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다독가들이 추천하는 올해의 책 4

연말은 책과 함께

BYBAZAAR2020.12.22
 
<디어 라이프> ,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문학동네

디어 라이프, 문학동네

신간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올해의 책 대신 올해 읽은 감명 깊은 책을 추천한다. 보통 외국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와 문화적 배경이나 가치관, 역사 등이 달라 잘 공감하지 못하거나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느껴야 할지 몰라 애매할 때가 있다. 하지만 〈디어 라이프〉는 삶의 단편과 진실, 인간의 감정 등 문화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정서를 일깨워 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총 14편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의 첫 작품을 다 읽고 나서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아문센과 메이벌리를 떠나며〉를 읽고 나서다. 두근거리기도,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마치 내가 겪은 일 같기도, 겪어야 할 일 같기도 한 느낌.
감동을 받았다. 읽기 쉬운 것도, 그렇다고 재미있는 내용도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그걸 직접 보여주거나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펼쳐낸 세계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일깨울 뿐.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으면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 2009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선정 이유에서 밝힌 내용이다. 공감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때로는 내가 매정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때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매정한 존재가 되어야 하기에. 하지만 나는 그런 세상을 용서하고, 그런 나를 용서하고, 시간과 기억과 끊임없이 타협한다.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기차를 타고 이동하듯, 우리도 끊임없이 이동하며 끊임없이 용서한다. 결국 삶도 진행형이고, 용서도 진행형이다.”
-문현진(감정평가사)
  
 
〈부의 대이동〉, 오건영  
부의 대이동, 페이지2

부의 대이동, 페이지2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빌 게이츠에 따르면~’ ‘워렌 버핏이 가치 투자하래’ 등 유우명한 사람의 권위를 빌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동학개미시장에서 버핏 이야기를 한다면 이미 ‘라떼’다. 적어도 ‘오건영에 따르면~’ 정도는 해줘야 인싸스러움이 묻어난다. 유튜브 스타이자 애널리스트 출신의 저자 이름만 보고 덜컥 산 책이지만, 기초 금융 지식부터 야무지게 ‘떠’ 먹여준다.  
오르는 집값과 은행 이자에 분노하고, 오픈 카톡방 주식 정보에 쓴맛을 봤던 나와 내 친구들. 그런 우리를 둘러싼 금융 세계를 최선을 다해 해석해 주는 책. 완독 후 ‘오건영이 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덤. 더 이상 대화할 때 투자는 겁나서 안해봤어, 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
‘달러 스마일은 ‘달러가 실실 쪼갠다’ 와 같은 표현이 됩니다…(중략) 자산시장이 붕괴될 때 혹은 불황이 찾아올 때 달러 가치가 크게 튀어 오르는 특성을 의미합니다.’(p141 – p154) 실실 쪼갠다니! 최대한 초보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흔적이 책 곳곳에 보인다.
-유지환 (금융업 종사자)
 
 
〈시와 산책〉,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 흐름

시와 산책, 시간의 흐름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건너는 시간. 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고 지인들 연말 선물로 여러 권 주문했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
"걷다가 죽어가는 벌레 곁에 있어 주고, 창을 내다보는 개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의 코딱지를 파주며 탕진하는 시간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 시간의 나는 진짜 '나'와 가장 일치한다. 또한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부조리하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이영주, (책방 ‘만춘서점’ 대표)
 
 
〈노자가 사는 집〉 이주호
노자가 사는 집, 브릭스

노자가 사는 집, 브릭스

요즘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책을 들이고 손님에게 판매하는 것이 책방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일이지만 이마저도 삶의 부분이 되어버린 탓이다.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내리는 일처럼 볼만한 책을 그저 골라 둔다. 책을 읽고, 소개하고, 모임을 꾸리는 것이 요즘 시대의 책방의 모습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책방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방을 하는 이유도 그 한가지다. 어쩌면 〈노자가 사는 집〉을 이제야 이루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추위를 피해서 따스한 곳을 찾아오는 길의 고양이처럼 나는 산다.  
- 박성민,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