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컬러 사이드 스툴 가구 디자이너 전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원래 가구가 잘 안 팔리거든요. 근데 지금 너무 팔려서 ‘왜 이러지?’ 하고 있어요.” 아니 뭐,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다. “제가 다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어요. 어디 놓을 데도 없고. 사람들이 쓰는 게 저에게는 더 큰 의미죠.”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머릿속은 ‘쓸모’와 ‘쓰임새’로 가득 차 있다. 다양한 색 조합으로 인기를 끈 그의 컬러 사이드 선반과 컬러 사이드 스툴은, 사실 작업하고 남은 자투리 합판이 아까워서 만든 제품들이다.
쓰임을 잘 정리하다 보면 형태가 예뻐진다고 생각해요.
그의 디자인 원칙은 간단하다. 재료를 낭비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 일하지 말 것. 그건 그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도시와 사회에서 스스로 배운 것들이다. “그때 전 사회운동가인 줄 알았어요. 대안학교도 때려치울 정도로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부모님이 그렇게 학교를 가기 싫으면 도시에서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광우병 사태, 용산 참사, 쌍용차 사건에 데모하러 다녔어요.” 하지만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때 느낀 무기력과 비관은 그를 공사장으로 이끌었다. “생태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교는 가기 싫었으니까 집 짓는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공사판에서 멋있게 막노동 일을 하자 했죠. 몇 년 했는데 그렇게는 건축가가 못 되겠더라고요.” 결국 그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 갔고 가구를 만들어달라는 교수들의 뜬금없는 요청으로 버려진 가구들을 주워다가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의 졸업작품 ‘설거지 차’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게릴라 장터 마르쉐를 돕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만든 거였다. 비정규노동자 쉼터인 꿀잠에 디자이너로서 손을 빌려주기도 했다. “제 목표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사는 거예요. 중졸에 학위도 없는 저 같은 사람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큰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사회운동만큼 이것도 쉽진 않다. “고통스럽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화도 나고 욕도 나요. 하지만 ‘더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하는 스트레스니까 불행하진 않아요.” 그는 이제 안다. 5년 차, 10년 차가 된다고 해도 마감 기한도 잘 맞추고 밤도 안 새우고 펑펑 놀며 일할 수는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