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 S/S 시즌의 화이트 셔츠와 쌀 포대에서 영감 받은 가방. 2 차분한 컬러 팔레트가 특징인 2019 F/W 컬렉션. 3 쇼룸 한편에 놓인 돌 오브제.
축하한다. 신인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네타포르테의 더 뱅가드, 그 세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소감은?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그 다음엔 ‘못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아지면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다. 물론 감사한 기회지만 말이다.
늘 바쁘게 지낸다.(웃음) 다만 더 뱅가드 발표가 10월 6일이라 관련된 일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새롭게 디자인하는 건 아니고, 지난 시즌들을 포함해 르 917을 대표하는 아이템을 선별해 선보일 예정이다. 또 푸시버튼, 구드 등 다섯 개 브랜드와 함께 ‘코리아 컬렉티브 컬렉션’도 준비 중이다.
원래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패션에 더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인 취향을 블로그를 통해 공유했고, 파워 블로거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유명했다.(웃음) 그러다가 남성 액세서리 디자이너인 남편의 권유로 2013년부터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고 싶은 옷 직접 만들어보는 거 어때?”란 한마디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구상한 건 2015년인데, 운이 좋게도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났다.
심플한 스웨트셔츠와 매니시한 트렌치코트. 초창기엔 기능성 원단으로 실험적인 도전을 많이 했다. 초짜 디자이너라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옷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내가 입고 싶은 옷’. 클래식하고 간결한 옷이다. 여기에 살짝 독특한 디테일을 가미하는 것. 앞서 얘기한 동양적인 터치 말이다. 흔히 외국 사람들이 동양의 미를 얘기할 때 일본을 떠올리는 게 아쉬웠다. 난 한복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선과 여백의 미, 감춰진 은은함이 있다.
늘 소재가 컬렉션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들었다.
맞다.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소재를 먼저 선택하고, 디자인을 시작했다. 좋은 소재를 선별하는 일에 가장 힘을 쏟는다. 2019 F/W 컬렉션은 박물관에서 본 조선시대 갓과 비슷한 소재를 찾고자 했다. 갓을 썼을 때, 얼굴에 스며든 햇빛을 상상하니 정말 아름답겠다 싶더라. 다행히 겨울에 어울리는 시어한 울 소재를 찾았고, 이 원단을 몇 겹 덧대거나 여러 번 트위스트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에디터들에게조차 르 917은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옷’이다.
선주문, 후제작 시스템인 데다 한정 수량으로 진행하기 때문인데 사이트에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솔드 아웃이다. 한 공장에서 모든 제품을 만들다 보니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공장을 여러 군데로 늘리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또 원단이 소진되면 같은 옷을 다시 만들지 않는다. 이 또한 품질을 맞추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스튜디오 언라벨의 르동일 대표와 함께 했다. 르 917이 어떤 옷을 만들고, 또 지향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브랜드로 만들고자 함을 표현했다. 오래된 한옥을 지탱하던 고목, 풍파에 깎인 돌로 만든 가구와 오브제가 그 결과물이다.
참 좋은 취향을 지닌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나는 오랜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빈티지 주얼리와 빈티지 가구, 그리고 박물관의 전통적인 물건들.
올해 5월, 남편이 브랜드에 합류했다. 남편과 함께 액세서리 라인에 조금 더 집중할 예정이다. 2020 S/S 시즌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동양적인 무드가 가미된 신발이 하나 있는데, 내가봐도 참 예쁘다. 기대해도 좋다.
뛰어난 소재와 품질,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옷