’이 되기로 했다. 경제 부흥으로 불야성을 이뤘던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일본. 낮만큼 환한 밤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면 현금 다발로 50만원은 쥐고 흔들어야 했고 떠돌이 개도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다, 어딘가 꿈 같고 장난 같은 시절. ‘줄리아나 도쿄’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샴페인의 거품처럼 터져 나왔다 사그라들었다. 단정한 투피스를 입고 새들 백을 몸에 붙인 직장인 여성과 보디콘셔스로 몸매를 드러내고 체인 벨트를 두른 여성이 높은 단상에 올라 부채와 깃털을 휘날리는 밤이 계속되던 때. 정작 니키 리는 평생 모범생이었다. ‘그렇게 안 살아놓고, 하라고 하면 그렇게 평생 산 사람같이 하는’ 재주를 지녀 90년대 끝자락은 아주 많은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았다. 스케이트보더, 레즈비언, 드래그퀸 등등. 해당 집단에 속해 어울린 시간은 얼굴과 몸을 바꿔 사진으로 남겼다.
 
 
지난 작업과 상관없이 오늘 그는 향수 속 한 시대로 뛰어든다. 짧게 자른 머리 위에 가발을 덧쓰고 하이힐을 신고는 옷차림만으로 흥이 안 난다고 음악을 주문했다. 진짜 제목과 다르게 불러도 알아채고 마는 ‘오 마이 줄리아(ジュリアに傷心)’와 ‘긴기라기니(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가 스피커에서 쏟아져 흐르고, 표정과 몸짓이 변한 니키 리가 서 있다. 그의 영화 제목 〈니키리라고도 알려진(a.k.a. Nikki S. Lee)〉이 머릿속에 자막처럼 떠올랐다.  
 
새틴 미니 드레스는 Versace. 골드 체인 목걸이는 Portrait Report. 스틸레토 펌프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새틴 미니 드레스는 Versace. 골드 체인 목걸이는 Portrait Report. 스틸레토 펌프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왜 줄리아나 도쿄의 여자들이 돼보고 싶었나? 
단순하다. 80년대를 좋아하고 그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보수적이고 잘못된 지점도 많았지만 지금보다 훨씬 개인의 본능과 감각에 충실했고 다양한 욕망을 펼쳐 보이기도 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오늘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부분을 드러내고 싶었다.
 
당시 클럽에 좀 다녔나 했다.(웃음)
열심히 학교 다니면서 과제 하기 바빴다.(웃음) 내가 거기서 안 놀아도 그곳에서 관통하는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퇴폐적으로 살지 않아도 내가 그걸 알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첫 작품인 〈프로젝트(Project)〉 시리즈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피, 한국 여고생, 일본 젊은이, 투어리스트, 히스패닉. 여러 인종과 집단 속으로 들어갔다. 긴 이야기지만 쉽게 말하자면 나한테 아주 다양한 면이 있다고 느꼈다. 블루스 음악을 들으면 흑인의 감수성을 가진 것 같고, 컨트리 음악을 들으면 미국 백인의 어떤 감수성이 내 것처럼 여겨졌다. 자연스럽게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고 나의 정체성으로 물음이 옮겨갔다. 현대예술의 문법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였다. 누군가가 되어본다는 건 아주 직설적인 욕망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집단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록하는 건 흔한 일이다. 니키 리는 자신이 그 사람이 된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몇 개월 동안 어떤 집단에 들어가 살면서 뭔가를 배우거나 동화되고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상황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몸소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다. 기술적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스냅을 남기듯 일부러 자동카메라로 찍기도 했다. 
 
 
안 그래도 작품을 뜯어보면서 퍼포머나 예술가라 부르는 게 맞겠구나 싶었다. 심지어 카메라도 없다.(웃음) 
어릴 때부터 조숙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인생의 허무함과 애잔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독함과 외로움, 반대로 사람을 좋아하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인 기질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다른 모습을 했을 때 외적인 것뿐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까지 동화되어 보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니키 리와 고독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고독을 다스리지 않는다. 고독이 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고독 또한 나를 작가로 살게 하는 요소이고 혼자만의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고 이건 ‘it’s none of your business’다. 한 사람을 한 결로 판단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웃음) 성장하는 것도 파인 다이닝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펑크 기질이 있다. 셀카 찍을 때 보정 앱을 쓰는 건 절대로 싫다. 좋은 접시로 상을 차리고 싶은데 완벽하지 않으면 일회용을 써도 상관없다. ‘펑크’와 ‘파인’을 왔다갔다한달까.(웃음)
 
재킷은 Bell & Nouveau. 미니 드레스는 Cos. 골드 장식의 체인 백은 Versace. 스틸레토 펌프스는 Roser Vivier.

재킷은 Bell & Nouveau. 미니 드레스는 Cos. 골드 장식의 체인 백은 Versace. 스틸레토 펌프스는 Roser Vivier.

 
영화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에 대해 “5달러짜리 가방에 1천8백 달러짜리 에르메스 지갑을 들고 있었다”고 술회한다. 이게 바로 ‘펑크’와 ‘파인’의 줄다리기인가?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건 내가 쇼핑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돈이 많으면 맨날 쇼핑만 하고 다닐 것 같다. 우울할 때 백화점에 가면 갑자기 세상에서 기분이 제일 좋은 사람이 된다. 예쁜 것을 보는 게 좋다. 매력적인 사람을 보고 있을 때의 느끼는 기분 좋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것 같다. 예를 들면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청춘의 아름다움. 영화에서 노신사가 목숨을 걸고 미소년에게 매혹되는 기분이 뭔지 알 것 같다. 다시 작업 얘기로 돌아가겠다.(웃음) 뉴욕대 석사 과정의 창작물로 만든 〈프로젝트〉로 단숨에 뉴욕 미술계의 중심에 섰다. 신데렐라다. 자다 깼더니 〈뉴욕 타임스〉에서.(웃음) 그런데 이런 지점에 별로 감동을 못 느낀다. 허세가 아니라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를 하는데도 귀찮아서 안 갔다. 대신 사람한테서 받는 감동이 있다. 어제 처음 〈니키리라고도 알려진〉 GV가 있었다. 영화관 문을 나섰는데 관객들이 집에 안 가고 줄을 서 있었다. 그걸 보는데 울컥했다. 늦은 시간에 내가 뭐라고 사인을 받을까 하면서.
 
신데렐라가 되고 나서는 어땠나? 
멈추지 않는 열차에 올라타는, 끝없이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신는 기분? 창피하고 싶지 않았다. 아티스트로 존재감을 알리고 나서 10년 동안 강박적이고 수도사 같은 삶을 살았다.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갔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 다음 영화를 보는 루틴을 지켰다. 그러다 여름이면 한국에 들어와 미친 사람처럼 청담동을 쏘다녔다. 마치 뉴욕에서 그렇게 계속 살았던 것처럼, 파티걸 이미지를 심어주고 떠났다. 시험 전날 엄청 공부 해놓고 하나도 안 한 척하는 얄미운 우등생처럼.(웃음)
 
셔츠는 Versace. 체인 목걸이는 Portrait Report.

셔츠는 Versace. 체인 목걸이는 Portrait Report.

 
다양한 인종과 직업의 남성과 사귀는 여성으로 분한 〈파츠(Parts)〉 또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성 역할의 기전을 좇는다.
30대 초반에 힙스터랑 사귀었는데 힙하게 가버렸다.(웃음) 사랑했는데 쿨한 관계를 유지하느라 서로를 위해주지 못했다. 같이 파티에 갔는데 그 사람은 혼자 인사를 하러 다녔고 나는 별로 흥미가 없어 구석에 앉아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따분한 사람 취급하며 화를 냈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싶어 그 자리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왔고 얼마 후 헤어졌다. 〈프로젝트〉에서의 포커스가 사회의 그룹이었다면, 개인적인 깊은 관계 안에 있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파츠〉가 나온 거다.
 
〈파츠〉 시리즈의 가장자리에는 하얀 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사진 속에 있던 남성의 모습이 의도적으로 잘려나갔음을 알려준다. 영화 속에서 누가 그러지 않나?
“내 사진은 잡지에 실리지만 니키 리 사진은 미술관에 걸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가 화이트 큐브 안에 크게 걸려 있을 때 느껴지는 통쾌함이 있다. 누구나 그런 사진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진은 앨범 속에 잠들어 있다. 나는 항상 그런 예술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 것만 박물관에, 미술관에 있을 수 있는. 멀리서 보면 쉬워 보이는데 들어가보면 할 얘기가 많은 작업을 하려 한다. 머리로만 하는 예술은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본성과 이야기, 감정이 머리를 거쳐 새로운 문법으로 나와야 되는 거다. 나도 머리만 굴리다 한동안 작업을 쉬어야겠다는 상태에 이르렀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인가?
인생을 살다 보면 뜻밖의 사고와 어떤 결심이 겹쳐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태오를 처음 봤을 때 흙 속의 다이아몬드 같았다. 저 흙을 다 털고 빛나게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마침 작업을 쉴 생각이어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뉴욕 집에 문제가 생기고 그린 카드가 안 나왔다. 3~4년만 쉴 생각이었는데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원래 영화과에 가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로 사진과를 갈 만큼 영화에 대한 꿈이 깊었다. 영화 작업을 위해 지난 몇 년간 1시부터 6시까지 시나리오를 썼다. 완성한 시나리오가 다섯 개 있다. 논 게 아니다.(웃음)
 
컬러 프린트 미니 드레스는 Expired Girl. 반지는 모두 Hei. 체인 벨트로 연출한 목걸이는 H&M. 펌프스는 Rachel Cox.

컬러 프린트 미니 드레스는 Expired Girl. 반지는 모두 Hei. 체인 벨트로 연출한 목걸이는 H&M. 펌프스는 Rachel Cox.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이 최근 개봉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2006년에는 니키 리를 궁금해하는 뉴욕 미술계를 향했다면 지금은 니키 리라는 인물을 궁금해하는 대중을 향하고 있다.
개봉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몇 번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정말 텅 비어 있었다. 다시는 한국에서 보여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타이밍이 또 왔다. 배우 유태오의 와이프로서 궁금함이 시작되었겠지만 조금씩 니키 리 자체에 대한 궁금함으로 바뀌는 걸 느낀다.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이 영화가 그들에게 좋은 답이 될 것 같나? 
혼란스러워할 것 같다! 뭐지 도대체? 봤는데 더 모르겠다? 이런 반응도 많겠지.(웃음) GV를 하면서 의외로 20~30대 여성들이 영화를 통해 본인의 고민을 겹쳐 본다는 걸 알게 됐다. 16년 전 만든 영화가 동시대와 소통된다는 지점이 참 좋다.
 
모큐멘터리로 화자가 ‘니키 원’과 ‘니키 투’로 나눠져 있다. 
원은 본인의 또 다른 자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고 투는 작가 자체다. 대부분 투를 가짜라고 생각할 테지만 둘 다 가짜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속이기가 너무 쉬운 거다. 그렇다면 정체성을 무겁고 힘들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정체성은 유기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니 사람들을 공격할 필요도 없는 거고, 이렇다 저렇다 후진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이렇게 속이는데 너희는 뭘 그렇게 한 모습에 집착하니?라는 의도가 있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니키 리의 작업은 늘 결과만을 볼 수 있었다. 
영화에는 조금이나마 작업 과정이 나온다. 〈파츠〉에서 잘려나간 유대인 신랑의 얼굴 같은 거 말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었다. 신비주의는 아니고 그냥 깔끔한 성격이다. 작업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정말 많았다. 책을 내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작업으로 깨끗하게 끝내고 싶었다.
 
부유한 유대인 수집가 집에 간 장면에서 웃다가 독일 갤러리에서 작품을 망쳐 놓는 장면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모마에서 상영했을 때 사람들이 미친 듯이 웃었다. 유대인 부자의 문화를 정확히 건드리니까. 철저한 독일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도 꽤 웃기지.
 
 
모든 장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혼란스러워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똑같은 테이크가 반복되는 걸 보고 놀라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뭘 본 거지? 이런 거 말인가? 영화가 끝나면 허무함이 몰려올 것이다. 그건 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삶의 허무함과 비슷한 거다.
 
“니키가 니키로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뉴욕이다.”라는 말이 잔상처럼 남는다. 
그때는 그랬고, 그렇게 믿었다. 뉴욕을 정말 사랑했지만 지금은 뉴욕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때의 뉴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신은 여전히 니키 리다. 
인턴 신청을 하는데 본명인 ‘승희’는 읽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더라. 친구가 보내준 영어 이름 리스트 속에 ‘니키’가 있었다. 알고 보니 패션지를 펴놓고 모델 이름을 다 적어서 보낸 거다. 니키 테일러의 니키다.(웃음) 내 친동생마저 나를 니키라고 부른다. 나도 친구들도 내가 니키가 아닌 걸 상상할 수 없다. 이름처럼 나는 언제 어디서든 니키 리다.
 
요즘의 니키 리는 여성들이 따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공인도 아니고 내 삶이 그렇게 모범이 될 만한 삶도 아니다.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 인스타그램 광고나 CF 제안이 종종 오는데 다 거절한다. 적어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혹시 내가 따르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니키 리는 항상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요즘 작업은 어떤가? 
책을 내자는 제안이 많다. 그럼 나는 책을 쓰는 동안 혼자 글과 싸움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은가 떠올리면 아니다. 짧은 에세이는 쓰고, 쓰다 보면 언젠가 책으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기간을 정해놓는 건 싫어서 다 거절하고 있다. 영화 작업이 자꾸 엎어지니 이런저런 고민이 많지만 결국에는 이번 여름에는 좀 놀아볼까 하는 중이다.(웃음)
 
니키 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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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목정욱
  • 헤어/ 김선희
  • 메이크업/ 홍현정
  •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 어시스턴트/ 백세리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