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통해 어깨 혹은 힙, 둘 중 하나만을 강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아마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택하게 될 것이다. 얼굴 크기에 비해 상체가 빈약한 사람들은 어깨를 강조해 비율을 조절하고 싶을 테고, 일명 통자 허리를 가졌다면 힙을 강조해 보다 굴곡진 보디라인을 완성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반면 완벽한 비율과 보디라인을 가졌다면 그때그때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선택을 달리할 수 있을 터.(불공평하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건 전신성형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패션 스타일링을 통해 어느 정도의 체형 보완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헌데 많은 신체 부위 중 왜 하필 어깨 혹은 엉덩이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인체를 세로의 축으로 보았을 때 가장 넓은 부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어깨와 엉덩이인데, 이들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옷의 실루엣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 또 상대적으로 허리가 가늘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2020 S/S 시즌 크리에이터들이 주목한 부위 역시 이 곳으로,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워진 실루엣의 컬렉션들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
먼저 어깨를 강조하는 룩부터 살펴보자. 대다수가 ‘어깨 강조 룩’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패드를 잔뜩 넣어 어깨를 크고 각지게 보이게 하는, 1990년대풍 파워 숄더 룩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번 시즌은 조금 다르다. 매 컬렉션마다 파워 숄더 룩을 선보이는 발렌시아가와 베르사체를 제외하곤 퍼프 소매, 레그오브머튼 소매로 어깨에 낭만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1994 F/W, 그리고 2020 S/S 시즌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만 비교해보아도 어깨를 강조한 방식이 무척이나 유연해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 “형태와 볼륨의 본질로 되돌아가기 위해 아주 보편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템이 바로 화이트 셔츠였고, 이를 쿠튀르 감성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쇼가 끝난 뒤 자신의 화이트 컬렉션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주름을 잡아 한껏 부풀린 소매가 달린 화이트 드레스는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파워 숄더 룩과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무척이나 우아하면서도 강인함이 엿보이기에!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로, 최근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캐서린 홀스타인의 카이트가 있다. 이번 시즌 그녀는 미국 서부 감성과 빅토리안 무드가 절묘하게 결합된 룩들을 선보였는데, 봉긋하게 살린 퍼프 소매 드레스를 통해 고전적인 스타일도 충분히 동시대적인 필터링을 통해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릭 오웬스처럼 다소 전위적인 방식의 어깨 강조법도 등장했지만, 일상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아이템 하나를 고른다면 주저 없이 발렌티노, 카이트, 알렉산더 맥퀸 쇼에서 발견한 목가적인 무드의 드레스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어깨의 볼륨은 자신의 체형과 TPO에 맞게 조절해야 하고, 슈즈는 무조건 굽이 없거나 낮은 샌들로, 액세서리로는 벨트, 혹은 오버사이즈 귀고리를 더해 드레스업과 드레스다운이 적절히 교차하는 스타일링을 완성하면 된다.
한편 어깨를 강조하는 룩에 비해 난이도가 높은 힙 강조 룩은 한동안 트렌드 뒤편에 물러나 있던 실루엣이 다시금 메인 스트림에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팍팍한 현실에서 도피를 꿈꾸는 디자이너들(톰 브라운, 매티 보반, 시몬 로샤, 릭 오웬스, 제레미 스콧 등)이 선보인 드라마틱한 볼 가운(ball gown)까지 합세해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는 힙 강조 룩이 대거 등장했다. 그중 이 흐름에 가장 몰두한 디자이너를 꼽는다면 단연 조너선 앤더슨일 것. 그는 자신의 레이블과 로에베 두 개의 컬렉션을 통해 재킷 속에 페티코트를 더한 팬츠수트, 바로크 시대의 버슬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레이스 소재 드레스를 선보였다. “로에베는 스페인 태생의 하우스입니다. 1656년 벨라스케스가 그린 스페인 왕가의 초상, 그리고 16~17세기 공예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죠.” 그가 ‘앙투아네트-시(Antoinette-ish, 앙투아네트 왕비 같은)’ 스타일이라 표현한 JW 앤더슨 컬렉션에서도 엿볼 수 있듯, 전통과 혁신 사이의 긴장감은 여성의 힙라인에 새로운 볼륨감을 불어넣었다. ‘큰 엉덩이=다산’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에게 있어 아름다운 힙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과거에 비해 작고 탐스러운 엉덩이 즉 ‘애플힙’이 각광받는 요즘(물론 나라마다 다를 테지만), 그와 비슷한 볼륨감의 룩들로 이 흐름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특히 힙 부분에 드레이프 장식을 더해 볼륨을 가미한 프로엔자 스쿨러의 블랙 드레스, 재킷 양쪽에 페티코트를 가미한 스커트 장식을 덧댄 엘러리의 팬츠수트, 앞서 얘기한 JW 앤더슨의 팬츠수트는 힙 강조 룩 초심자들에게 훌륭한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원고를 쓰며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여성의 곡선미를 드러내는 실루엣이 유행했던 시대는 인간의 가치를 주된 관심사로 삼는 인본주의를 내세우거나(르네상스 시대),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고(아르누보 시대),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에 부풀어 있는(1950년대) 시대, 즉 더 나은 미래를 꿈꾸던 시대라는 것이다. 어쩌면 2020년의 패션 디자이너들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마르거나 늘씬하지 않아도 된다. 어깨, 그리고 엉덩이를 강조하는 이들 룩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름답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자칫 코스튬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둘 중 한 부분만 강조하라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