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꺼내본 레트로 기기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발전하는 기술 덕에 기기의 수명은 점점 짧아진다. 새것이 옛것을 대체하고 이전의 것들은 애물단지가 된 채 서랍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만에 그것들을 꺼내본다. 먼지를 털고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MY

RETRO

TECH

어학 시험과 록 음악과 카세트플레이어
2006년인가 2007년 즈음 구입했던 이 카세트플레이어는 당시에도 유행이 지난 기기였다. 그럼에도 구입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중어중문학과였던 나는 전공이 적성에 맞아 통번역대학원까지 준비했었고, 이 과정에서 HSK라는 어학 시험을 봐야 했다. 오늘날이야 컴퓨터를 통해 시험을 보면 되지만 당시만 해도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 굉장히 원시적이었다. 공테이프를 나눠주면 그곳에 대고 녹음을 해서 다시 제출하는 형식이었으니 말이다. 말하고 끊고, 말하고 끊는 그 과정을 몸에 익히기 위해 이 카세트플레이어를 사서 연습을 했다. 그런 아날로그식 시험 방식에서 컴퓨터 시험으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딱 내가 위치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내 세대 이전의 사람들에겐, 특히 언어를 전공한 대학생들에겐 이 카세트플레이어가 대학 시절 하나의 추억거리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기기는 녹음뿐만 아니라 재생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걸 구입했을 시절에는 이미 카세트테이프의 유행이 끝나 있었다. 90년대에 한창 유행할 당시 샀던 카세트테이프가 집에 많이 쌓여 있었지만 그걸 재생할 기기는 많이 없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집에 CD는 많지만 CD를 재생할 기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90년대에 샀던 카세트테이프들을 이 기기를 통해 재생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매싱 펌킨스, 그린데이, 라디오헤드 같은 록 가수의 음악을 좋아했다. 게다가 90년대 당시엔 〈Now〉라는 컴필레이션 테이프가 유행이었다. 그런 테이프를 사서 “아임 어 바비 걸~” 이렇게 시작하는 아쿠아의 ‘Barbie Girl’이라는 노래를 들었던 기억도 나고, 또 “키스미 달링”이라며 스위트하게 노래 부르는 블링크의 ‘Kiss Me’가 유명세를 타자 그 테이프를 샀던 기억도 난다. 그러니까, 저 카세트플레이어가 나에게는 두 시대를 다 떠올리게 하는 매체인 셈이다. 2006년, 2007년에 어학 공부를 하면서 카세트테이프로 말하기를 연습하던 대학생 시절과, 그 이전에 구입했던, 유산처럼 남아 있던 90년대의 카세트테이프들을 재생하며 옛날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물건 말이다.
- 손안나(〈하퍼스 바자〉 피처 에디터)


아이팟 클래식에 담긴 추억
처음부터 이 아이팟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해외에서 일하게 된 큰형이 출국하기 전 선물로 줬던 이 기계는 당시 내게 아이리버, 소니, 코원보다 못한 음악 플레이어일 뿐이었다. 이걸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저 쓰다 보니 정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한번은 이 아이팟을 발가락에 떨어트린 적이 있다. 그때 고장나지 않았냐고? 망가진 건 내 발가락뿐, 아이팟은 멀쩡했다. 오히려 내가 한 달가량 깁스를 해야 할 정도였다. 아, 무게가 무겁다는 것이 단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노래와 영상이 하루에도 수백 개 쏟아지는 오늘날이지만 내 아이팟의 리스트는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평소에는 휴대폰의 음악 스트리밍 앱과 넷플릭스로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아이팟의 시간은 예전 그때 그대로 멈춰 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한 이 아이팟에 깃든 추억이 너무 많다. 120기가짜리 기기에 담긴 셀 수 없이 많은 음악과 영상들, 그리고 게임은 모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담긴 노래들을 듣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른하게 쉬는 듯한 느낌도 들고, 옛날 생각도 나고. 노래를 들을 때 볼륨을 아주 크게 해서 감상하는 편이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음악에만 심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취하여 음악을 듣다 보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처음 아이팟이 생겼던 초등학생 시절 스피커에 이를 연결해 친구들과 춤을 추던 기억도, 담임선생님께 두 달 동안 압수당해 사용하지 못했던 기억도,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도, 형들과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서로 노래를 추천해주던 기억도 모두 생생하게 재생된다.
- 강창모(모델)


어느 수집가의 TV
그러니까, 저 모델은 1980년대 초에 출시된 모델이다. 컬러 텔레비전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출시된, 당시로 치면 인치 수도 컸던 모델. 한마디로 부잣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고급형 텔레비전이었다. 출시됐을 당시 산 건 아니고, 2010년 정도에 벼룩시장에서 팔던 걸 보자마자 바로 사서 지금까지 간직하게 되었다. 그때 서른아홉 정도였던 나는 홍대와 신촌 사이에 있던 음악 작업실에 물건을 두었다. 옛날 물건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던 탓에 당시의 작업실엔 이 텔레비전 말고도 물건이 많았다. 악기, 책, DVD, 음향 장비,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LP판까지. 나중에 LP 바를 차리려고 이것저것 모아두던 소품들이 어느새 불어나 작업실을 다 채울 정도까지 됐었다. 그렇게 2015년, ‘다소유’라는 LP 바를 차리며 이 소품들도 나와 함께 이사하게 되었다. 옛날 물건들을 모은다고 해서 그 물건들이 좋은 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겁고, 장소도 많이 차지하고, 관리를 안 하면 조금씩 고장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수집하냐 묻는다면 그때 그 당시의 것들을 다 놓고 보면 조합이 괜찮거든. 낡고 지직거리지만 옛날 물건들을 찾는 이유다. 이 텔레비전이 출시됐을 당시 나는 10대였다. 그때부터 음반을 사러 열심히 청계천 일대를 돌아다녔다. 비디오테이프도 많이 샀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구매했던 비디오테이프를 20년이 지난 후 산 이 모델에 재생해서 봤다. 샀을 당시 이 기계는 이미 꽤 낡은 축에 속해 있었고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가정도 많이 없었다. 그런데도 옛날의 그 로망이 남아 있어서일까. 저 모니터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해서 보는 게 그저 좋았다. 오늘날의 뉴트로처럼 추억팔이가 유행하던 시절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때부터 옛 감성을 즐긴 게 아닐까 싶다. 때로는 1960~80년대에 출시됐던 게임도 연결해 플레잉했다. 요새 화면처럼 크고 선명하진 않지만 그때 그 감성을 느끼는 것이 그저 좋았다.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고. 당시에 여유가 없어서 사지 못했던 걸 20년이 지난 후 여유가 생겨 가지게 되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은 TV로서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장식용으로서의 목적이 더 크지만 그때 느꼈던 생생한 감각이 내가 이 물건을 못 버리는 이유다.
- 오대리(LP 바 다소유 대표)
발전하는 기술 덕에 기기의 수명은 점점 짧아진다. 새것이 옛것을 대체하고 이전의 것들은 애물단지가 된 채 서랍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만에 그것들을 꺼내본다. 먼지를 털고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