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초희 감독은 자신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과 닮았다. 주인공에게 감독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지만 찬실이라는 역할과 배우 강말금 셋의 공통분모는 무척 끈끈하다. 이 밀도 덕분에 영화는 귀엽다. 오래도록 한 거장과 영화를 만들어온 프로듀서 찬실은 감독의 죽음으로 삶을 되돌아본다. 40대가 되었는데 없는 것투성이다. 직업도 돈도 사랑도. 김초희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10년 가까이 일하다 마흔한 살에 그만뒀다. 배우 강말금 역시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연극판에 뛰어들어 10여 년을 보냈다. 그렇다고 영화를 빌려 신세 한탄을 하진 않는다. 찬실이에게는 따뜻한 옆집 할머니와 말과 사심이 얼추 통하는 남자사람친구가 있고, 세기의 배우 장국영이 눈에 보인다. 강말금이 처연하게 찬실을 연기할 때마다 김초희 감독은 “더 귀엽게, 다시 귀엽게!”를 외쳤다.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실패한 삶일지라도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온 사람,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용감하게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지난한 과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서이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본 적 없는 이들이 기력을 모아 마침내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말의 혼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개봉 성적도 순조롭다. 무엇보다 감독으로서 역량을 인정받았고 멋진 배우를 얻었다. 감독 김초희는 복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