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배우 이호정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이호정이 전쟁 한가운데 뭉클한 모멘텀을 선사한 후 영화는 앳된 학도병 개개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흙 때가 묻었어도 말갛게 빛나던 이호정의 얼굴은 미묘한 레이어의 흰 캔버스처럼 다채로운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호정,배우,영화,학도병

&nbsp;━&nbsp; Various Whites &nbsp; 미니 드레스는 Miu Miu. 하얀색 좋아하세요?&nbsp; 옷을 입을 때는 검은색이 더 좋아요. 근데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하얀색을 좋아해요.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모델로서도 그렇고, 이제 막 발을 내디딘 배우로서도 그렇고 백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옷을 입혀도 잘 소화하고 어떤 역할을 맡겨도 제가 아닌 그 인물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영화 &lt;장사리: 잊혀진 영웅들&gt; 보고 나서 한동안 ‘종녀’라는 이름이 뇌리에 남아 있더라고요. 캐릭터 이름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nbsp; (박수를 짝짝짝 치며) 와, 다행이에요! 종녀가 워낙 멋지죠. 벌키한 니트 스웨터는 MaxMara. 사이하이 부츠는 Stuart Weitzman. ‘문종녀’ 역으로 오디션을 봤죠? 7대 독자인 쌍둥이 오빠를 대신해 여자임을 숨기고 입대한 학도병, 캐릭터 설명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 오빠가 있어요. 우리가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서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나는 어땠을까, 가정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감독님 사촌 중에 몇 대 독자인 형제를 대신해서 입대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은 분이 있대요. 실제 입대를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종녀는 입대하기로 하고 나서는 이 악물고 절대 투정 부리거나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누구보다 열심히 전투에 참여했을 거고요. &nbsp; 톱은 Jaybaek Couture. 팬츠는 MaxMara. 슬라이드는 Chanel. 영화를 위해 삭발 결정을 하고 나서 호정 씨도 종녀처럼 후회하지 않았나요?&nbsp;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오디션 보고 바로 다음 날 의상 피팅하고 그다음 날 삭발을 해야 했거든요. 처음에는 쇼트커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커트하러 가는 길에 시안으로 받은 사진이 완전 밤톨 같은 헤어스타일이었어요. 커트하는 내내 ‘하하하’ 바람 빠진 웃음만 나고 눈동자에 초점이 안 맞춰지더라고요.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짧은 머리는. 다 자르고 거울 속의 저 자신을 보는데 어찌나 낯설던지. 집에 돌아와서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옷 갈아입고 한강으로 뛰러 나갔어요. 제가 맨날 뛰는 코스가 있거든요. 뛰면서 생각을 정리했죠. 그 뒤로는 아주 홀가분했어요. 어떤 장막이 벗겨진 것도 같고,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해졌어요. &nbsp; 니트 드레스는 Bottega Veneta. 앵클부츠는 Tod’s. 1950년 9월 14일에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 7백72명이 문산호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했어요. 경북 영덕군 장사리에 도착하자 해가 밝아왔죠. 당시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 상황이었고 인천상륙작전만이 희망이었어요. 그 성공을 위해 반대편 장사 해변에서 교란작전으로 학도병이 투입된 거죠. 영화는 그 상황을 충실히 그려내고 있어요.&nbsp; 곽경택, 김태훈 공동 감독님들은 그때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싶으셨대요. 촬영 기법도 핸드헬드가 많았고요. 학도병들이 2주밖에 훈련을 받지 않고 참전했기에 저희 배우들 역시 액션 스쿨에서 아주 기본적인 훈련만 받은 후 ‘투입’됐어요. 굴러다니고 기어다니고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얼추 동선을 맞추고 전투 장면에 들어갔지만, 환경 자체가 사전에 준비된 그대로를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어요.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에서 촬영이 진행됐는데 베테랑 스태프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현장이 험했어요. &nbsp; 삼척에서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장사해변이 나올 테니 실제로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촬영했겠네요. 배우와 스태프 모두 엄중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요.&nbsp;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때 초등학생이셨대요. 피난 가다가 산에서 총 맞아서 죽는 사람도 많이 보고요. 새삼 한국전쟁이 아주 먼 과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촬영 중간에 하루 휴차여서 다 같이 장사해변에 갔어요. 장사상륙작전 당시 좌초된 문산호를 실물 모형으로 복원해 장사 앞바다에 떠 있는 전시관으로 만들어놓았더군요. 거기서 전쟁에 참여한 분들 이름을 눈으로 훑으며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어요. 처음 완성된 영화를 본 게 개봉 2주 전 열린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식에서 진행된 시사회에서였어요. 매년 장사해변에 참전 용사들을 모셔서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고 해요. 어떤 분은 영화를 보다가 나가셨어요. 너무 슬퍼서 보기 힘들다고. 저희도 많이 울었어요. &nbsp; 테디베어 코트는 H&amp;M. 전작 &lt;청년 경찰&gt;도 있었지만 동일한 조연이어도 뭉클한 모멘텀을 선사하는 역할로 분한 영화가 거대한 스크린에 펼쳐졌는데, 이후로도 여러 번 보았겠죠?&nbsp; 언론 시사회 때 다시 봤는데 정말 모두 고생 많았다, 나도 참 고생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쉬움이나 후회가 한 톨도 없었어요. 배우는 이 작품이 아니라면 유사 경험을 해보지도 못했을 세계에 잠깐 들어갔나 나오잖아요. 그러면서 일상적인 삶에도 변화가 생기고요.&nbsp; 저도 몰랐는데 제가 조금씩 바뀌나 봐요. 친한 사람들이 가끔 “너 왜 이래?” 하면서 농담처럼 얘기할 때도 있어요. 어떤 인물을 표현해야 하니까 자연스레 일상에서도 ‘얘라면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할까?’하고 생각해보게 돼요. 작품이 끝나고 나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하고요. 배우는 또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고, 쉬면서도 항상 자기만의 비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 같아요.&nbsp; 그게 처음에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제가 성격이 급하고 쉬는 거, 기다리는 걸 잘 못 해요. 요즘엔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려고 노력해요. 킥복싱을 배워볼까 해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액션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스크린 속에서 제가 너무 허우적거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을 잘 쓰고 싶어서 춤을 배웠었거든요. 리듬감도 생기고 도움이 되긴 했는데 어디서 힘을 줘야 하고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이걸 또 알고 싶어졌어요. &nbsp; 크롭트 셔츠는 Hugo Boss. 브라 톱은 Leha. 데님 팬츠는 Pushbutton. 미니멀한 뮬은 Stuart Weitzman. 평소 운동을 많이 해요?&nbsp; 네, 엄청 많이 해요. 필라테스랑 수영이랑 뜀박질합니다. 특히 수영은 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에요. 화나는 일이 있으면 수영장 가서 미친 듯이 헤엄을 쳐요. 머리 기르기 전에 수영부 역할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정말 멋질 것 같아요!&nbsp; 와, 정말요! 그럼 하루 종일 물속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제가 워낙 물을 좋아해요. 물속에 있으면 기분이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