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소 대표 김희숙 그냥 무너지기에는 억울하지 않나. 그래서 지금도 꿈을 꾸고 산다.
처음 자동차 정비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나 또한 곱게 신부 수업 받고 시집간 여인네였다. 사회에서 존재감도 없고 그냥 묻혀서 지내는 아무것도 못하는 새댁. 처음에는 사업장을 운영하는 남편을 도와 청소나 할까 하고 출근했던 게 전부였다. 정비업에 뛰어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계산기 두드리는 것도 몰랐을 만큼. 누군가 커피 좀 타다 달라 하면 커피잔에서 달달 소리가 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활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업무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 일에 빠져들었고 파고드니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더라. 내가 몰랐던 만큼 고객들도 자동차의 상황을 잘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에 정비기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지금은 정비소도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정비소 운영과 직원 관리만 신경 써도 빠듯할 것 같은데, 정비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래도 자격증이 있어야 무슨 얘기를 할 수가 있겠더라. 예전에 내가 설명하면 “뭐 알긴 해요?” 하면서 무시를 많이 당했었는데, 요즘엔 그런 질문을 들으면 자격증이 있다며 맞받아친다. 그러면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이 끝나면 기술학교 야간반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처음 준비할 때도 여자가 많지 않았다. 두세 명 정도. 그중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연달아 합격한 사람은 나뿐이라 교수님들이 반가워했다. 여자가 이렇게 급속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말이다.
자동차 정비업은 남성 종사자의 비율이 높은 직군이다. 여성이라서 힘든 점은 없었나?
편견을 뛰어넘기까지 오래 걸렸다. 처음엔 직원들하고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일해온 환경과 내가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달랐던 탓이 클 거다. 정비소에선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사람의 안전이 위협받기 쉽지 않나. 그래서 다들 날 서 있고 예민한데 말도 거칠다 보니 그 분위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공구가 날아다닐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하면 조금 상상이 가려나? 그만큼 남성들도 꺼리는 직업이었다. 더군다나 새로 직원이 들어올 때면 내가 면접을 진행하는데, 여자인 사장이 면접을 보고 있다 하면 그들 입장에선 일단 무시를 했다. “너 아니어도 다른 남자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갈 수 있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그런 직원들의 남성 편향적인 태도가 많이 힘들었다.
그들과 같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부드러움을 택했다. 현장에선 서로 욱하는 마음에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럴 땐 맞대응을 하는 대신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마음이 열렸다. 사실 정비 업계가 이직률이 높은데, 우리 직원들은 근속 기간이 긴 편이다. 10년 넘어가는 직원도 있을 만큼 거의 붙박이랄까.(웃음) 능력 있는 직원들이 많아 다른 곳을 갈 수 있는데도 계속해서 함께 일해주는 것을 보면 ‘내가 잘해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이 생긴다. 그럴 때 정말 행복하다. 삶에서 그 보람만큼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가끔씩 정비공장에 아내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상 경리 수준으로 일하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선두에서 모든 일을 했다. 직원 면접도 보고, 영업도 하면서 가끔씩 일어나는 사고도 수습하고. 그러다 보니 소문이 퍼지고 여성 고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종종 견적을 낼 때 손님과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직원들이 자신만 아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해서 직접 설명해주곤 했는데, 그게 이해가 잘 됐나 보다. 나 또한 처음부터 전문가는 아니었으니 고객들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한 덕이 컸다. 한 번 방문한 손님들은 그렇게 계속 찾아주는데, 그럴 때마다 ‘역시 이 일을 하는 게 좋구나.’ 하고 느낀다. 지금 돌아보니 사람은 환경 속에서 변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것도 못 느낄 정도로 일에 집중했더니 직원들은 물론 고객들도 신뢰를 갖고 나를 찾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30년 차 정비공으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자동차 정비업의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며 애초에 잘 고장이 나지 않게 되었다. 기껏 해야 타이어나 오일 교체가 전부인데 전기차나 수소차가 출시되며 오일도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거기에 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사고도 안 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화물차나 특장차에 대해서는 할 일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소방차, 청소차 같은 특장 차량을 다루는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다. 앞으로 적어도 10년, 15년은 이 일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 시작할 때는 마흔 살, 쉰 살이 되면 은퇴할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이렇게 무너지기엔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꿈을 꾸고 산다.
이 일에 도전하는 여성들에게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 전 〈언니차 경정비 클래스〉라는 프로젝트에서 강의를 했다. 관심이 있어도 방법을 몰라서 진입하지 못한 이들이 꽤 있더라. 그중 자격증을 딸 정도로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보며 그런 장이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기 전에 안 된다고 단정 짓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길은 분명히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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