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ob Kudsk Steensen, 〈Catharsis(카타르시스)〉 ⓒ2019 courtesy of the artist. Photography by Hugo Glendinnin
강이연 “나는 늘 ‘경계’에 대해 탐구해온 작가.«CONNECT, BTS»는 내 근본적인 철학에 대해 자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유일한 한국 작가다. 참여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아트 프로젝트였다. 처음 감독님께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셨을 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우선 이대형 총감독님의 기획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작가로서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웃음) 전 세계 다섯 도시의 유수 기관과 저명한 큐레이터, 작가들을 연결하는 이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시작된 기획이라는 것이 뜻깊고, 유일한 한국 작가로서 참여하게 되어 더욱 영광이다.
서울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2017년 같은 장소에서 막스마라 코트전 «Coats!»에 참여하지 않았나. 그때와 같은 돔 형태(〈Deep Surface〉) 혹은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한 터널 형태(〈Lucid Dream〉)를 떠올렸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사각의 룸으로 공간을 한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것보다 매번 새로운 공간에 도전하는 것이 내게는 더 흥미롭다. 기존의 신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Beyond The Scene’으로서의 BTS를 표현하기 위해서 오히려 정형의, 큐브 형태의 방을 설정하고 그것이 끊임없이 확장하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정육면체는 기존의 신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거울이라는 장치를 통해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진 하나의 팽창적 환경을 만든 것도 이를 위해서다.
〈Beyond The Scene〉은 지난해 일민미술관 «불멸사랑»전에 선보인 〈Continuum〉과 비교하자면 특히 서정성이 돋보였달까. 익명의 무용수들에게 BTS, ARMY 등의 정체성이 덧씌워지면서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
〈Continuum〉은 이 시대에 디지털 맥락 안에서 역사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석적으로 이야기하는 작업이었다면, 〈Beyond The Scene〉은 단지 BTS와 ARMY에 국한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과연 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 인류의 역사 쓰기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에 관해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Continuum〉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지적한 대로 〈Continuum〉에서 디지털을 화두로 삼았다면 이번 〈Beyond The Scene〉에서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터라 더 서정성이 담긴 것 같다. 실제로 나 역시 BTS와 그들 사이의 연대감을 관찰하면서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그들 개개인의 삶 속에서 결국 이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연결’을 발견했다.
Yiyun Kang, 〈Beyond The Scene (비욘드 더 씬)〉, 2020,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8x8x4(m), 9’ 30“, Courtesy of the artist. Photography by Jang Jun-Ho
앤 베로니카 얀센스, 앤터니 곰리, 토마스 사라세노 등의 작가들과 달리 일부러 BTS와의 직접적인 소통보다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작업에 임했다.
보통 브랜드 협업은 그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철학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 때문에 협업 과정에서 직접적인 소통을 즐기는 편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고. 그런데 이번 작업의 콘셉트는 BTS뿐 아니라 ARMY를 포함하는 그 ‘현상’ 자체를 다루는 작업이었다. 단편적으로 BTS를 해석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그 현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메시지에 대해 고찰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그들에 접근하고 싶었다. 오히려 작가 입장에서는 생산 주체인 BTS와의 소통보다 소비 주체인 ARMY와의 소통이 더 중요했다.
일부 해외 언론에서 BTS의 ‘Love Yourself’나 ‘Speak Yourself’의 메시지가 현대미술에 접목하기엔 너무 순진무구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작가로서 BTS의 어떤 면에 주목했나?
그것을 순진무구하다고 보는 시각이 지금의 이 소통불가의 현대미술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배타적이고 극소수만 향유하는 듯 보이는 미술계가 과연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작업의 개념적인 구조를 잡는 과정에서 영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세대와 국적의 ARMY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BTS가 주는 진솔한 메시지가 인종, 국가, 언어를 초월해서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위로하고,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했다.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 모인 세계 각국 매체들의 엄청난 취재열을 보며 또 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서구 유수의 기관들과 작가들 또한 소통에 목말라 있다는 점이다. 기존 미술계를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소통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과연 팝과 파인아트의 경계가 의미가 있을까. 순진한 메시지는 무엇이며, ‘고급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로서 내가 지니고 있던 근본적인 입장이나 철학에 대해 자문할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동시대를 사는 여성 작가로서 앤 베로니카 얀센스와 함께한 것도 남다른 경험일 텐데.
유일하게 서울 전시에서 여성 작가 두 명의 작업을 선보인 건 의미가 깊다. 그랬기 때문에 5개 도시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좀 더 다양한 감수성과 해석을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매체는 완전히 다르지만, 나와 얀센스 작가 모두 객체 기반이 아닌 체험 기반의 설치 작업을 하고 물질성의 부재를 통해 더욱 강렬한 경험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 공통점인 것 같다. 얀센스 작가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쩌면 여성 작가로서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과 도전의식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젠더로 인해 작업에 대한 해석이 좁혀지는 일은 그 어떤 작가도 원치 않을 것이다. 때때로 “작업만 보고 강이연 작가가 남자인 줄 알았다”라는 이야기가 내게 유쾌하게 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Tomas Saraceno, 〈Fly with Aerocene Pacha(에어로센 파차)〉, 2020, Courtesy of the artist and Aerocene Foundation Photography by Studio Tomas Saraceno, Licensed under CC BY-SA 4.0 by Aerocene Foundation.
이번 프로젝트로 지금껏 만나온 일반적인 현대미술 애호가들과 꽤 다른 성격의 관객을 만났다. 작가로서 어떤 영감이 되었나?
다른 산업과의 협업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거다. 미술계의 저장고를 벗어나 다양한 관객을 만난다는 점. 특히 나는 ‘프로젝트 매핑’이라는 상대적으로 조금 낯선 매체를 사용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식이나 기대감 없이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에게 작품을 노출하는 일은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들고 동시에 즐겁게 만든다. 관객들과 교감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것이 작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전부터 늘 ‘연결’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기회를 모색해왔다. 앞으로도 다채로운 형태와 플랫폼을 통해 작업을 변주하고, 그를 통해 끊임없이 다양하고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서울 전시를 앞두고 화상 인터뷰에서 리더 RM이 얀센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금껏 경계에 대해 탐구해온 당신에게도 의미심장한 물음이다. 작가 강이연에게 경계란 무엇인가?
그렇다. 나는 늘 경계,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에 대해 질문해왔다. 그게 내 작업을 아우르는 가장 큰 주제의식이다. 현재와 가상, 실재와 허구, 물질과 비물질, 표면과 깊이, 과학와 예술,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등. 이런 이분법적 구분 짓기가 더 이상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내 작업은 실재의 무용수 몸짓과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섞는다.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으며, 이 혼종의 상태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들이 서 있는 설치 공간이 계속 확장되는 느낌을 준다. 이로 인해 관객은 강렬한 시청각적 환경 안에서 이분법적 경계에 대해 자문한다. 이분법적 사고의 폭력성이 낳은 결과가 현재 인류학의 붕괴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어떠한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중첩된 가치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 다양한 개념을 해석하고 포용하는 것이 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따라서 경계란 늘 유동적이고 도전과 해석 끝에 개개인이 정의 내리는 것이라고 본다. 케이팝의 경계에 도전하고 그것을 넘어 메인 스트림을 장악하는 BTS를 바라보며 든 생각도 바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